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게 좋아요.
글을 읽으면 머릿속에 저만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거죠. 주인공이 지문으로 대사를 하고 글의 표현대로 움직이고 뛰고 슬퍼하고 웃고~~그러면서 책 속에 빠져들어요.
제가 그동안 아이들을 위한 역사 동화를 몇 권 읽어봤는데 역사 동화가 그런 영상화가 잘 되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역사 동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파란자전거 역사 동화는 이제 두 권째 만나고 있는데요.
<신석기 고래왕 해솜솜>도 참 재미있게 읽었었죠. 그래서 <책 깎는 소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머릿속에 드라마가 펼쳐지더군요.
13살 딸아이가 먼저 읽더니 너무 재미있다며 저에게 적극 추천하더라구요.
봉운이가 이 책의 주인공이에요.
하지만 등장부터 마음이 애잔합니다.
아버지가 봉운이 삶에 큰 도움이 안 되거든요. 지난해 농사지은 돈을 몽땅 가지고 나가 도박으로 모두 잃고 돌아오고, 또 봉운이가 찾은 나무를 팔아 번 돈도 몰래 들고나가 버려요. 초반부터 갑갑한 마음으로 봉운이를 지켜보게 되네요.
하지만 한편으론 봉운이가 찾은 나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책 깎는 소년>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가게 될지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낯선 용어들은 이렇게 별도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어요.
역사 동화인 만큼 현재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이 등장하는데 이렇게 또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담고 있지요. 소리꾼, 소리판, 판소리 등 당시 우리의 서민 문화들도 더불어 만날 수 있는데요.
봉이의 어머니가 소리꾼이었네요. 저는 봉운이 아버지가 안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남의 아이를 갓 낳은 봉이 어머니를 데리고 왔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봉이와 봉운이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였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들은 서로 모르고 끝까지 언급이 없더군요. 엄마가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줘서 그럼에도 친남매처럼 지내는 두 아이에 대해 좀 더 극적이게 보이도록 해도 좋을뻔했어요.
무언가 이룬 사람들을 보면 운명처럼 그 길로 들어선 경우가 많아요.
우연하게 좋은 나무를 만나게 되고 운명처럼 서포에서 일을 시작하고 각수 어른을 만나게 되죠. 봉운이가 서포에서 책판에 먹칠을 해본 일은 봉운이가 각수가 되는 운명의 시작이었단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봉운이와 상대가 될 장호도 등장하는데요. 이 두 아이의 선택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꿈을 이루는 데 있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됩니다.
나무를 잘라 나무판을 만드는 과정도 살펴보는데요.
나무를 잘라 소금물에 삶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리는 과정을 각수가 되겠다는 장호는 귀찮아하고 봉운이는 흥미로워하지요. 두 아이의 태도만으로도 나중에 두 아이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짐작이 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는 이야기책을 만들려면 이 정도의 고생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봉운이와 괜히 서포를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장호의 태도는 확실한 차이가 있지요.
각수가 되겠다더니 각수 어른이 차근차근 책판을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려고 해도 바로 글자를 새길 줄 알았던 장호는 투덜거리기만 합니다.
책판을 만드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장호에게 글자를 새기기 전의 과정은 그저 시간만 잡아먹는 불필요함으로 느껴졌을 테지요.
하지만 장호의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봉운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런 마음을 갖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봉운이는 서포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도 각수 어른을 돕기 시작했는데요. 장호가 포기한 대패질도 열심히 하자 각수 어른은 봉운이에게 책판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알려줍니다.
봉운이는 나무가 자라고 나무를 말리고 책판을 만들기까지의 긴 시간들을 견뎌야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는데요. 그러한 과정도 고통보다는 즐거움으로 느껴졌지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에 위안을 느꼈죠. 힘이 들어도 글자를 새기는 일은 봉운이에게 꿈이 되었어요.
봉운이가 잘 되어가고 있지만 그럴 때면 꼭 무슨 일이 생기더라구요.
새로운 책판을 새기고 책도 찍어냈는데 그 새 책판이 도둑을 맞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서포를 나선 게 봉운이었기에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되어 관아로 끌려가 곤장을 맞을 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각수 아른이 책임을 지겠다고 해서 간신히 풀려나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각수 어른은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서포를 떠나버렸는데요.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봉운이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답니다.
하지만 봉운이는 봉이가 배우는 판소리를 글로 적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각수 어른을 찾아 함께 작업을 하기 시작해요.
뭔가를 사랑하고 관심을 갖다보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을 생각하게 되죠.
처음엔 솔직히 가난한 봉운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설정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의아했어요.
부모로부터 배운 것도 없는데 책을 읽을 수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언급이 하나도 없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당시 글이라는 게 한글이기 때문인가 싶기도 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책을 팔아 돈 버는 것에만 욕심을 갖던 장호는 결국 형 또출이와 함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한 '선택'의 결과가 드디어 결말 부분에 나타나는데요. 그렇게 싫어하고 벗어나려고 했던 형의 모습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는 장호의 모습에서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럼에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봉운이가 만들어낸 책이 세상에 나왔어요.
소리를 글로 만들어 세상에 더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봉운이의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하겠지요.
우연하게 만난 훌륭한 나무 한 그루는 봉운이를 각수의 세계로 이끌었어요. 책판을 만드는 힘들고 고된 과정들도 봉운이에겐 희열을 느끼게 해주고 책판으로 책을 찍어낼 때 역시 기쁨을 느끼는 봉운이를 통해 같은 꿈을 꾸었지만 목적이 달랐던 장호와 극명한 비교를 해볼 수 있었답니다.
사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만을 기억하지요. 하지만 그 이야기가 어떻게 책으로 남겨졌는지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는 않았어요. <책 깎는 소년>을 읽으면서 각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책이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소리를 품은 조선의 베스트셀러 완판본<열녀춘향수절가>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완판본 말미에 남아 있던 각수 박이력과 서봉운이 이 책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요즘에야 워낙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책이라는 것이 정말 귀한 것이었죠.
<책 깎는 소년>은 책의 가치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고 삶에 있어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끔 하는 귀한 책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