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무감각해질 때, 이 때가 고전문학을 집어들기 적합한 때라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왜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고 지겹겠는가? 새로운 무엇이 와도 감지하지 못하는 둔한 정신때문일 것이다. 이런 둔감한 정신으로 매일매일을 보내기 때문에 10년 20년을 살아도 과거와는 달라진 것 없는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따금씩 스스로를 깨워줄 필요가 있다. 감성도 깨워주고, 지성도 깨워주고, 호기심도 깨워주고. 이 중 감성을 깨우는 데에는 책 중에는 고전문학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련님’이라는 일본 첫 번째 현대 소설 문호라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책을 좋아해도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이 도련님이라는 제목은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역사책이나 사극을 볼 때 남의 분노를 치밀어 올리고, 이따금씩 뉴스를 통해 그 때 그 역사가 아직 종결된 것이 아니라고 도발할 때마다 또 다시 내 분노를 치밀어 올리는 나라의 소설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일본 소설로는 이 책을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도련님’은 자기 중심 서술로 된 소설이다. 뒷 부분 설명을 보니 오타쿠적 자기중심적, 자기의미부여적 서술은 100년 념게 이어져 오는 일본 현대 소설의 전통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도련님’의 시선에서 혼잣말, 혼자 생각을 실컷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읽다보면 도련님은 옛날 소설 같지가 않다. 비슷한 시기의 한국의 근대 소설을 보면 옛날 이야기에 조선 사람들이 양장만 차려입고 나온 느낌이 들 정도로 어색하고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도련님은 현대 소설을 읽는 것 같다. 23세의 치기어린의 젊은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내 안에서도 같은 감정이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어 100년 전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아닌 것 같다.
한 편 ‘도련님’은 히키코모리나 오타쿠의 100년 전 조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도련님이 자신이 20세가 되기 전에 죽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도이다. 하나밖에 없는 형과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만난 적도 없다. 기요라는 하녀가 어머니 이상으로 잘해주었지만, 기요의 애정에 대해 속으로 비아냥거리다가 타지에 나와서야 겨우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진학이나 직업의 선택도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싫고 어려운 것은 피하고 편해보이는 것이 눈 앞에 떨어지면 그저 주워 올릴 뿐이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 치고는 인생이 나름 잘 풀리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무력한 청춘은 이런 삶에 대해 딱히 자학하지도 않는다. 그저 속으로 외부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마구마구 비웃는 것으로 푼다.
이 무력한 청춘은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 무언가에 대한 적극적인 애착이 없고 비아냥을 달고 사는 것이 항상 기분 좋지 않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작가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속에서 상식과 의리가 존재한다. 도련님은 비열하고 비겁한 인간의 제안에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 무려 의리를 쫓아 달걀 투척과 주먹의 응징을 감행한다. 생각없이 사는 것 같으면서도 순수하고 의리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도련님인가보다.
‘도련님’은 가볍게 읽어도, 독서력이 된다면 심도 있게 읽어도 되는 책이다. 개성이 뚜렷한 인간 군상 사이에 비아냥과 귀차니즘을 안고 살아가는 순수한 한 청년의 인생 한 토막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