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거 몇 천 년의 세월을 통틀어 가장 부유한 시기이다. 몇 백년 전만 해도 여행이나 여름에 먹는 얼음은 일부 특권층에게만 가능한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현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귀족과 같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가? 몇 십만원을 호가하는 개인 핸드폰, 개인 노트북, 수 십벌의 개인 옷에 둘러싸여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기괴한 풍요 속의 빈곤은 뭘까? 너무나 기형적인 상황이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문득문득 해왔지만 그 이유를 탐구하기에 녹록치 않거나 일상에 치여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라는 정신분석학자의 책 속에 그 답이 있다.

 

우리가 사는 현대의 시작은 경이로웠다. 신분과 지역, 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묘한 속임수였다. ‘수저’라는 단어는 세상이 능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능력에 따라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른 제약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이라는 신종 유행어를 아시는가? 온갖 광고 문구 속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워져 우리의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노력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 먹고 싸는 것처럼 당연한 것 같이 여겨질 지경이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 뚱뚱한 사람이 없는 인류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없다면 그 사회는 크게 잘못된 곳이다. 현대가 권하는 ‘자기 계발’이 얼마나 허황되고 실패자를 양산하는 문구인지 알 수 있다.

 

황당무계한 ‘자기 계발’의 근저에는 신자유주의가 깔려있다. 인간의 삶에 수치화된 경제적 계산을 적용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최고의 가치를 끌어내자는 주의이다. 처음에는 잠깐 더 생산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곧 지나친 개인주의와 경쟁, 이로부터 초래되는 집단의 상실을 불러일으켰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서로에 대한 신뢰, 권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무질서한 곳은 곧 복잡한 규제와 더 엄격한 평가를 불러온다. 이는 다시 이기적인 개인들의 위조와 허위를 불러온다. 이 와중에 위에서 말한 루저들은 다수의 비율로 형성된다. 사람들은 행복과 윤리의식, 동료의식이라는 몇 천 년간 인간 사회에서 으뜸으로 추구해오던 가치를 잃었다. 남는 것은 쓸데없는 평가 기준들과 이를 맞추기 위한 과대 포장(사람이나 물건이나) 뿐이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명품에 집착하는 사람이 명품을 사고도 행복해보이지 않고 긴장되어 보이고, 명품 없는 사람을 억지로 무시하고 싶어하는 모습인 것이다.

 

이 숨 막히는 흐름 속에 나도 들어가 있고, 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세계의 조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약간 무섭기도 했다. ‘인류 사회가 말세에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나보다. 현세의 부는 과거의 찬란한 정신세계의 쇠퇴를 담보로 얻은 것이었나 보다.’라는 염세적인 생각도 들었다. 현대의 세태를 놀랍도록 꼼꼼히 분석한 저자도 해법으로 책의 말미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하며 집단과 개인, 동질성과 차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한 두 문단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님 저는 읽는 동안 감탄해서 놀라운 해법을 기대했었거든요.) 나나 너나 엄청난 쓰나미 속에 헤엄치고 있으면서 그 위험을 모르는 꼴인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류에게 사탕을 안겨주고 심장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신자유주의. 인류의 하나로서 나는 작은 저항의 불씨를 마음 속에 항상 갖추고 있어야겠다. 비열한 이익추구자가 되지 않겠다. 인문 고전서를 읽고, 일상에서도 좀 더 큰 시야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사소한 것, 필요없는 것에 관심을 끄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겠다. (생각해보니 위와 같은 생활 태도는 행복에 생각보다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느꼈다. 내 인간성이자 신자유주의에 대한 방파제였구나.)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환경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진실한 환경이 되어 준다면, 이 세상도 조금은 영향을 받겠지.

 

현대인이라면 수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한 번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현대인의 일부, 혹은 전부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논리를 이끌어내고 책을 구성하는 방법도 정말 마음에 든다. 역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책이라 에센스만 골라져 깔끔하게 들어가 있다.

‘십팔사략’은 중국의 18권의 역사서를 요약한 책이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이 십팔사략의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통일된 정론이 없는 듯하다.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 중국의 역사 교과서라는 말도 있고, 취사 선택이 부적당하고 허위가 많이 포함된 통속서라는 평도 있다. 읽기 전에는 이 책이 금과 같은 고전인지, 역사책인 척하는 역사 왜곡서 인지, 읽을 가치가 있을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우리가 읽고 보는 소설, 드라마, 만화 모두 허구이다. 그들의 가치의 상당 부분은 허구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저작자가 나타내려 하는 의미가 뚜렷하게 보인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현실보다 정제되고,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빠진다. 그 속에서 폐부를 찌르는 외로움과 향수, 심장을 멎게 하는 공포, 뇌리를 스치는 강렬한 진리의 문구, 향기로운 애정사가 만들어진다.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사실과는 다른 생략과 강조를 통해 현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누가 끄적인 가치 없는 낙서 같은 것은 몇 백년이 지난 후대에도 회자되고 다시 프린트되는 일이 없다. 오직 영혼이 있는 작품만이 남아 수천, 수만 번을 회자되고 프린트된다. 이 십팔사략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이 마치 실제 인물인양 등장하는 등 사실 관계에 관련해서는 실망스러운 점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흠집보다 수 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지략, 나라의 흥망성쇠가 전해주는 진리가 더 크기 때문에 아직도 출판되는 것이다.

 

나는 중국역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호지, 삼국지, 지전, 사기, 경세지략, 소서, 반경 등의 어린이 버전, 간략 번역본, 신간 완역판 등을 봤다. 유명한 이야기는 여러 번 읽은 것도 많다. 그래도 볼 때 마다 새롭고 내 인생도 좀 더 잘 이해되고, 세상을 더 크게 볼 수 있는 기분이 든다. 내 인생의 다른 국면에 있을 때면 그에 맞춰 새롭게 읽히기도 한다. 이래서 한자 문화권에서는 역사를 귀감이라고 했나보다. 자꾸 들여다보면 내 얼굴도 보이고 내 과거와 미래도 보이고, 인생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십팔사략은 삼황오제이전 머나먼 전설의 시대에서 송나라까지이다. 기나긴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람들의 용기와 지략에 감탄하는 동시에(늘 하는 감상^^), 21세기와는 좀 더 다른 가치를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새롭게 느껴졌다. 책에는 지략이나 용기, 무술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타고난 재능에 끊임없는 노력을 들여 일반인의 인식을 뛰어넘은 사람들도 많다.(물론 과장도 가감해서 봐야겠지만) 현대라면 이런 사람들은 개인의 영욕을 달성하기 위해 살 것이다. 현대인의 하나로 개인이 노력해서 더 좋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목숨을 버린다. ‘의’를 따르기 위해서이다. 자신을 알아주거나 도움을 준 사람을 위해, 대의를 위해 죽는다. 죽음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며, 영욕은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비교적 흔한 거친 시절이라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현대 사람들과 달랐던 것일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바보 같은 죽음도 있지만, 어떤 죽음은 숭고한 느낌도 든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사욕에 덜 매여있지 않았나 싶다. 현대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영욕을 목표로 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장려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과거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옳음’을 목표로 삼는 것을 더 바람직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한다. 자유롭기 때문에 비굴하지 않고, 목숨을 초개처럼 생각하는 상상 이상의 용기가 나오는 것이다. 나라는 작은 것의 작은 이익을 위해 아웅다웅하는 우물 안 개구리와 ‘옳음’이라는 넓디 넓은 하늘을 보고 사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부자이든 거지든, 직업이 좋든 나쁘든, 모든 스펙과 외양을 떠나 어느 쪽이 좀 더 넓은 가슴과 식견을 가지고 인생을 제대로 살고 가겠는가? 이래서 많은 고전에서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아닌 타인, 나아가 우주를 위한 삶이라고 했나보다.

 

십팔사략은 내게 즐거운 중국 역사 속으로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그 속에서 이번에는 좀 더 넓은 대의를 보는 큰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주었다. 이 책이 역사적인 가치나 사료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 중 상위 0.1%에 드는 훌륭한 책이다. 오늘도 즐거운 중국 역사 책 한 권을 끝내고 뿌듯하게 글을 쓴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제목을 보자 갈매기가 먹는 것, 번식하는 것 외에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른가? 생각해보니 사람도 똑같다. 이런.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인가 하루하루가 나를 사는 것인가. 내가 주도적으로 하루를 끌고 가면 내가 사는 것이고, 하루에 끌려가면 하루가 사는 것이다. 일상에 질질 끌려 일용할 의식주를 위해서만 산다면 결국 새우깡과 알까기를 위해 사는 갈매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조나단이 추구하는 꿈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것일 테다. 새야, 넌 무슨 꿈을 꾸고 있니?? 책의 내용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기대감에 부풀어 책을 펴게 된다.

 

‘갈매기의 꿈’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표지의 그림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와 같다. 한 존재가 땅에서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을 그린다. 땅에서, 낮은 하늘을 똑같이 날던 새도 얼마든지 높은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 곳에서 땅에서 자신을 발목 잡고 있는 문제는 까마득히 멀어지며 하찮은 존재가 된다. 높은 하늘 위에는 더 높은 곳이 있다. 그곳은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곳이다. 이것이 존재의 행복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높은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꾸고 있더라도 자신이 현재 땅에 있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도 진심으로 높은 곳으로 가려는 꿈을 만류하고 땅에 있기를 독려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어렵다. 어디로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늘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하늘로 올라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갈매기의 꿈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과정을 새가 푸른 하늘을 비상하듯 가볍고 시원하게 보여준다. 조나단은 위의 이유로 비행술 연습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비행술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는 비행술을 멈출 수 없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그는 다른 새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모와 친구를 비롯한 다른 새들에게 소외된다.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나간다. 삶의 자유를 만끽하는 그에게 스승이 찾아오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래서 그는 알게 된다. 그의 진정한 스승은 자신이라는 것, 자신의 몸은 결국 자신의 정신의 끝트머리일 뿐 이라는 것을. 이러한 과정을 동화같은 형식으로 푸르른 창공처럼 가슴벅찬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 책은 이 책뿐이지 않을까 한다.

 

리빙스턴 집안의 조나단은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에 평범한 갈매기였다. 그의 꿈과 노력이 그를 다른 갈매기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조나단과 같은 사람들을 신격화한다. 이는 일종의 핑계이다. 그들은 신이므로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다. 사람인 내가 그들을 따라가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생각만해도 숨이 막힌다. 그러니 나는 꿈을 꾸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평범한 갈매기가 위대한 갈매기가 되는 과정을 통해 이 우주, 이 세상, 개인의 영혼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높은 꿈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조나단의 비행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보였다. 하나는 인간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성공이나 장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핸드폰이나 로켓을 개발한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끝없는 노력으로 인류의 인식과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며 불가능이라는 말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보여 주었다. 두 번째는 구도의 길이다. 인간계는 끝임없이 환생을 반복하며 선업과 악업을 지으며 산다. 세상은 고통이고, 인간이 집착하는 모든 것은 결국 무의미한 일이다. 인간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해탈을 통해 인간계를 벗어나 선업과 악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다.

 

갈매기의 꿈은 읽는 내내 가슴을 부풀어오르게 하는 책이다. 조나단이 날아오르려고 노력하는 넓디 넓은 푸른 하늘이 결국 내 마음 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신비할 정도의 설득력으로 독자에게 말한다. 계속하기만 한다면, 당신의 꿈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이 책을 읽고 내 마음 속에 갈매기가 준 믿음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