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으로서의 ‘한국인’은 무엇일까? 한반도에 살면서, 주민등록상에 한국인으로 등재되어, 김연아 선수의 승리에 함께 기뻐하는 것뿐일까?? 최소한 내가 속한 ‘한국인’이라는 집단이 어떠한 역사를 거쳐서, 역사와 세계의 선상에서 어디쯤에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바이오그라피 6호 고은 시인 편을 보게 되었다. 고은 시인은 세계적인 시인으로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중의 한 분이며, 27개국의 언어로 시가 번역된 분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름만 얼필 들어본 기억이 있을 뿐 이 분이 어떠한 삶을 살아온 분이며, 어떠한 시를 쓰셨으며, 세계적으로 어떠한 분인지 전혀 몰랐다. 여기에서 한국인으로의 무지 1을 만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정서 뿐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 시인의 뛰어난 인식, 상상력과 문장을 표현하는 분을 몰랐다니, 무식도 이런 무식이 없다.

 

고은 시인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일제 강점기였다. 학교에서 한글도 가르치지 않으며 체계적으로 한국인을 바보로 만들던 비열한 왜놈들이 장래희망을 묻자 ‘천황폐하’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초등학생이었다. 친일파 초등학교 교장을 몰아내자는 선서를 대표로 읽고는 상급학교 진학이 제한되기도 했다. 시인의 대단한 지성과 용기를 알 수 있다.

 

고은 시인은 근현대사를 진정으로 살아온 분이었다. 6.25 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익히 들어온 단어이다. 나는 이 책에서 ‘동족’과 ‘상잔’이 얼마나 끔찍한 단어인지 골수까지 와 닿은 것 같았다. 같은 동네 사람이 우익, 좌익으로 나뉘어 서로서로 죽고 죽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시인이 그 때 17세 때 죽은 친구에 대해 쓴 ‘봉태’라는 시는 아직도 가슴을 저민다. 이 시기 후 전통적인 마을이 파괴되고, 한국인의 말이 빠르고 강해졌다고 한다. 이 시기 이후 시인은 죽음과 허무주의에 싸여 방랑과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허무와 시와 술로 지내던 무렵, 시인은 전태일의 분사를 신문을 통해 접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시인은 군사정권에 대한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 된다. 무슨 이유인지 10년이 넘은 불면도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군사정권은 북한과 대치 상태가 더 긴박했던 때였고, 경제발달이 급했던 때였다. 정권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사욕은 물론 나라를 더 잘 이끌기 위한 고충 끝에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그 정권이 내린 결정에 수 많은 민중들은 생계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처하기도 했고, 언론은 입이 막혔다. 그 당시 국민이 느꼈을 답답한 감정이 그려졌다. 시인은 이를 보고는 몸소 뛰어들었다. 감옥을 수 없이 출입하고, 감시당하고, 구타당했다.

 

고은 시인은 삶을 진정으로 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불합리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도 무력하게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시인은 마구 뛰어든다. 일제에 저항하고, 6.25에는 방랑과 자살시도, 허무주의를 통해 온몸으로 고통을 겪어낸다. 허무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지고 종교계로 들어가기도 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무지막지한 폭력과 감시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누가 자신의 삶에 이렇게 진실하고, 끊임없이 대응하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시인의 삶에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보이는 듯했다. 내 조국에 대한 역사 인식의 부재, 무지 2였다.

 

책의 마지막 고은 시인과의 인터뷰에서는 시인이자 구루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언어는 일반인의 수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인간의 나이는 살아온 세월이 아니라 인생을 얼마나 제대로 겪었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시인의 말에서 묻어나오는 깊이는 어느 숲 속 긴 수염을 길게 기른 100살 이상의 현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깨달음이 국경을 막론하고 세계인의 감성과 지성을 울린 것이다. 나는 동시대에 이런 분이 계심을 모르고 대한민국 한 쪽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싶다.

고은 시인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 책의 소개 중 ‘내 유골도 시를 쓸 것이다’라는 구절에 이끌려서이다. 시인의 골수에서부터, 영혼에서부터 나온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뇌 한 가운데에 와서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 시를 잘 읽지 않아 이 분의 책이라면 시를 만나는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그렇게 옹달샘을 생각하고 들어왔더니 큰 강이 보여서 몇 걸음을 걸어갔더니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경험을 한 것이다. 시인의 삶과 정신에서 한국 역사를 보고, 국경을 초월하여 삶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책의 사진과 구성도 예술작품을 보는 느낌이 들며 감상에 보탬이 되었다.

 

책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보기를 바란다. 책에 관심이 없대도 이 책을 꼭 한 번 보기를 바란다. 어느 쪽이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리라.

항상 열심히 살아도 뭔가 뒤처지는 느낌. 부족한 것은 없는 데 부족한 듯 한 이 느낌. 근원이 어딘지도 몰라 채울 수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족한 것은 없다. 가끔씩은 이 느낌이 지워지는 때도 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을 할 때. 우습게도 이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내가 맡은 임무에 치일 때도 있지만, 내 의지나 마음에 따라 행동하는 시스템이 교란되어 있다고나 할까. 운동을 할 때 상쾌함에 빠져 들다가도 엉뚱한 생각에 즐거움을 빼앗긴다. 지독히 나쁜 버릇이다. 그런데 버릇치고는 내 인생의 버릇을 너무 침해한다. 하지만 멈추기 힘들다. 어찌해야 하나??

 

‘어리석은 철학자’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한 철학자가 정신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을 안겨주기로 작정하고 나쁜 사람들을 대동하고 밀림에 쳐들어간다. 그의 정신적인 지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의 천재 황제 중 한 사람이자 위대한 철학자이다. 그런 그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는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아마존 부족들에게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바보 같은 집착과 욕심을 심어준다. 그 동안 그는 자책감에 병들어 간다.

 

이 소설은 현대인의 병폐를 단순화하여 보여주고, 내용의 전개도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동화와 소설의 사이에 있는 형식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단순한 형식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보여준다. 심리학이나 철학책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바로바로 문장으로 이야기 해준다. 그런데 소설은 인물들과 사건 속에 포장하여 보여준다. 포장을 푸는데 시간이 걸리고, 어떤 때는 못 풀러서 답답할 때가 있다. 이 소설은 인물들의 대사 속에 직접 좍 풀어준다.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또한 단순함이 소설이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중간중간 ‘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심심치 않게 든다.

 

아마존 사람들은 결국 철학자와 그의 하수인이 유도한 대로 현대인과 같은 병폐에 시달리게 된다. ‘자, 현대인 모드가 되었다. 작가는 이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들 거의 모두가 크든 작든 나쁜 영향을 받았으나, 이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악의 근원이 된 원흉을 제거하고, 용서한다. 이야기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통해 부족의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로 결심한다. 작은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보리라 생각하면서. 부족의 샤먼은 철학자를 용서하며 말한다. 원래대로 돌아가지는 못해도, 허상의 세계는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하류의 물은 위로 올라갈 수가 없다. 아마존 부족들의 훌륭한 정신적인 평화는 어째서 그리도 쉽게 하잘 것 없는 권유에 정복당하였을까? 나는 정신적인 오염이 인류가 거쳐야 할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같은 연약한 순수함에서 오염으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강한 순수함과 지혜를 갖추어가는 수순 말이다. 샤먼은 철학자를 증오없이 용서하였다. 오히려 사랑했다. 강인한 지혜가 베풀 수 있는 넓이였다. 이 앞에서 작은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회보다 개인의 병폐를 더 지적하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물론 전쟁이나 부당한 감금학대 등 극단적인 상황은 제외하고)에 대해 남의 핑계를 대는 것은 미성숙한 일이며, 상황의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마존 부족들도 사고방식까지 비교적 깊이 편승한 사람, 그저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한 사람,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사람 등 다양했다. 시끄러운 사회에서 태어난 것에 징징대지 말고, 스스로 잠잠함 속에 평화를 찾아야 한다.

 

제목 ‘어리석은 철학자’는 많은 현대인들 모습이 아닐까한다. 과거에 비해 학력 수준은 너무나도 높아졌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우리는 높아진 교육 수준을 오히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데 더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바보짓을 그만두자. 내 곁의 행복이 눈에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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