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는 믿을 사람은 믿고,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을 역사, 혹은 전설의 한 페이지에 나오는 책이다. 한고조 유방의 천하통일 뒤에는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책사 장량이다. 어느 날 다리를 지나는 장량은 황석공이라는 노인을 만난다. 신발 주어주기, 신겨주기 등 몇 가지 시험을 거친 후 노인은 책을 한 권 건넨다. 이 책이 바로 소서, 장량이 천하를 통일 할 수 있었던 계책의 근원이라 한다. 황석공은 이 책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전한다면 화가 닥칠 것이라고 했다. 장량은 소서를 전해줄 만한 인물을 만나지 못하여 무덤에 함께 묻었다. 이를 도굴꾼이 들고 나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신비한 느낌도 들고, 범인인 나는 이 책을 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받을 만한 사람이 받으면 화가 닥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약 2000천 년 전엔 일국의 책사인 장량 한 사람만이 볼 수 있었던 책이 도굴꾼의 손을 통해 대중서로 출판되게 되었다니, 우주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움직여서 꺼내놓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소서의 한문인 원문과 이에 대한 한글 풀이로 구성되어 있다. 소서의 본문은 매우 짧다. 타이핑해보지는 않았지만 A4 한 장 안에 다 들어갈 것 같다. 이 짧은 글 속에 역사를 바꾸고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진리가 들어있다. 진리는 간단하지만 체득이 어려운 것이겠지.

 

책의 첫머리에서는 ‘도, 덕, 인, 의, 예는 한 가지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소서는 전쟁을 통한 천하 통일을 이끌었던 책이지만, 싸움을 잘 하고 남을 이기는 방법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의심받는 일을 피하면 그르치지 않는다’, 남을 존중하고 겸손하고 방종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부지런하고 온화하면 마지막을 잘 지킬 수 있다’ 등 남을 치고 짓밟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 올바른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되려 사람을 아끼고 모으고, 인정해주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경쟁사회에서 강하게 앞으로, 위로 나가며 남들보다 잘난 것이 미덕인양 강조되는 현대인에게는 자칫 밍밍해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진리야 말로 고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 고전이 몇 천년을 지나도 읽히는 이유이다. 최근 유명한 고전을 읽은 후 머리와 가슴에 뿌듯하게 차오르는 기쁨 이외의 내가 얻은 소득을 깨달았다. 유명한 고전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소크라테스나 공자, 부처님, 제갈공명 같이 뛰어난 지혜나 지략이 샘솟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도 모르게 ‘판단력’이 쑥쑥 자라난다. 사람이 하는 평생 후회할 일이나 바보 짓은 그 타격에 비해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많은 일을 잘 해오고 열심히 살았는데 한 순간 판단 하나를 잘못하고 생각하나를 잘못 먹어서 몇 가지 행동을 했더니 길게 후회할 일이 생긴다. 판단력이 생기면 인생에서 이런 잘못된 경우의 수가 많이 줄어든다. 당장 내가 뛰어난 일을 해서 보란 듯한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도, 나쁜 일을 피해가는 것만도 인생에서 크나큰 수확이다.

 

한문을 쓰는 동양권의 고전이 가지는 장점은 소서에서 더욱 발휘된다. 한자는 표의문자로 한 글자에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한글로 된 풀이를 보며 한문 원문을 보면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히 한 글자에서 길게 머무르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 한 가지에 집중하는 능력은 3초라고 한다. 이 이상의 시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되면,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소서는 짧은 문장으로 ‘~~하면 ~~한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이 짧으니 글자가 적고, 개개의 글자에 좀 더 쉽게 집중할 수 있다.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게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깊은 사고, 깊은 이해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소서는 짧은 원문으로 이러한 집중이 더 용이했다. 두고두고 더 파고들어싶어졌다.

 

소서에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결과가 적혀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움직이고, 그로 인해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을 가졌나보다,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읽다보면 빠져들어가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소서를 읽으실 뿐이라면 한문 원문이 길지 않고 문법이 어렵지 않으니 한문도 같이 보시고, 또 따로도 보실 것을 추천한다. 한글로 된 설명도 참고하고, 한문으로 응축된 의미를 음미해보는 편이 더 재미있다.

 

소서를 한 번 읽어보니, 응축된 진리의 향을 한 번 얕게 맡은 듯하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의미있을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 진리를 얻을 수 있다니, 역시 독서가 제일 남는 장사라는 생각도 든다. 소서를 파고 들어서 새롭게 알게될 진리가 벌써 기대된다.

사람들은 항상 뛰어난 사람, 성공한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한다. 어떤 점이 그들을 남다르게 만들었을까? 남들은 평생을 따라다녀도 결코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부와 명예가 그들에게는 수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일까?? 그들에 대한 책은 스스로 자서전을 쓰지 않더라도 쏟아져 나온다. 어떤 유명한 금융투자자의 책이 도서관 한 쪽에 쭉 늘어서 있어 놀랐던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사전 두께의 책이 1, 2로 나뉘어 있기도 했다. 그 책의 저자들 중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 누군가에 대한 책을 쓰는데 그들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 제대로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분석한 사실도 물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만 봐도 실물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본인이 아니면 아무래도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국의 유명한 인터넷 백만장자, 마윈.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알리바바를 만들어 인터넷 사업으로 성공한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에 대한 책들도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그 중 그가 인정한 단 한 권의 책이 있다. 그 책이 ‘운동화를 신은 마윈’이다. 저자는 마윈이 큰 성공을 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방송계의 지인이다. 마윈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듣기로 했다.

 

마윈은 격식있는 자리에서만 구두를 신을 뿐, 차로 돌아오면 바로 운동화로 갈아신는다고 한다. 저자는 발로 뛰어서 알리바바를 일으켜 세운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해서 책의 제목을 ‘운동화를 신은 마윈’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성공한 인물에 대한 신비한 거품이 빠진 단백하고 의미있는 제목이다.

 

책에서는 보통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천재가 이루어 가는 쾌거가 아닌 한 뛰어난 인간이 자신의 꿈을 향해 하나하나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에서 인터넷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인터넷 불모지 중국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유혹도 존재했다. 안정적인 직장, 운영이 잘 되는 다른 사업체 등이 그것이다. 이는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꿈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는 이것이 아니라며 박차고 나가 자신의 구상을 밀고 나갔다. 그 결과가 바로 알리바바이다.

 

이 과정을 다루는 저자의 방식도 매우 마음에 든다. 뛰어난 인물을 다루는 많은 책에서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범상치 않았던 면모들을 다룬다. 마치 날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범상치 않던 삶은 쭉 살아오다 마지막으로 무림을 평정하는 무협지 주인공을 보는 듯하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지인으로서 보아온 마윈의 행보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상거래가 활발한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뛰어난 영어 강사로 인기가 많았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들렀다가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접했다. 인터넷의 미래를 발견하고 이를 중국에 도입할 생각을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업체를 시작했더니 운영이 그럭저럭 잘 되어 주위로부터 그 사업체만 운영할 것을 권유받기도 했다. 국영기업에 들어가기도 했고, 자신이 만든 회사를 고스란히 넘겨준 후 나오기도 했다. 자신보다 더 앞서나가는 것 같아 보이는 경쟁자들 사이에 끼이기도 했다. 보통 사람은 중간에 쉽게 안주하거나 주저앉을 과정을 쭉 거쳐온 후 알리바바에 다다랐다. 과장없이 마윈의 행보를 서술하여도 그의 뛰어난 면모는 가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성의 후광을 입고 더 빛나는 것 같다.

 

인터넷 사업에 대해서 나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IT분야 인물의 책을 읽을 때면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종종 있다. 이 책에서도 너무 관심이 없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더 복잡한 개발 분야가 아니라 다른 책에 비해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운동화를 신은 마윈.’ ‘마윈이 유일하게 공식 인정한 책’이라는 수식어로 이 책의 가치를 말하는 것은 충분하나, 개인적으로 한 마디 더 보태고 싶다. ‘마윈에 대한 신화가 아닌 인간 마윈에 대한 담백한 일대기’.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뒤흔드는 혼란 속에 살고 있다. 별로 중요하지만 항상 신경쓰고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일, 나에게 부당하게 벌어지는 일 등의 틈바구니 속에 살고 있다. 내 속에서는 소음만이 울리고, 어지러운 흔들림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신에 더불어 몸까지 피곤하다. 이런 일상 속에서 마음에 평화와 내가 꿈꿔왔던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성공한 유명인사들이나 할 수 있는 멀고 먼 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원의 수업’을 읽으면 머릿 속이 조용해진다. 영원의 수업은 인생을 부셔버릴만큼 큰 불행에 빠진 남자가 스스로의 구원을 찾는 이야기이다. 끔찍한 사건 뒤, 그의 삶은 영혼과 진정한 무엇이 빠진 홑껍데기가 되었다. 그 홑껍데기를 채우는 것은 끝을 찾을 수 없는 괴로움뿐이다. 그는 분노할 힘도 없다. 가라앉은 슬픔, 추억이 잃어버린 사랑과 함께 흐른다. 그의 괴로움의 심연 속에는 그가 사랑했던 부인과 아이들이 있다. 그의 추억 속에서 그의 연인은 자연의 여신과 같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며, 책의 전반적인 서술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삶을 이어가며 기나긴 방랑을 한 끝에 그는 마음 속의 평정을 되찾는다. 마음 속의 평정은 결국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외부 상황이 아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풀어나가느냐의 문제이다. 주인공은 스스로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가며 나락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슬픔과 괴로움에 시달려가며 그 끝까지 살아낸 후, 주인공은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행복과 불행은 무엇에 달린 것일까? 주인공의 삶은 불행한 삶인가?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끔찍한 사고로 잃고, 좋은 직장을 팽개치고 산 속에서 살아간다. 삶 속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이 입은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 같은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 일어났든, 삶을 등진 듯한 주인공의 생활 속에서 일어났든 표면적인 부분은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아내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행복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삶을 살며 더 행복했을까? 인간의 삶 속에서 외부적인 조건이 차지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사랑, 괴로움, 평정을 말하는 잔잔한 문구 속에서 나는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길을 찾은 것 같기도 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주인공이 책 말미쯤에서 말했듯이 ‘그 동안 안개 낀 곳에서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진정한 의미는 뭘까? 무엇이 중요한 걸까?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르겠다.

 

‘영원의 수업’을 읽을 때는 명상을 하는 듯 평온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받는다. 사랑과 삶의 희망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부분들이 많다. 그 잔잔한 느낌 속에서 마음 속의 소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더듬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