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을 처음 만난 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다. TV만화나 동화책에서 본 적도 없는데 유명하고 인기 있는 캐릭터 같았다. 이 닦을 때 쓰는 컵, 식당 깔개, 연필, 인형 세트 등을 통해 여러 번 본 파란 자켓 입은 토끼와 그의 여러 동물 친구들. 대학생 때 책에서 베아트릭스 포터라는 여류 작가의 동화로 100년 전에 쓰인 책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고전이다. 난 타샤 튜더의 코기 시리즈 그림책도 좋아한다. 피터 래빗도 아이들 용 동화책이지만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상류층 여성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고 가정교사에게 수업을 들었다. 그녀의 동화는 가정교사의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그녀는 스스로 토끼나 고슴도치 같은 작은 동물을 키우며 동물을 스케치하고 동화책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풍경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곳에서 스케치했다고 한다.

 

피터 래빗 시리즈의 동물 그림들을 보면 사랑스럽게 고물고물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피터가 많이 등장하는 토끼 편의 토끼들이 제일 귀여웠다. 상추들 사이에 토끼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 아기 토끼들의 뒷 모습, 피터 래빗이 남의 밭을 망가뜨리다가 주인인 맥그레거씨와 딱 마주친 모습 등이 기억에 남는다. (맥그레거씨랑 마주친 장면은 16p에 나온다. 설렁설렁 걸어다니다가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딘 채 약간 경직된 듯한 파란 자켓을 입은 토끼, 일을 하다 갑자기 토끼와 눈이 마주쳐 눈이 휘둥그레진 할아버지의 모습이 재미있다.) 마지막 쪽에 나오는 윤곽이 부드럽게 그려진 토끼들도 작품 같이 아름답다. 100년 전 그림이지만 볼거리 많은 현대에 태어난 내가 봐도 촌스럽거나 이상하지 않다. 녹색 식물이 많이 등장하는 배경의 및 바탕은 약간 노르스름한 색이다. 마치 밝은 햇살이 비치는 때에 숲과 같은 느낌이 든다. 배경은 실제적이고 깊이감도 있으면서 아이들용에 맞추어 단순화 시켰다. 은은한 색을 써서 세련된 느낌을 주면서도 옅은 녹색 배경 위에 파란색, 빨간색 등 원색 옷을 입은 동물들이 등장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원색이 강조된다.

 

책에 나오는 동물의 행동을 보면 포터는 동물과 자연은 물론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동물들은 남의 것을 슬쩍하거나 다른 동물을 괴롭히기도 한다. 악의나 욕심이 아닌 순수한 장난이나 행동 정도로 그려진다. 이런 것은 아이들이 주로 하는 행동이다(어린이 그림 책을 보면 이런 행동들이 생소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의 장난을 보고 동물로 사랑스럽게 그려낸 것을 보면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동물들의 사교활동, 금전 거래, 돈 벌어오기, 집안 일,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핀잔주기, 자켓 걸치는 장면들은 주로 어른들이 하는 행동이다. 이런 내용은 잘 찾아보면 포터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동물들의 몸짓에 사람의 몸짓을 잘 더한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해서도 열심히 관찰하지 않았을까 한다.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포터의 삶이 더 궁금해져 네이버 검색을 했다. 그녀는 부유한 상류층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당시 부유한 집안의 딸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상류층 남성의 좋은 부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역할을 거부하고 좋아하는 동물, 자연, 그림, 글쓰기에 몰두한다. 자연보호 운동, 버섯을 좋아하여 연구원이 되려했지만 여자라서 축산인이 되고, 지의류가 균류와 조류와 공생관계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논문은 여자라서 삼촌 이름으로 발표하였다고 한다. 아주 부잣집 외동딸임에도 수수하게 동물과 자연과 함께 살았으며, 높은 지위의 남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도 했다. 현대에 태어났으면 팔방미인 예술가 겸 축산인, 연구원으로 이름을 날렸을 듯한 매력적인 여성이다. 피터 래빗 성인버전으로 동화와 함께 포터의 삶에 대한 글과 당시의 사진, 현재 관광지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풍경, 베아트릭스 포터 어트랙션 등의 사진이 같이 담긴 책이 나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 매력적인 여성과 그녀의 작품이 어루러져 하나의 예술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낮이 익었던 토끼 피터야. 너도 귀염덩어리 개구쟁이이고 너희 어머니는 정말 멋진 여성이구나. 너 덕분에 내가 표 끊고 지하철타고 줄 서는 과정을 생략하고 미술관을 한 번 다녀온 기분이 든다. 다음에 또 보자~

 

예전에 오쇼 라즈니쉬의 책에서 ‘모든 병은 자신이 원해서 가져오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 때 불면증이 있어 고생을 했다. 다음 날 내 일과가 있는데 밤에 수면으로 쉬지를 못해서 너무 피곤해서 힘들었다. ‘모든 병을 자신이 원해서 가져오는 거라면, 내 불면증은 왜 생겼을까?’ 며칠을 생각한 끝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수면을 줄여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해서이다. 알고 나서는 너무 간단한 일인데 생각을 해야 알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불면증은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내게 현재까지 모두 해결되지 않은 것은 ‘모든 병은 자신이 원해서 가져오는 것이다’라는 문구이다. 라즈니쉬는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도 자신이 원해서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병이나 문제나 모두 자기가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직관적으로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지만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대한 열쇠는 그의 책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라는 문구에서 찾아내고자 하였다. 이 때 이후로 라즈니쉬나 데일 카네기, 심리학이나 철학 책을 읽고 내 마음, 타인의 행동을 들여다보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서 만들어낸 지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운동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때문에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친구가 적은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으면 움츠러든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소외감, 자격지심, 열등감, 유치한 보복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람들의 고민거리란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예를 들어 왕따를 생각해보라. 이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큰 사회적 문제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다룰만한 문제는 아니지만) 희생자들이 자신감만 충만하다고 생각해보라. 왕따가 되는 수는 극히 적을 것이다.

 

기시마 이치로의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은 아들러의 철학과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마음의 지옥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준다. 유치한 열등감, 관심병, 이기심, 소극적인 회피로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어떻게 지옥으로 만드는지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년 가까이 살고도 모르고 죽는 것을 이토록 정교하게 간파해내고 이론을 만들었다니 정말 놀랍다. 이 책의 앞 장에 있는 것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더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더 잘 체험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기시마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은 한 문장 한 문장이 깨달음이고 감동이다. 내 마음에 감동의 파문이 지는 이유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가지는 진취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사람들이 나타내는 갖가지 정신적, 신체적 문제는 하기 싫은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까발려 보여주면 깨달음이라는 것을 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아들러는 다시 개인의 취약한 점은 치명적인 단점이 아닌 자신을 찌르기도 하고 키워나가기도 하는 무언가라고 말해준다. 마음을 옥죄고 발에 걸리적거리는 무언가를 멀리 차버릴 수 있는 지적인 이해와 자신감을 심어준다. 또한 개인은 타인에게 공헌하고, 타인은 다시 개인에게 공헌하며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라고 말한다. 타자는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뜻이다. 인생의 의미는 타인에게 공헌하며 이뤄지는 것이다. 누가 교감신경 항진시켜가며 대결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가? 타인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라는 책 제목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다.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한 내 여정은 계속된다. 라즈니쉬로 출발해서 지금은 기시마 이치로와 아들러에게 머물고 있다. 저자의 아들러 심리학은 계속 읽을 것이다. 나에게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모든 것에게 감사하며 글을 여기서 마친다.

 

 

 

‘앵무새 죽이기’ 라는 제목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제목만 가지고서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흔하지 않은 독특한 제목, 내용이 짐작도 가지 않으나 매우 유명한 소설. 어떠한 내용인지 항상 궁금해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책 소개를 잠깐 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위>, <인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책 7위>?? 어떤 책이길래 이런 극찬을 받는 것일까?

 

이 책의 화자는 스카웃이라는 애칭의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다. 책의 반절은 다른 성장 소설과 비슷하게 부모님, 동네사람, 그 중 어린이인 화자를 무시하지 않고 잘 이해해주는 사람, 엄할 때도 있지만 화자에게 진심으로 잘 해주는 사람, 권위적이고 이상한 사람, 동네에서 좀 무서운 사람 등이 등장하고 화자와 오빠 젬, 친구 딜이 즐겁게 놀고 싸우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도 재미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배경이되는 환경, 캐릭터, 사건의 전모나 의의가 독자에게 조금씩 전달된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의 메이콤이라는 시골이고, 화자의 아버지는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이다. (엄마는 화자가 아주 어렸을 때 죽었다.) 이 핀치 변호사는 매우 고결한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산골의 맑은 물이나 날씨 좋은 날의 따뜻하고 밝은 햇살을 나뭇잎 사이로 보는 느낌이 들었다. 비열한 부분이 조금도 없고,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냉철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차분한 애정이 넘친다.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것도 없고 가리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이러한 덕목을 아이들에게 훌륭하게 가르쳐 내는 능력도 지녔다. 주인공인 스카웃과 젬도 아버지에 가르침에 따라 분노를 조절할 줄 아는 정의롭고 타인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성장한다. 참 아름답고 사회의 귀감이 되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메이콤에는 차별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흑인들, 젊었을 때의 사고로 히키코모리가 되어 몇 십년 째 집에서 칩거하는 부 래들리가 그들이다. 흑인이라는 것, 젊었을 때 크지 않은 말썽을 부린 것 등을 이유로 쉽게 조롱하고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판단한다. 그들은 큰 악의도 없이 취약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함부로 해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하다. 그들이 생각없이 한 행동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돌이 되어 날아가 목숨을 앗아가고, 인생을 앗아간다.

 

이러한 일은 지난 몇 천년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의 인간 집단에서 자행되어 왔다. 왕따, 성차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서 자행되는 교사들의 폭력,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무조건 함부로 대하는 노인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아보이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 가정 폭력 등등 셀 수도 없이 많다. 크거나 작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 이상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어 봤을 것이다. 잘못된 것이라는 인지도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핀치 변호사는 흑인을 변호하는 일을 맡게 된다. (책이 반을 약간 넘어가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들며 더 재미있다.) 그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정말 훌륭한 변호를 해냈다. 결과는 뜻한 바와 같지 않았지만, 모디 아줌마의 말처럼 언젠가는 해야할 중요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 다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스카웃은 취약한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스카웃과 젬은 자신의 세대에서 인간의 평등을 위해 해야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인간 사회에서 자행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뜨끔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이해와 공감을 독자들의 마음 속에 일깨운다. 자신 속에 고결한 무엇을 깨달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감동과 기사와 같은 정의로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취약한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이 없으면 나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고 정당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나보다 취약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나보다 우월한 조건을 가진 누군가가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세계는 무자비한 약육강식보다 존중과 사랑이 통용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를 위해 노력하여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