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집을 때는 삼국유사인줄 알았다. 이 책의 제목은 삼국유사가 아니라 한국유사였다. 한국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았다고 저자가 한국유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나는 본래 있는 고전 이름인줄 알았다. 저자의 약력도 독특하게 씌여 있다. 저자의 학벌이나 성장이력이 씌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광이라고 씌여 있다. 이 책은 한국사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라고 한다. 저자의 목표는 다음에는 세계사로 그 범위를 넓혀 잘 알려지지 이야기를 모아서 책을 내는 것. 역사 속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사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누군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건 간에 기존에 있는 것을 보고 만들어내는 것이지 정말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고전 소설부터 현대 드라마에 까지 이어지는 인공적인 이야기는 시대를 내려올수록 신비감이 떨어진다. 반복되는 싸움과 애정이라는 모티브는 자극적인 소재가 더해질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 반면 과장된 면이 있다한들 역사는 사실로 진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작위성이 적어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긴장과 감동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국유사를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무엇보다 꿋꿋한 사랑 이야기다. TV 사극에서 가끔 국경을 넘어다니며 다른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사랑의 탈주를 벌이는 내용은 퓨전 사극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삼국시대에는 영화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신으로 온 다른 나라 왕자를 사랑하여 남장을 하고 국경을 넘어 탈주한 공주가 정말 역사상에 존재했다. 다른 나라 왕자를 사랑하여 탐관오리의 결혼 강요에 감옥에 갇혀있는 호족여인과 영화처럼 그 여인을 구하러 온 왕자도 있었다. 은신 중에 만난 고리 백정의 딸을 정실 부인으로 맞은 조선시대 양반도 있었다. 요즘엔 남녀 사이 잠깐 오가는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사랑을 목숨이나 안위와 맞바꿔 지켜내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한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여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보인 주체적이고 용감한 태도도 놀라웠다. 나보고 국경을 몰래 넘으라거나 연락도 안 되는 다른 나라 사람을 몇 년을 기다리라고 하면 그냥 좋아하는 사람을 포기할 것 같다.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누가 뭐라든 신념을 지켜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실제 이야기라니, 감동도 밀려왔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고구려가 남긴 찬란한 승전의 역사이다. 이 책 직전에 임진왜란 왜군을 맞아 도망만 가는 조선군을 본 후라 더 짜릿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살수를 넘어오는 지상군 10만 이전에 해로로(중국군이 해로로 우리나라에 오기도 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4만 명이 평양성에 접근했었다. 평양성은 본대는 지상군 10만을 맞이하기 위해 출군했고, 성에는 500명 뿐 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장군과 노련한 정예병 500명은 4만 명의 중국군을 물리친다. 이것이 실제 역사라니. 글 몇자를 읽으며 너무 통쾌해졌다. 그 외 고구려군의 전투이야기를 보면 전쟁의 신의 나라쯤 되는 것 같았다. 이런 나라의 후신인 조선이 그렇게 나약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유사’는 역사 속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이다.

평소 명상 서적을 좋아한다.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명상 서적을 쓴 사람들은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 변하는 것’을 하지는 못해도, 삶에 대한 한 차원 더 높은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약간씩 과거와는 다르게 더 진보된 방향으로 살아가게 된다. 또한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저자마다 표현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가 좀 더 쉽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명상 서적을 읽을 때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가며 읽는다. 이런 탐색 과정에서 내 인생에 변화를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별로라고 느껴지는 책도 이 과정에서는 소중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탐독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닐 도널드 월쉬,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9가지 의식혁명’의 저자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이력이 흥미로웠다. 이혼을 다섯 번하고 노숙자가 되어 인생의 바닥을 치던 그는 신에게 항의성 편지를 쓴다. 그러다가 3년간 매일 새벽에 신으로부터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려운 결혼을 여섯 번이나 했다니, 이것만으로도 그는 대단한 능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집념과 능력을 가진 사나이는 당연히 부단한 노력을 하며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인생을 바닥을 치다니,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가 강한 집념을 쏟아부어 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자 신에게 답신이 왔다는 것이다. 궁하면 통하고, 진정으로 노력하면 꿈에서라도 누가 가르쳐 준다는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책장을 펴게 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이론을 세웠다. 그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의 사실을 모으고, 이해를 위해 편의상 원하는 대로 잘라내고 의미를 부여하여 저장한다. 어떠한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 사람의 마음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저장해놓은 곳에서 어떻게든 현재와 유사한 상황을 찾아서 꺼내온다. 그리고는 그 상황에 대해 내린 자신의 정의를 현재의 상황에도 다시 적용한다. 이것이 같은 상황에 사람마다 다른 반응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기반해 왜곡한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런 마음의 기전을 이해해야 이를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내 마음이나 생각을 바라보니 그의 이론대로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 이런 당연한 것을 설명해주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자의 방식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내 머리가 금방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복잡하고 어렵다.

 

다음으로 왜곡된 현실의 쳇바퀴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변화는 항상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일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근원이 되는 영혼, 생명의 에너지는 끝이 없다. 영원히 계속되는 생명이 고리이다. 이 에너지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연인과의 이별, 해고, 삶이 흔들리는 각종 사건이 삶에 해로운 것으로 보이는 것은 마음이 그 표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올바른 시선을 가지게 되면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은 괴로움과 처연함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 현실에 적용을 해보려 했다. 잠깐 마음이 설득을 당하는 것 같더라도 곧 다시 돌아온다. 저자는 이에 대해 늙은 개를 다시 길들이는 것과 같다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책의 끝 부분에서 ‘체에 물을 담아오라고 시키는 현자’ 이야기를 예로 들며, 체에 물을 담으려면 아예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푹 빠져서 해야 한다고 한다. 당장 이 이론대로 사고하지는 못하더라도, 변화를 대하여 내 삶에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바라보려 노력하기로 했다.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9가지 의식혁명’은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이론 체계를 담은 책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현실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잘못된 방식,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 대한 설명은 괜찮았다. 이론이 뒷받침된 명상 서적을 원하시는 분들은 마음에 들 것 같다.

나는 원래 역사를 좋아한다. 플루타크 영웅전, 로마제국 쇠망사, 역사, 사기 등 세계적인 역사서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서를 읽은 것은 삼국유사 어린이용 다이제스트 정도였다. 내가 모르는 것인지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대중용으로 출간된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역사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고 이런 저런 책이나 방송으로 많이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해서 볼 만한 책을 검색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징비록’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성룡이 임진왜란에 대해 남긴 기록과 회고 이다. 징비는 시경에 나오는 ‘내가 잘못한 것을 징계하여 후에 환란이 없게 한다.’는 말을 줄인 것이라 한다. 조선조의 유명한 천재인 저자가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겪은 것을 생생히 기록하여 그 수준과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역사책이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 유학자의 나라인 우리나라에 이런 책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한편 이런 책이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고(내가 거쳐온 교육과정에서는 그렇다)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공인되지 않은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발발과 전개를 쭉 기록한 책이다. 통신 기술도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기록할 수 있었는지 정말 신기했다. 물론 유성룡은 조정의 관료였고, 여러 사람들에게 듣는 말도 있었으며, 전쟁의 지휘에 직접 관여를 한 사람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관료가 한심할 정도로 허둥되는 상황에서 전쟁의 시작과 끝부터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징비록에서 나오는 지시나 생각이 현실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임진왜란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내가 알고 있던 임진왜란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섬나라를 통일하고 자국의 군사 세력을 소진 시키려고 조선을 부당하게 공격한 전쟁. 이로 인해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명이 멸망하는 계기가 된 전쟁’이다. 이런 일반적인 인식에서 나쁜 것은 일본, 조선은 엉뚱한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징비록에서 본 조선은 피해자가 아닌 전쟁을 초래하고 방치한 ‘방조자’에 가깝다. 일본은 조선에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루트를 내 달라’라고 했다. 이것은 만세고금에 통하는 전형적인 침략멘트이다. 유명한 사기에도 흔히 나오는 내용으로 사대부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은 당연히 전쟁에 방비를 시작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선의 관료나 백성이나 ‘설마 전쟁이 나겠어’, ‘공사하고, 훈련하고 귀찮다’는 반응을 보이며 전쟁에 대한 방비를 대충한다. 그래서 부산-한양이 20여일, 평양까지는 60여 일만에 일본군이 점령해버린다. 명에서 ‘조선이 일부러 일본에게 점령 루트를 내주지 않는 이상 이렇게 빨리 오는 것을 불가능하다’며 의심해서 조사를 나올 정도였다. 그 과정을 속속들이 보면 믿기 힘든 일화들이 산재한다. 조선군은 왜군이 보이기만 하면 도망친다. 왜군에 첫 승리를 거둔 장군은 승리 직후 사형당한다. 오해로 조선군을 도륙한 장군은 상을 받는다. 전쟁이 진행되고 명나라에서 지원군이 온 때에도 싸움이 두려워 피하는 장군이나 군관이 부지기수이다. 많은 역사서를 봤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고 해이한 전쟁 이야기는 처음 본다. 평양을 지킨 살수대첩이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 해이하고 약한 나라를 다른 나라가 침략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현대도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는 꼭 과거와 같은 군사침략이 아니더라도 정치, 경제적인 침략을 당한다. 적을 보면 도망치는 장군과 군대를 보유한 나라, 침략을 예견하고도 제대로 방비를 하지 못한 나라는 당연히 침략을 당하게 되어 있다. 조선이 그때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런 기가막힌 참상을 전한 것이 징비록이었다. 이 책이 대표적인 한국의 역사서가 되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창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유성룡이 굴욕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후일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웬걸, 200년 후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한심한 역사를 돌이켜 보며 후손으로서 새겨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현재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에 따른 방비이다. 그러려면 임진왜란과 같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의 년도와 의병장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해이한 나라는 다른 나라의 밥이 된다는 세상의 법칙을 배울 수 있다. 다른 나라의 휘황찬란한 역사서의 승리와 굴욕의 역사도 많은 교훈을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외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이야기, 그로 인한 끔찍한 피해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와도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또한 왜국 일본은 아직도 황당한 발언과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의 속내를 파악하여 방비를 하고 우리나라의 힘을 키워 애초에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원리는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사에도 적용되는 내용일 것이다.

 

뼈아픈 역사를 기록한 ‘징비록’. 유성룡이 경계한 왜국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피해를 본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슴도 아프지만 허술한 대처가 황당하기도 하다. 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