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구조론’은 익숙하지만 생소한 이론이다. ‘현재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는 대륙은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이 판구조론이 어떻게 발견되고 지지를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인 ‘판구조론’을 보니 내 머릿 속 구석진 곳에서 바쁜 일상 속 관심 밖에 밀린 오래된 물건을 보는 듯한 일종의 향수같은 것이 밀려왔다. 또 한 편으로는 예전에 한 큰 대륙이 있었는데 46억 년을 거치면서 서서히 갈라져 현재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 전설의 아틀란티스 대륙을 떠올리는 것처럼 신비로웠다.

 

‘판구조론’은 한 사람이 창안해낸 것이 아니다. 대륙이 원래 하나라는 주장은 세계지도를 완성해 나가던 16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각 대륙의 해양선이 하나로 맞추면 맞춰질 것 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20 세기에 대륙이동설이라는 학설로 제시한 사람이 베게너이다. 하지만 베게너 생전에는 이 판구조론을 확실히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과 증거가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과학계는 이 생소한 이론에 대해 찬반이 분분했다. 하지만 후에 지진파 측정, 해저 지형 탐사, 지구의 내부와 적도의 형태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그의 이론이 사실로 확인된다. 몇 몇 근거로 판구조론이 주장되고, 판구조론과는 상관없이 출발했던 다른 연구들로 판구조론이 강화되는 과정이 참 흥미롭다. 과학과 같은 어려운 학문은 몇몇 천재가 이끌어나가는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판구조론이 정설로 자리잡기까지의 과학적 발견은 경이롭다. 원숭이로 출발한 인간이 어떻게 지구의 크기와 질량을 구하고, 적도 부근이 더 부풀어 있다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을까? 산의 질량과 그로인한 산의 중력을 이용하여 지구의 질량을 구하는 방법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는 알 것 같은데 직관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는 않는다. 이런 발상은 어떻게 해내는 것인지 정말 신기하다. 뉴턴은 앉아서 지구는 적도 부분이 더 부풀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후일 다른 탐험대에 의해 사실로 밝혀진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은 이러한 지적능력에 부여되는 타이틀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판구조론과 조금 친해진 것 같다(^-^). 이 책은 판구조론과 이를 지지해주는 과학 이론들을 매우 쉽게 설명해 놓았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이론을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그림들과 함께 볼 수 있어 가끔 추억에도 빠진다.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과학 서적이다. 46억년의 대륙의 변천사와 이를 밝히기 위한 인간들의 몇 백년의 분투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로밤바’는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성장 소설이다. 일본에서 청소년 필독서로 꼽히는 소설이라고 한다. ‘고사쿠’라는 한 소년이 5~6살 무렵부터 12~13살 까지 혈연 관계가 전혀없는 외증조부의 첩인 할머니와 함께 엄마의 고향에서 살며 겪은 일과 성장과정이 나와 있다.

 

20세기 일본의 한 농촌에 사는 주인공 고사쿠는 흔하지 않은 가족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부분은 처음 이해를 하려면 조금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약간 막장 드라마 같은 설정이지만, 이 가족 관계가 고사쿠의 유년 시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잘 나가는 의사였던 고사쿠의 외증조할아버지는 본처를 버리고 도시에서 몸값을 치르고 사온 게이샤와 자신의 고향에 살림을 차린다. 본처와 첩 사이 모두 자식이 없어 자신의 형의 아들을 양자로 본처의 호적에 입적시키고 재산의 일부를 물려주고, 자신의 첩은 형의 아들의 맏딸인 고사쿠의 엄마의 양어머니로 호적에 입적시킨다. 고사쿠의 엄마는 고사쿠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동생을 낳는다. 사정상 고사쿠를 외증조할아버지의 첩에게 몇 달 맡기려 했는데, 외로웠던 할머니는 고사쿠를 애지중지 키우며 몇 년이 몇 달이 되고 만다. 고사쿠는 외갓집에서 귀여운 손자여야 하는데 외증조할아버지를 빼앗아간 요물에게 세뇌당한 인질쯤으로 대우받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으르렁대는 사이에 끼여 가끔 난감한 상황을 겪으며 크게 된다. (고사쿠의 할머니와 외갓집 식구들의 사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약간 사이가 나쁜 가족이 자주 싸워도 필요할 때는 서로 돕는 정도의 관계이다.)

 

주인공 고사쿠의 마음 속,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렸을 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100년 전 일본 어린이의 생각과 감정이 21세기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인인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겠지만 아이들 때는 늘상 느끼던 충동, 장난질을 몇 십년 만에 다시 보았다. 모 어린이들과 성적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 경쟁을 하며 할머니와 고사쿠가 느끼는 감정도 익숙한 장면이었다. 별거 아닌 것으로 들뜨고 뛰어다니고, 서로 때리고 하던 시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즐거움, 자괴감, 공포 등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아이 때 어른들의 세상을 보던 기억도 느낄 수 있다. 느낌으로 무슨 상황인지 거의 짐작이 가지만 다 이해는 되지 않았던 어른들 사이의 알력,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겁 등을 보며 어렸을 때 기분이 떠오르는 동시에 ‘나이만 들었지 다 바보같어’라는 노래가사도 떠올랐다.

 

일본인이라면 일본 농촌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더할 것 같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별로 지키지 않을 것 같은 일본의 민속 명절이나 놀이 등에 아이들이 괜히 들떠서 신나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돌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정류장에 올 때 쯤 해서 기다린다던지, 버스가 새로 들어온다던지, 도시로 나간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던지 일본인이라면 향수를 느낄 장면도 많을 것 같다.

 

고사쿠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그가 살던 소중한 고향을 떠나며 성장한다. 고사쿠가 제일 소중히 여기던 사람은 첩 할머니와 사키코 이모다. 고사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은 죽는다. 이들의 죽음은 고사쿠에게 슬픔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은 절망은 아니다. 사키코 이모의 죽음은 앞으로 걸어가는 인생에서 아프지만 자연스레 멀어지는 소중한 기억 한 조각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소중했지만 변하고 언젠가는 사라져야할 무엇이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소중한 것이 떠나가고,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성장했다는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에서 쓸쓸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래서 성장한 고사쿠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사쿠의 다음 삶은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고사쿠는 미래의 발전을 그리며 계속 열심히 공부한다. 도시로 이사하며 기대 반, 무언가 모를 쓸쓸함 반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에서 끝난다. 유년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무엇에 대한 쓸쓸함으로 끝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이제는 어른이구나, 대학을 졸업하며 이제는 짤없는 사회인이자 진짜 어른이구나 하며 살면서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다.

 

‘시로밤바’는 인간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다. 국적이나 시대가 어떻든 유년기에 누구나 느꼈을 감정과 추억을 압축해 놓은 책이다. 마음 속 소중한 과거와 추억을 떠올리게 해 살면서 걸어온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다보면 현재의 내가 어디를 걷고 있고, 그 속에서 과거는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내 삶을 한 바퀴 여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로밤바’를 통해 색다른 여행을 하였다.

 

‘반경’은 중국 정치인들이 현재에도 꾸준히 읽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조유’라는 당나라의 학자로 백가와 책략에 능통한 대학자이다. 당현종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보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한다. 학력을 위조하거나 시험에 부정행위를 하는 등 능력을 가짜로 포장을 해서라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황제의 부름에 응하기만 해도 조정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저자의 행적에서 경외심이 들었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사의 도를 깨달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한 치 앞만을 보며 마음 속의 단순한 욕망만 따르는 범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반경의 내용은 정치와 다스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서문에서 이 책을 돌아봐주는 제왕이 있어 어지러운 정치와 국가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직접 정치를 하지 않았지? 궁금해서 당현종을 검색하여 보니 양귀비의 그 분이었다. 저자는 정치에 나아갈 뜻이 없었을 수도 있고, 때가 나아갈 때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서문의 말미에 ‘쓰이지 못한 신하’라는 부분에서 나아갈 때가 아니라 나아가지 못하지 않았을까 한다.

 

반경은 정치와 다스림에 대해 매우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사서삼경에서처럼 인과 왕도를 강조하는 책이 아니다. 순박한 시대에는 어질게 다스리고, 흉흉한 시대에는 강력하게 다스리는 법이 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어떠한 상황에는 걸맞지 않은 때가 있고, 비슷해보이는 상황이라도 해법이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이러한 내용이 책으로 읽을 때는 매우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이것이 도의적으로 맞는가?’, ‘어떤 방법을 취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까?’하는 눈 앞이 깜깜해지는 복잡한 물음에 대해 기존의 경서에 없는 사실적인 해법을 제시해 놓았다. 경서에는 차마 기록해 놓지 않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제목이 ‘반경(反經)’이라고 한다.

 

또한 반경은 정치에 대한 큰 내용뿐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내용까지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의 원망을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내용도 나와 있다. 사람의 기색이나 용모를 통해 어떤 그릇과 성격을 가졌는지 관상파트도 있다. 행동거지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는 내용도 나와 있다. 그야말로 정치의 A~Z까지 실용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읽어본 중국 고전이 몇 가지되지는 않지만 이 책만큼 정치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책을 없었다. 또한 정치와 인간사라는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역시 중국 고전의 고사를 통해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서술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깊고 어려운 뜻을 쉽게 전달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나 경영을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많을 것 같다. 물론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이 책을 실용적으로 읽을 수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정치도 결국 인간사의 한 부분이므로,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경’은 한 은거한 천재가 국가와 정치가 바로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대에 남긴 책이다. 그가 당현종이 정치를 잘 할 때 살았는지, 말년에 당나라를 망하게 하는 기반을 닦았을 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검색으로도 찾지 못했다. 아마 당현종이 정치를 잘했을 때에도 그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보았을 것이다. ‘로마제국쇠망사’에서 기번이 서술하는 로마를 비롯한 수많은 중소 국가의 패망의 이유를 보면서 느꼈는데 나라가 망할 징조는 최소 몇 십년~일 백 년 전 정도에는 드러난다. 가장 번영할 때 쇠미할 조건을 갖추기 시작하여 서서히 타락하며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망한다. 밖에서 외적이 쳐들어와 갑자기 망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조금씩 쇠퇴하여 마침내 망조가 들어 흔들거려야 외적이 들어오는 것이다. 저자와 같은 사람이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못 보았을 리가 없다. 자신의 나라에 패색이 비치는데 상황을 보니 은거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제왕은 아닐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 나아가 자신이 속한 조직이 바로 설 수 있는 지혜가 조금씩은 생길 것이다. 당나라는 망했지만 조유 선생이 남긴 이 책으로 많은 사람, 많은 회사, 많은 나라들이 질서를 잡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