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읽게 되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 신드롬’으로 유명한 책이다. 자살을 유행시키고 저자가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나도 읽히는 책이다. 어떤 마력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그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걸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주인공인 베르터가 친구에게 보내는 서간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간문 형식의 소설이 유행한 당시에도 맞교환식이 아닌 혼자만의 서신으로 구성된 형식은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21세기에 소설을 펴든 나도 잠시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구성이다. 또한 이런 형식은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르는 베르터의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베르터라는 인물은 열등감과 거만함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지적 능력에 한껏 자만한다. 그런 자만심 기저에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참함과 우울함이 항상 깔려있다. 그에게서 자신의 비참함을 헤쳐나오고 사회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상황인식이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지적능력과 자만심으로 비참함을 변명하고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지적이지만 현명함과 성숙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작은 일에도 극단적인 감정 널뛰기를 하는 모습은 사춘기 청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베르터는 로테와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로 로테의 각별한 호감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로테는 현실적이고 현명한 여자라 베르터와 같이 엉뚱한 고집으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과 편견에 젖은 감정 널뛰기를 하며 혼자 자신의 지적인 우월성에 감탄이나 하는 남자를 결혼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베르터가 로테와 관계가 진전이 안 된 것은 배우자로 생각하기에는 위와 같은 결정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같이 어울리기에 좋기는 한데 배우자로서는 정말 아닌 사람인 것이다. 게다가 알베르트 같은 좋은 남자도 이미 옆에 있는데 말이다.

 

베르터는 자살을 한다. 이 자살로서 그의 다소 유치한 행보는 비극으로 변모한다. 만약 그가 사회에 잘 적응해서 중년이 되어 과거를 반추했다면 ‘어린 시절 철 없이 작은 일에도 뇌화부동하기도 했던 그 시절’ 쯤으로 회상을 했을 것이다. 지적이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사회에 잘 적응만 해나갔다면 중년에는 사회적으로 성공도 했고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는다. 죽음은 인간 생에 있어 가장 큰 비극이다. 베르터는 죽음으로써 현대의 젊은이들도 흔히 부딪히는 사랑,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사회생활,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훌륭히 대우를 받지 못하는 괴로움처럼 기성세대에게는 어린 사람들 일쯤으로 치부되는 젊은이들의 중요한 고민들을 강한 감정적 동요와 함께 공감해준다. 이로써 젊은이들의 지상 최대의 고민은 기성 사회에게서 작은 일로 무시당하다가 강렬한 비극과 고뇌로 인정을 받는다. 이래서 그는 독일 청년들의 강한 공감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공감에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인생은 고난이므로 쉽게 살려고 하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 당시에는 괴로운 일도 돌아보면 알찬 경험이다. 싫어도 그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한창 살아가는 젊은 나이에는 힘든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인생에 스크래치는 어쩔 수 없는 부수물이라고 생각하고 유연하고 강하게 살아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괴테는 젊은이들의 가장 아픈 곳을 꾹 눌러놓고는 자살을 아픔의 종료와 멋진 대미와 같이 장식해버린다. 괴테에게도 베르터와 같은 괜한 심술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롭다는 것은 이해하는데, 인생이 다 그런 것이다. 나만 그런 것처럼 각별히 오버할 필요가 없다. 젊음을 감사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꿋꿋하게 살자.

 

 

처음 ‘미움받을 용기’를 읽게 된 것은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에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는 호기심에서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케인스의 거시 경제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함께 20C 3대 이론으로 불리며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학문이다.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꿈, 실수를 정교하게 파고들며 이론을 세우고 정신 치료에 유효한 의학으로 이끌어낸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한 개인이 얼마나 대단하고 큰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프로이트의 이론에 배치되는 주장이라니, 정말 궁금했다.

 

이 책은 딱딱하게 철학적 이론을 전개하는 책이 아니다.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의 심리학을 공부한 은자와 철학책을 손에 들고 미래를 꿈꾸는 동시에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는 한 청년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지인들과 나누는 문답이나 옛날 동양 고전의 문답 형식의 책을 보는 것 같다. 앞에서는 서서히 쉬운 개념으로 시작하여 아들러의 이론에 빠져들며, 뒤로 갈수록 어렵고 중요한 개념을 전달한다. 다른 철학책처럼 생소한 단어로 머리가 아프고 읽었는데 잠이 오는 책이 아니다.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아들러가 내놓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배치되는 주장은 ‘인간은 과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은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는다. 이는 해결하기 어렵고 피하고 싶은 문제를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이유로 내버려둘 수 있는 핑계를 제공한다. 아들러가 말하는 삶은 과거에 메이지 않는다. 과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순전히 현재의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인간은 과거에 메인 존재가 아니다. 용기만 낸다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아들러가 말하는 용기는 정말 미움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 이것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과거에 메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메이며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기하게 된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무료한 삶, 불행한 기분이 파생된다. 다른 사람이 탐탁치 않게 여기더라도 나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미움받을 용기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다른 심리학과는 다르다. 마치 라즈니쉬의 말을 심리학 버전으로 듣는 느낌이 든다. 삶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과거, 미래, 다른 사람에게 매여 인생을 소비하는지는 보여주며, 자신의 삶을 따라가고 찰나를 즐기는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흐릿한 조명을 비추며 과거와 미래를 보려고 하지 말라. 어차피 잘 보이지 않는다(ㅋㅋ). 현재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살아가라.’ 라즈니쉬가 할 법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러, 라즈니쉬의 책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고 당장 인생이 180도로 바뀌지 않아도,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며 1도씩은 바뀌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책을 좀 더 봐야겠다.

 

평소 명상 서적을 좋아 합니다. 명상 서적을 읽는다고 정신에 갑작스러운 대이변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한 단계 더 높은 시선을 접하는 것이 제 삶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바꿔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가다 보면 모난 성격, 쓸데없는 고집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자신의 모난 부분이 얼마나 쓸데없는 군더더기인가를 이해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버려나가게 됩니다.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면 더 이상 바보가 아니라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과정입니다.

 

‘마음의 힘’은 제가 읽어본 명상 서적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전도유망한 변호사로서의 삶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과정에서 파울로 코엘료, 디팩 초프라와 같은 이 시대의 영적 사상가 열여덟명의 인터뷰를 엮어 냅니다. 열여덟명의 사상가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 지경이었습니다. 한편 사공이 많은 배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가 일정한 파트를 두고 엮어내고, 영적 사상가들의 인터뷰 내용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멋진 구성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유독 잔잔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경쟁적인 삶 속에서 항상 가쁘게만 하던 호흡이 이 책을 읽으면 인체 본래의 속도로 천천히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명상 서적을 읽을 때 가끔 할 수 있는 실제 신체적, 감정적 변화입니다. 이 책은 마음을 따라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삶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법 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잔잔한 마음 속에 명사들이 던지는 말들이 마음 속에 일으키는 파고들에서 평화로운 사색과 여유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밝아지고 더 행복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유명한 명사들이 과거에 현재의 저처럼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고통, 어지러움을 느낄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분들도 이 시기를 거쳤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기를 거쳐 마음의 성취를 이루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며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삼 제 인생의 군더더기를 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후기를 쓰다보니 이상한 쪽에 빠진 사람이 쓰는 글 같이 되었네요. 하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이 책을 통해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속에 평화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