나 하나 없다고 거들떠봐주지도 애초에 존재조차 몰랐던 건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이미 벌써 이 지구를 꽉 채우고 있었단 그 말이 가당키나 한 걸까 생각했다. 한낱 위로를 파는 상술에 지나지 않은 건 아닐까 하고. 분명 그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것이기에 어깨가 자꾸만 고꾸라지는데 정작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내 자신이었다는 것이 아닌가. 기어코 소리를 쳤고 내 두귀를 틀어막고서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서럽게 울어댔던 꼴이었다. 이미 답은 내 안에 있었는데. 이렇듯 온전히 내 스스로가 나를 위해서 밝히는 빛을 외면하면 다른 빛이 다가와 날 비춘들 저 어둠속으로 숨어들어갈게 뻔할 것이다. 해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날 사랑하게 되는 불행을 겪지 않게 온 마음을 다해 날 사랑하고 그런 날 사랑해주는 누군가와 사랑하라.

 

 

나도 이 말 듣고 영차 힘을 내서 다시 세상과 부닺혀야지, 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먹먹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동안 그렇게 정적만을 대동할 뿐이었다. 힘껏 내질러본 기억이 없을 뿐더러 얕게 일렁이는 파도에도 오던 길 되돌아 헤엄쳐 가기 바빴으니까. 누구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빛 좋은 개살구를 떡하니 방패막이 삼아 나의 관한한모든 것에 광활했고 관대했었다. 그렇다할거리를 내걸어야 그럴싸하게 빗대기도 해보고 저울에 달아보기도 하고 동여매 보기도 할텐데 내가 범한 실수는 오직 그럴거리를 애초에 틀어막아 버린데 있을 것이다. 해서 이제는 기어코 등을 내보이지 않고 기꺼이 맞닥들일 것이다.

 

 

내 속에는 미움과 원망이 한데 뒤섞인 불가피했고 불문했던 감정들이 빼곡하게 들어찼었는지, 퍼부어 대는 것이라곤 온통 그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허구헌날 이렇다할 핑계도 생략해버린채 시정잡배에 빙의된 것처럼 망나니짓을 일삼았다. 그로인해 날로 피폐해진 니 가슴이 다 동이나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개의치 않았고 그 마음을 채득한 댓가를 여지껏 톡톡히 치루고 있다. 가늠할 수 있었기에 지레 짐작하고 확신하여 썩어 고인물 토해내듯 뱉어냈다. 알면서도 모른척 관대하게 고개를 기꺼이 돌려버렸던 까닭엔 내가 있었고 들춰내서 기꺼이 굴욕시켜 버리려했던 까닭엔 니가 있었을 뿐이다. 다만 너에게서 비친 날 용서할 수 없었고 그 죄를 그러함으로 응당 너에게 물으려 한 내 뻔뻔한 자기연민이 빚어낸 토사물일 뿐이다. 용서해주오.

 

실컷 퍼부어줬는데 그게 실은 흙에 물을 부어준꼴에 지나지 않아 벌써 물을 흡수해버린 흙은 날 나몰라라 한다. 메아리를 한껏 기대하며 못청껏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로 인해 목이 까슬하게 쉬어버렸음에도 고요한 침묵만이 나를 감싸는 것과 별반 다를바 없을테지. 그 무거움, 덜어낼 수 없는 욕망을 기어코 끊어내버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 것. 아마 힘들었고 힘들고 힘들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을 펴 보여야 할 것.

 

 

누구에게나 그러할 것이라고 단언하고서 위안의 안주로 삼아 씹어 넘기기엔 어떤 이들 주위만 환하게 불밝혀져 있는 듯 하고 유독 내게만 암흑기가 치렁치렁 달려있느냐고 따지고 들기엔 저만치서 울부짖는 수두룩한 어떤 이들이 있다. 목이 꺾어지도록 고개를 뒤로 제껴대도 끝도 없이 까마득한 곳에 있는 윗사람들을 구경이라도 해볼라치면 먹구름이 떼거지로 몰려와 무지막지한 장대비를 쏟아 붓는 것 같고 발 아래 내리 꽃혀 깊숙한 심연에 맞닿아 있는 아랫사람들을 구경이라도 해볼라치면 그 수렁에 발목이 잡혀 나 또한 가늠할 수 없게 되어 버릴 것만 같은 깜깜함이 몰려들었었다. 그리고 날 옭아맸었다. 한동안 그렇게 난,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랬다. 매일 밤 기계에 지나지 않은 반복적인 패턴을 부단히도 해댔던 것이다. 단지 절망적인 나를 걷어내지 못한 댓가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끓어대면 미친듯 발악을 해대다가 서서히 놓아버린다. 그 견딜 수 없는 것에 항복을 하는 것도 이도 저도 아닌 그 상태로 날 놓아버린다. 시름시름 앓아 대는게 그러면서 이 악물고 버티는 게 차라리 희망이라도 있으니 더 낫기라도 하지 꼼짝달싹도 하지 않은 그 채로 눈만 껌뻑여대는 건 그 어떤 것과도 엮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더이상 날 괴롭힐 수 없게 내가 날 끝장내버리겠다는 무지막지한 결단을 내린것과도 맞먹는단 말이다. 어느 날, 가깝지도 않은 어중간한 틈에 껴있던 그저 날 아는 누군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서 말을 했다. 넌 왜 니 삶을 잃었냐고.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그 날 내게서 그 어떤 대답도 그는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내 안에 작은 울림이 있었던 것에 분명했고 지금 내 손에 거머쥔 것은 분명 그 때 잃어버린 내 삶이다.

 

 

 내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일수가 없을 때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은 반복적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처할 방법을 모색하지도 않았고 무책임하게도 방관적이었던 내가 고개를 끄덕인 삶이었다. 물론, 지금은 버젓이 나를 타이틀로 내걸어 어떠한 것을 들여놓고 또 내어놓음에 주춤거리지 않고 약간은 활개를 띄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괜찮다. 그랬었다는 게 오점이 되진 않는다. 그러하듯이 누구나가 옆길로 새기도 하기 마련이니까. 헌데 그 반복을 탈피하려던 것을 번복하는 건 그건 문제고 잘못이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은 것, 알면서도 외면해 버린 것. 싸잡아 족침을 당할 일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죄인걸 인식했음에도 저지른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에 댓가는 치뤄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지나고면 별 거 아니었던 일이 무수히 많았다. 아니, 모두 그랬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던 날도 집이 경매에 떠내려가던 날도 아빠가 수술대에 올라섰던 그 날도 모든게 다 벼락같이 내리쳤다가 쏜살같이 사라졌더랬다. 다만 그 순간이 버거워 울부짖어댔지만 그것 또한 순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바로 코 앞이 새까맣게 먹칠이 되는데 그래서 한치 앞을 바라볼 수도 없는데 몇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뿐더러 충분히 그럴만한 나이였다. 겪어보니 이렇게 남얘기를 읊어내듯 줄줄이 대수롭지않게 나열해가는 일도 생기는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다. 헌데 지금도 지나치면 별 거 아닐 것에 목숨을 내걸고서 발버둥쳐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 분명 집착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쥐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내가 쥐어봤고 쥐어보고 싶은 것에 눈독을 들이고 마음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말이다. 헌데 월래 없었던 것이라 치부를 해 버리면 그래서 슬프고 있었다가 없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그래서 또 슬프고 충분히 있을수도 있을만한 것을 있게할 기회를 저버렸다고 생각하니 또 그래서 슬프다. 기어코 그릇에 치름치름 담아 머리에 이고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단연 흔들릴 것에 그러지 말아달라 떼를 쓰는 것이다. 받아들여야 할 것들에게 받아들이지 않겠다 버티고 섰다. 끝끝내 그래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아 여즉 뒷말썽이다. 무거우면 내려놓고 채우면 비워야 하는 그 간단한 진리를 인정하면 모두 해결될 일임을.

 

마치 호기롭게 세상을 바꾸려 들었으나 그럴 수 없음을 여실히 깨닫고 결단코 난 세상에 바뀌지 않으리라는 방화벽이 덧대어진 마음을 내비치는 것 같다. 다만 내 상상일 뿐이지만 어떠한 것에도 휘둘리지 않겠단 강한 의지와 그에 곁들어진 용기가 부럽다. 세상이 앉으라하면 앉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는 별 수 없이 어느순간 맞이한 꼭두각시 운명을 거스르고서 훌쩍 떠나버릴 수 있을까.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게 없을뿐더러 그걸 찾을 시간도 촉박하기만 했던 게 덜그덕 덜그덕 거리는 말발굽소리를 요란스레 울려대며 뒤쫓아오던 또 뒤쫓기던 무리들 틈에 껴 있었던 까닭이었을까.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해주길 바랬다. 그만하면 됫다고. 이제 니 갈 길을 가라고. 헌데 그 누군가는 내 가슴 깊숙히에서나 존재했고 지금도 여전히 거친 채찍질에 헐떡이며 내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기도 하며 끼어있지만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이 무리를 벗어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할 무언가를 위해서. 곧 나를 위해서.

 

 

콧대를 세우던 것에 큰 코를 다쳤던 날이 있었다. 엎친데 또 덮쳐버려서 화풀이를 할 기력도 그 대상도 쥐뿔 없이 비웃음 쳐진 채로 애써 추스리려 했는데 그래서 괜찮다하며 툭툭 털고 일어서 걸어 나갔는데 가다가 발에 걸린 돌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게 다 내 탓이고 그래서 넌 안 된다. 분명 내게 그리 말했다. 꽤나 소란스럽고 어수선했던 내 마음이 가라앉기까지는 닷새정도 걸린 듯 했다. 피식 웃어넘기기엔 자꾸만 가슴 언저리가 뜨끔거렸다가 얼얼해졌다가를 반복해대는 탓에 그저 끄덕이기로 했다. 그럴 수 있다. 빌어먹을 세상이니까. 하고 그냥 끄덕이기로 했다.

 

 

 

 

암담하다. 여즉 아프고. 그래서 생략하고 싶다.

 

 처한 상황에 비해 골골 대는 정도의 격차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양이다. 게중에 나는 자책을 하는 편이다. 불행하다 우울해 하고 왜 내게만 이런 일이 하고 원망을 하고 그러다가 내가 이것밖에 안 되서 하고. 그러던 내게도 느닷없이 사랑이 출몰했고 가엾게도 곧 침몰을 면치 못했다. 이미 백사장의 바싹 말라버린 모래처럼 건조할대로 건조해져버린 탓에 애써 비를 적셔 식혀보려고도 부단히 애를 썼지만 결국, 눅진눅진해질 뿐이었고 피차 없었던 거 없었다치게 되었다. 꽃 한 송이라도 피어있는 땅에 벌이 발을 디밀지 척박해져버린 땅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단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다.

 

 

 당장 콧바람이 씽씽 들어오는 생에서도 그러하지 못한 걸 다음 생에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어떠하게 어떤것까지 감내하며 기어코 해내리라는 건지 도통 알 수 가 없다. 치일피일 미루다 개학식날 방학숙제검사 시간을 겨우겨우 어떻게 꼴까닥 넘겨버리고서는 다음번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과 다를게 뭬 있단 말인가. 결말은 단순했고 뻔했고 당연했다. 다음번에도 또 그러하였다로 마침표를 찍는 것. 물론, 쟁쟁하게 짜여진 틀을 선보인 것은 인정한다. 분명 나도 느꼈지만 속에서만 옹옹거려댈 뿐 토해내기엔 어쭙잖아 묵혀두려 했던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당장 프린터를 해 내 배게 머리맡에 붙여다 놓고 매일 눈 뜰 때 봐야될 것만 같은 꼭 그래야만 나중에 신 앞에 무릎꿇게 될 그 날에 단언하건데 후회는 없었노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충분히 그만큼 훌륭한 격언이다.

 

나는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제목에 휩쓸려 읽어내려갔던 그 책엔 살면서 무수히 받았던 서러움을 곱절의 감동으로 받아낸 듯했었다. 기꺼이 등을 내밀어 토닥거려 달라고 떼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얹어져 오는 따스한 손길에 그저 눈을 감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책 한 권을 내리 다 읽었을때엔 말끔히 치유가 된 기분이었다. 이토록 절절한 기쁨이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모질게 매를 맞고 혼쭐이 나서 숨으려고 실컷 내달려갔는데 품에서 떼어 놓고서 규탄을 서슴치 않을 때. 무조건적이 아님에도 손가락짓을 해대는 것이 아님에도 마음이 긁혀대는 건 어쩔 수 없다. 올곧게 받쳐줬던 버팀목이 비켜선채로 외려 짓눌러대니 말이다. 결국 내가 더 곧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것 뿐이었는데 어쭙잖은 상황과 맞물려 때론 직격탄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으면누구나 강하니까 사랑이 아니었다면내게 수치심도 굴욕도 없었으리라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모았을지도 모른다. 가야 할 때 가고 와야 할 때 오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없어야 할 자리에 없었으리라. 아마도 지혜롭고 현명하며 냉철하고 우아했으리라. 그러나 사랑 안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헤어진 신발을끌며 저물녁에 서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불빛 이었으면 좋겠다.     -본문 중에서

 

감수성의 농도가 맛깔나게 짙다. 역시 공지영이다란 말밖엔.

 

 

 

내 블로그명과도 똑같은 이름의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선 반가움에 얼른 낚아챘다. 이 책은 곧 내 책이겠거니 너와 나는 운명이겠거니 싶기까지 했더랬다. 이 책의 저자는 사진쟁이 장은석, 그림쟁이 목영교, 음악쟁이 마이큐라고 지칭되어 있었다. 세 청춘이 한데 모여 어떤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한껏 기대됫다. 더불어 내 청춘도 그에 빗대어 좀 더 활개를 칠 수 있길 바라면서 책장을 펼쳤다.

 

"지금의 너는 힘들고 외롭겠지만, 지금의 그 고통들이 너를 자라게 해서

다른 사람들을 감격시킬 거야. 네 미래를 기대해."

 

 

 

이 책을 읽을 때의 난 혼자였다. 꽉 찼던 시간에 빈 틈이 생겨버려 계획과는 차질이 생겨버리자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었는데 그 근처에 내가 가기 만만한 곳이 도서관이었다. 반납일이 불과 이틀이 채 남지 않은 책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다만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두 권밖에 안 빌린 탓에 세권이나 빌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게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나온 직 후 한 낮의 햇살이 너무나도 따사로웠고 해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기엔 엄청난 손해를 보기라도 할 것 처럼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다고 책을 들고 당장 누군가를 만나려 해도 기다리고 굳이 어디로 나서야 되는게 번거롭고 귀찮았다. 잠시 멈춰서서 고민을 하는 동안, 눈에 들어왔던 게 디저트 카페였다. 평소엔 그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는데 짠하고 등장한 내 구세주와 같았다. 그 곳에서 나는 두시간 남짓 전혀 느끼하지 않는 치즈샐러드와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빵과 클림트의 키스란 그림을 향긋하게 느끼며 책을 한 권 뚝딱 해치웠다. 예기치못하게 혼자서 맞딱리게 된 상황에서 깨나 설레이는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전혀 외롭다거나 궁상스럽다거나 하지 않은 오롯이 혼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그 홀연한 기분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혼자라서 좋은 날이었다.

 

 

오타쿠. 와전이 되서 안경을 끼고 뚱뚱한 중독자 쯤으로나 인식되 있을지 모르겠는데 월래의 뜻은 한 분야에 전문가나 마니아 이상으로 빠져든 사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엔 부러웠다. 주위가 산만한지라 어디 한 곳에 오래 몰두를 하는 걸 가만놔두지 못 하는 내 입장에선 전문가 이상의 견해를 쌓을 정도로 어떤한 것에 심취해 있다는 것이 여간 멋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책상위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안경을 끼고서 서류를 뒤적 뒤적 거리면서 밤을 새는 일에 파묻혀 사는 그런 일중독자에게 느꼈던 동경과도 같은 것 쯤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 오타쿠족으로 인해서 게임개발회사 같은 곳은 더 엄격하고 신중을 기울여서 게임을 개발한다고 한다. 자칫 빗발치는 그들의 항의 전화로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겠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들의 기여도도 꽤 크니까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내막을 들춰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직 한 곳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터라 제대로된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사회문제로 대두됫다고 한다. 예전에 한 번 믿었던 사람에게서 크게 데인 적이 있었는데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에 홀린듯 이것 저것 뭐든 내키는대로 뒤적거리며 찾아나서던 나를 발견하게 됫다. 아마 도려낼 수 없는 상처를 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들도 그 비슷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러한 까닭에서가 아니라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에서 오타구족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그들에게 필요하건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겠냐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보통 일본하면 스미마센을 입에 달고 산다고 종종 들었었는데 전혀 거림낌없이 자기주관을 뚜렷하게 밝힌 어떤 일본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도 조금 흠칫했는데 게다가 여자라고 하니 왠지 멋있기까지 하다. 모르면 주윗 사람들에게 물어서 답을 구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었다. 힘빼지 않고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사소한 것에 진리가 있듯이 그녀의 말에도 깃들어 있는 듯 하다. 남들에게 물어 물어 혹은 남들이 그렇게들 하고 산다거나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만 하는 것들을 무턱대고 쫒아다니진 않았는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내 마음따윈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내 인생인데 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해야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 틀림없는데도 주위의 등쌀에 휩쓸려 제대로 기한번 펴보지 못하고 사그라 들어버렸던 건 아닌지. 내 삶의 초점이 흐려지려는 찰나에 꺼내어 봐야 겠단 확신이 드는 구절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해. 너의 일이잖아."

 

남들과는 다른 반항아적인 마초분위기를 물씬 풍겨준다. 헌데 소싯적에 사고 깨나 치고 다니는 철부지 반항아 정도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저자만의 뚜렷한 자기만의 철학, 신념같은 게 있었고 단지 그걸 이행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특이하고 매력적이다. 스쳐지나가는 한 철의 감기처럼 그렇게 사춘기도 잠시 내게 머물렀다 갔었는데 그 후유증이 좀 오래갔다. 불과 작년, 아니 몇 달전 까지만 해도 고등학생때완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아무런 생각없이 무작정 놀기를 반복해대고 있었으니까. 후횐 없었고 지금도 역시나다. 그 때는 그 때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그렇게 실컷 놀다 질렸는지 뭐가 내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어 버린건지 한 순간에 그 패턴은 뒤집어 졌다. 사실 처음엔 어색하기도 할 뿐더러 몸이 꿈틀꿈틀거리는 통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참으니까 그게 곧 생활이 되었다. 나와 얼추 비슷한 그 시기를 저자는 꿈을 쪼개기 싫어서 행한 만행이라고 하니 그 때의 그가 대견하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모든게 얼키설키 얽혀버린 밤이 있다. 제 멋대로 헝클어져서 풀어내기엔 까마득해서 한숨밖에 쉬어지지 않는 밤. 어디서 부터가 시작이고 끝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밤. 럴 때는 그냥 집 앞 놀이터에 간다든지 옥상에 올라간다든지 창문을 열어재낀다든지 해서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멍을 때리고 있는게 내 대처법이다. 그러다보면 으슬으슬 몸이 떨리면서 제 정신이 바짝 든다. 물론 나에 한해서다. 그리고서는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이 있는거지. 일기거리 하나 생겼네.' 하면서 노트북을 키고 일기를 횡설수설 몇자 적은 다음에 곯아떨어진다. 내 마음만 지지고 볶일 뿐이지 당장 나아지는 건 없다는 게 어느 순간 터득한 내 삶의 노하우이다.

 

 

동행하는 이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자칫 창피를 당할지도 모를 발언과 행동을 삼가하게 되는 것에는 단연 눈치도 보이거니와 체면도 차려야하고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러나 혼자서는 나만이 만끽할 수 있는 약간의 똘끼를 동반한 짜릿한 저지름에 몰두하고 거행할 수 있는 결단력이 거세게 몰아친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도 않고 오로지 내가 지금 생각하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을 현실화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한번씩 이런 혼자만의 여행도 성장해 나가는 것에 큰 도움이 되고 내 자신과의 소통으로 힐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싶다. 가끔 나도 예기치않게 즉흥적으로 일탈을 시도하고 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목적지가 없어도 내 발길이 머무르는 곳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고 그 순간에 충실하고 즐기는 것. 소소한 삶의 재미가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르익는건 비단 나이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불신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겐 말이다. 예전이라고 해봤자 갓 성인이 되었을 때나 고등학교 때 쯤인데 그 때는 흩어지면 죽는다는 눈에 안 보이는 틀 속에 우리가 존재했던 건지 똘똘 뭉쳐다녔더랬다. 함께한 곱절의 시간을 살고 있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점점 차지하는 범위를 확산해나갔고 소중하게 내 마음을 포장해 건네주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변했고 그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게 내심 상처로 침투해 있었던 건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서 직원들과의 첫 대면이라든지 친구가 소개시켜주는 좋은 사람과의 첫 만남이라든지 심지어 커피한잔 하러 들어간 카페 사장님에게 주문할 때 라든지 하는 일상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눈인사를 하고 말을 주고 받고 악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 연속적인 훈련에도 불구하고 찌그러져버린 마음을 펴내기엔 역부족이었던건지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 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단지 눈을 보고 호흡을 맞추는 일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가 그랬었다. 사랑을 받는 것에도 주는 것에도 투박했고 서툴었던지라 단연 날 생각해준다면 그만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게됫지만 그 모든건 내 착각에 불과했고 쓰라린 통보만이 내게 남았었다. 무턱대고 남이 내 마음을 알아봐주길 바라는 건 어릴적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그냥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졸라대는 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발 늦은 그 곳에서 후회에 짓이겨진 마음이 동나버릴 때까지 슬픔에 몸부림쳤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치못하게, 감지하지못하던 새에 물들어 버린 또 다른 사랑에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유로 헤어짐을 반복해야 했다. 여실히 깨달았지만 진저리나게도 모자랐던 내 사랑이었다.

 

 

일주일 전 쯤,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이 쪽으로 나가겠다 굳혔으면 좀 더 넓은 곳에가서 배우는게 어때." 난 한템포 뒤에서야 대답을 했다. "그치만……." 그 말줄임표안에는 지금의 생활을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버릴 용기도 없을 뿐더러 실력이 뒷받침 되어 주질 않으니 확신이 들리 만무하고 무엇보다 적지 않은 나이기에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기에 그 비용을 감당키엔 부담감이 깨나 크다는 말이 내포되 있었으리라. 용케도 알아들으셨는지 원장님은 내게 결정타를 날렸다. "한번뿐인 인생이잖아." 그 날, 가슴이 뜨끈뜨끈 거려서 밤을 설쳤다. 아직 내려진 결정은 없지만 곧 내려질 결정에는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가 두려운 대상과 맞닥드리지만 그 대처법은 저마다 다르다. 무서워서 피해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리거나 맞서거나. 저자의 아버지는 첫 두려움과 대면한 아들에게 그럴수록 맞서야 된다는 큰 가르침을 줬다. 두려울수록 두려움과 맞이하라는 인생의 지혜, 현시점에서 내가 더이상 비겁해지지 않게 초라해지지 않게 버텨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갓 성인이 되어 파릇파릇할 줄만 알았던 내 삶이 직장이란 그물에 걸려 발버둥쳐댈수록 더 옭아매지기만 해서 당장 때려치우고 도망쳐버릴까란 생각을 무던히도 했었다. 이번에 도망치면 평생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 그 무수한 밤의 결론이고 그래서 그 두려움과 맞서려고 한다.

 

 

청춘이니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노인이 된 느낌이 궁금하다면

먼지 낀 안경을 쓰고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뒤 커다랗게 무거운 신발을 신고

장갑을 낀 채 정상적인 하루를 보내보라.

 

 

 

지혜롭게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리학의 거장이라고도 불리우는 B.F 스키너의 심리 에세이다. 이 책은 스키너가 78세 때 집필하였다고 한다. 우연찮게도 옮긴이도 향년 78세란다. 이 책의 원제는 '노년을 즐겨라' 라고 한다. 노년을 만끽하고 있던 스키너의 생생한 경험담을 토대로 실용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짙은 조언을 나열해 놓았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도 불릴만큼 수명이 훤칠하게도 늘어났는데 어떠한 대책 마련이라든지, 하물며 작은 계획이라도 세우지 않고 대책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는 무더기의 사람들이 안타까웠는지 어쨋는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여러권의 집필을 하고 있던 스키너가 나약해져가는 몸을 부여잡고 기어코 펜대를 잡은 배경엔 이 책이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어림 짐작해본다.

 

 

'인생의 초년은 말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늙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며, 젊은이들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심사숙고한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스키너는 로버트 브라우닝에 등장하는 라비 벤 에즈라의 말은 안타깝게도 틀렸다고 적나라하게 말했다. 다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겐 큰 오차범위에 해당하는 선언이었다. 헌데 타당한 이유를 들며 그만한 설득력을 제시함으로써 이같은 주장을 한 까닭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노년을 즐기는 것을 위한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노년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젊음에 대한 평가를 솔직하게 열거해서 인정을 하고 그렇지만 노년을 왜 미리 익히고 준비해 나가야 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또한 노년을 맞이하면서 절로 찾아드는 굴욕, 이를테면 시력의 감퇴라든지 균형이 불완전해 진다던지 청력이 옅어진다던지 하는 탐탁지 않은 손님들을 어떻게 하면 더 유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지 그에 따른 대처법들이 세세하게 나열되 있다. 아마 벌써부터 겪고 있던 노년놀이를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서 거머쥔 스키너의 노하우를 전수해 놓은게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잊어버림 또한 범위를 점차 넓혀간다. 그렇지만 당황하지 않고 깔끔하게 인정하고 전략을 세운다면 지혜롭게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된다면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일이 뭔지를 생각하고 그게 이를 닦는 일이라면 칫솔대에 약을 담은 주머니를 고무줄로 묶어 칫솔대에 매달아 놓으라는 누구나가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누구나를 위한 톡톡 튀는 기발하고 기특한 아이디어를 끼워놨다. 사실 아직 젊은 나이축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나이인 나도 버스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내 손이 허전한 걸 깨닫고 가방을 탈탈 털어보지만 이미 떠나버린 폰을 애타게 불러본 기억이 네댓번은 족히 될 정도로 건망증이 가끔 치솟아 대는 탓에 더 유심히 읽어 내려 갔다.

 

 

신중한 속도로 생각하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바람직하다. 사람들은 아마도 유치원에 다닐 때쯤부터 "잠깐 멈추고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누차 들어왔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아주 빠른 것은 결국 너무 느린 것만큼이나 다를 바 없이 더디게 닿는도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베스트셀러에도 오른 '다만 느린 것 뿐이다'라는 책도 있듯이 요즘 느리게 사는 것이 대세 반열에 슬슬 시동을 걸어대는 건지 종종 화두에 오르고 있다. 어쩌면 광풍을 몰아친 힐링도 잠깐의 쉼표를 찍는 느림의 한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무조건적으로 쉬라고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쉼에도 타이밍을 캐치해야 되나 보다. 꽤나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솔깃하게 하는 몇가지를 읊어준다. 신성을 모독하는 언행과 욕설을 자주 하게 된다, 자기 실수를 남의 탓으로 돌려 비난하는 일이 늘어난다, 결정 내리는 것을 여러 번 연기한다,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낀다,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가 싫어진다, 과식하거나 식욕이 없어진다…….

애석하게도 지금 내 꼴, 내 처지를 ctrl + c, ctrl + v 해 놓은것만 같다. 내 이면의 숨겨진 본성이 들춰진 기분이었다. 내게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걸까.

 

 

또 다른 저자라고 칭할 수 있는 이 책을 옮긴이가 존 로빈스의 인간관계에 대한 몇가지 충고를 추천해줬다. 첫째, 친절하라. 둘째, 남의 고통에 귀 기울여라. 셋째, 내게 도움을 준 사람을 생각하라. 넷째,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라. 다섯째, 애정만으론 안 된다. 노력하라! 여섯째, 칭찬할 일을 찾아라. 일곱째, 받기보다 베풀 일을 찾아라.

 

혼자서 여행을 가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 여유가 여간 낭만스럽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헌데 도통 용기가 나지 않아 차마 시도까진 하질 못하고 있었는데 차츰 늘 곁에만 있을 줄 알았던 친구들이 한 둘 결혼을 하면서 애기를 돌봐야 했고 또 누구는 직장생활에 쩔어 지내야 했고 누구는 해외로 여행을 훌쩍 떠나버렸고 그렇게 각자 인생의 틀을 짜내가느라 바빠서 함께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혼자서 가끔 길거리를 거닐다가 한 번, 밥을 먹다가도 한 번 외로움이 드문드문 찾아들 때가 생겨났다. 그때마다 소외감에 한 없이 우울해지고 낮에 있었던 좋았던 일을 다시 되새겨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약속을 잡고 오랜만의 지인들과 조우를 하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이미 안드로메다에 착륙해버린지 오래다. 참 신기할 따름인데 실로 느끼는 것이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한 것 같다. 그 갈등으로 인한 자살까지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할 사안인 것 같다. 물론, 혼자가 더 편한 이들에게 왈가왈부할 얘깃거리가 되진 않겠지만.

 

 

건강의 객관적 지표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이가 들었다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라도 시작해 보는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적당한 수준에 대한 도전, 작으나마 이루어지고 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 익히는 순간 도파민(쾌적 호르몬)이 분비되어 기대와 흥분, 의욕 등이 넘치다 보면 즐거운 생활 패턴이 생겨난다. 이것이 변연계의 해마에 '즐거운 일'로 기록되면 기회가 될 때마다 또 하고 싶은 일이 되고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굳어진다.

 

작으나마 이루어 지고 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 요즘 내 가슴에 고스란히 스며들고 있는 새 영역 확장에 대한 보상 내역이다. 스팩과는 동떨어진 게 단연 취업을 위한 목적달성의 도구 노릇을 할리 만무하지만 내 자신과 진중한 소통끝에 이끌어낸 통로이다. 꼭 그렇듯이 오지랖을 폴폴 풍겨대며 한마디씩 걸치고 보는 이들은 한낯 헛짓거리, 분수에 겨운 돈 낭비, 시간을 갉아먹는 행위 따위로 정의를 해대며 격정적으로 말려댔지만 내 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고 기어코 실행한 그 일들에 대해서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을 뿐더러 외려 희열을 휘감고 있다. 그들은 내게 남들보다 뒤늦었고 그만큼 더 뒤쳐질 것이라 몰아세웠지만 내 인생에선 절대 늦지 않은 일이고 지금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꼭 할 일임에 틀림 없고 무엇보다 그로 인해 내 삶을 찾아가고 있어서 결단코 난 후회를 하지 않는다.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무엇인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안함 속에서 더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함으로써 더욱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은 "눈과 얼음에 덮인 코카서스 산맥 위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손으로 불을 쥐어보려는" 것과 같다. "아 슬프도다! 좋았던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앞으로는 더욱 나빠질 것뿐이라는 감정밖에 주지 않는다."

 

노인이 되는 게 싫었고 노인이 되 가는 엄마도 싫었다. 그렇다고 '노인'인 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었는데 자꾸만 쓸데없이 밖에 돌아다녀서 집안 식구들 걱정을 사는 할머니는 왜 그런지 이해가 안갈 때가 종종 있었다. 가뜩이나 허리며 무릎이며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다고 끙끙 앓는 소리를 달고 다니시면서 굳이 집밖을 나가시는지 얌전히 집에 계셔주면 좋으련만 생각했었다. 단지 할머니라는 이유만으로 집에만 있는 걸 단연시 여겼는데 할머니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갈등요소가 하나 늘지 않게 속박하려 든 건 아니었는지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뿌옇게 안개가 드러누워버린 현실이라 노년까지는 전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생각하려고 조차 하지도 않았었다. 사실 지금도 드는 변함없는 생각엔 당장 마음내키는대로 계획을 짜고 설계도면을 그려놓은들 아직 3~40년은 족히 남은 뒷 일에 불과한 것을 미리 머리에 싸매는 꼴 밖에 되지 않나 싶다. 사람의 천성인 변덕 또한 무시못할테고. 그래서 이 책을 괜히 읽었다고 후회를 하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그 언저리에 닿아 있는 부모님의 '노년나라'가 튼튼하게 설립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지원사격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겪어야 될 필연적인 단계, 그 어느 틈에서 가냘파질 마음 단단히 부여잡고 생을 놓아 버릴 그 순간까지 실컷 즐기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