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투의 베란다 쇼’에서 서민 교수님을 처음 보았다. 개그맨 같은 유머 감각, 서울대 출신 의대 교수임에도 소탈하고 재미있는(얼굴에 빨래 집게를 가득 꼽거나 앉아서 청소하는 기구를 타고 체험해보기 등) 태도에 참 독특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서민 교수님의 성장, 인생,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의사로서 의학 상식과 의료민영화에 대한 의견, 정치적 의견, 글쓰기와 기고에 대한 이력 등 서민 교수님의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총망라한 책이다. 말미에서 밝혔듯이 과거에 대해 말 못했던 사연도 나오고, 교수님의 인생과 삶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검사인 아버지와 약사인

어머니를 가진 서울대 출신 의사, 탁월한 유머 감각, 독특한 전공이 남들이 흔히 교수님을 보는 시선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좋은 머리로 태어나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아버지의 구박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틱 장애와 말더듬는 증상이 있는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친구도 없고, 공부도 못했다고 한다. 이런 부분이 교수님에게 큰 상처였다고 한다.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도 놀림감이 되었던 못 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고민들인데, 말하기 어려웠을 것 같고, 또 그만큼 후련했을 것 같다. 교수님 스스로도 과거에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고 앞으로 더 멋지게 살려고 한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교수님도 마음 속 찌꺼기를 훌훌 털고, 자신감이 없어 어려워 하는 사람들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민 교수님은 학생 때 의대에서 체험 학습을 통해 기생충학을 접하고, 임상의사보다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천직을 찾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자신의 천직을 찾은 사람들을 보면 경이롭고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에서 직관적으로 ‘이거다!’하고 찾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운명이라 하기에는 석연찮은 결론이고, 그 차이점이 뭘까? 자신의 욕구를 잘 이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일까?

 

서민 교수님에 취향역시 개성이 강하다. 100여 개의 야구모자나, 기생충 박물관을 위한 매주 로또 사는 것은 교수님의 독특한 취미이다. 개를 자식같이 사랑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를 책임감 있게 키우지 못할 사람들은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평소 내 의견과 같은 공감대를 발견하여 반가웠다. 서민 교수님이 과거 노사모 회원이었으며, 진보쪽 지지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베란다 쇼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신 일이 없어 처음 알게 되었다.

 

방송에서 자신의 유머로 즐거움을 주는 서민 교수님. 그 유머도 피땀으로 쌓아올린 것이며, 방송 이면에서 고민도 하고 걱정도 한다는 솔직한 고백을 들려준 책이다. 이 책이 교수님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은 우울증에 대해 내개 읽은 두 번째 자전적 기록이다. 지난번에 읽은 책은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이다. 그 책과 비슷한 부분도 있었지만, 더 무거운 느낌도 든다.

두 책의 주인공은 공통점이 있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가진 커리어우먼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타냐 잘코프스키는 우울증 환자는 타인의 기대에 보다 완벽하게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탈진상태에 빠지고, 자신의 진정한 욕구의 소외가 일어나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두 책의 여주인공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신의 병을 일으켰다고 이야기 한다.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는데, 이런 이유로 촉발되는 것인 줄은 몰랐다.

 

우울증은 이름처럼 우울한 감정이 드는 현상으로만 생각했고, 병보다는 나쁜 감정의 연장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과도한 부담감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적인 상태라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처럼 부담감을 줄이면 감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계속 발생하는 것을 보니 감정 상태에 문제가 생긴 ‘병’이 맞는 것 같다. 증상도 매우 심각했다.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울기만 하고, 통화나 외출도 너무 어렵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공포에 가까워지고,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한정없이 드는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저자의 우울증은 반복성이어서 어제는 죽을 것만 같아도 오늘은 괜찮아지기도 한다. 우울증이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이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과는 다른 점은 한층 어두운 분위기이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은 우울증에 걸린 저자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8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이어서 그런지 주인공에게 예상되는 미래가 한 층 밝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하는 부유한 부모님, 자신을 버리지 않는 오래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20대 여성이다. 자신의 우울증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였다는 것을 알고,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고, 남자친구와 함께 퇴원한다. 직장은 그만 두고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반면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의 타냐는 위의 소설처럼 독자에게 밝은 미래를 확답하지는 못한다. 타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우울증에 걸렸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에 대한 소외감이 큰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리자 많은 친구들이 외면하고, 남자친구도 떠난다. 인터넷 데이트 상대도 우울증이라는 말에 대부분 등을 돌린다. 35세이지만 가정도, 아이도 없다고 한탄한다. 직장도 함부로 그만둘 수 없는 것 같다. 8주간의 입원치료 후에도 여전히 우울증은 찾아온다.

 

책은 타냐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가며 끝이 난다. 이곳에서 저자는 밝은 태양과도 같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노라고 다짐한다. 타냐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치료받으려는 용기를 냈다. 또한 주위사람들에게 알리고, 출판까지 했다. 우울증으로 의욕이 없고, 정신병 환자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저자가 자신이 원하는 밝은 미래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제목은 ‘행복의 역습’이다. 목차를 봐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은 잘 가지 않는다. ‘현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해지고 있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누구나 들어본 말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현대에 부족한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여기서는 ‘인공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가짜로 행복감을 꾸며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정신과 약물, 운동, 대체의학, 종교이다. 이들 인공행복 옵션들은 대중, 의사, 보험회사, 종교인, 대체요법사, 피트니스 클럽 등 다양한 집단의 요구와 이익에 맞춰 대중의 삶에 침투한다. 마취과 의사인 저자는 인공행복이 만연하게 된 역사를 의료계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인공행복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불행을 박탈한다고 말한다. 불행은 사람들의 마음속 일종의 양심이다. 자신의 삶이 옳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이를 개선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양심 말이다. 인공행복은 이러한 마음속의 나침반을 빼앗아가고, 사람들이 옳지 못한 삶에 안주한 채 스스로를 위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거나, 올바른 정신으로는 하지 않았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저자의 생각 또한 지나치게 편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개인적으로 요가, 운동, 명상, 종교, 독서, 한의학을 통해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많은 발전과 평화를 얻었다. 사고가 발전하고 심신이 건강해져 감정적 여유가 생기니 같은 삶이라도 좀 더 긍정적이고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불행을 요가나 명상으로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행보를 좀 더 행복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 효과는 나뿐이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도 누리고 있다. 저자가 운동, 명상, 대체요법, 종교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끝으로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진정한 행복은 인공행복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점에 가서 세계의 위대한 신념과 철학에 대한 책을 읽으면 삶의 방향이 보인다고. 물론 이 방법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현철들의 한 두 마디는 삶은 번쩍 번쩍 일깨우는 한 줄기 번개와도 같다. 저자의 독자로서 권해드리고 싶다.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로서, 요가와 명상, 종교도 시도해보시는 것은 어떠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