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선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거나 내가 관심있고 더 알고 싶어하는 분야의 책이거나 아니면 책 제목이나 광고카피에 끌리는 책. 솔직히 말해 코맥 맥카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저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잡아들게 된 것은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라는 광고 카피가 내 눈을 잡아 끌었기 때문이다.
 책은 남자와 소년의 ‘순례(?)’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의 줄거리를 찾아본다면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다. 세상의 종말이 닥쳐왔고 대부분의 사람은 죽었다. 생존자들은 절망 속에 생존을 위해 각자 나름의 방법을 찾아간다. 소년과 남자도 그 중 하나이며 길을 따라 끝없이 걸으며 폐허 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언뜻보면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외롭게 생존해나가는 모습이 ‘나는 전설이다’와 일면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전염병때문인지, 전쟁때문인지, 아니면 그 어떤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욕심으로 벌어진 재앙인지, 왜 세상이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언급하지 않는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왜 세상이 망했는지가 아니라 그 세계에 남아 있는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보면 왜 세상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절망 속에 살아간다.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여자(아마도 남자의 부인이자 소년의 어머니인듯)은 자신의 ‘새로운 애인’인 죽음을 선택한다(소설 속에 명시되어 있진 않다). 그들이 만난 ‘공동체’의 사람들도, 신의 예언자라던 ‘엘리’ 노인도, 이름없는 그 어느 무리들도 희망은 갖고 있지 않고 단지 살아있다는 것이 단지 생존의 목적일 뿐이다. 남자에게는 소년이 존재의 목적이지만 책의 후반부에서 소년이 그에게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그 역시도 절망을 넘어선 무엇을 바라보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소년에게 무언가 희망을 주고자 한다. 옛날 이야기에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들만을 꾸며 이야기하고, 남쪽으로, 바다로 가야하며 자신들이 불을 옮기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갖고 싶었던 희망을 소년에게 주고 희망을 갖고 있는 소년을 자신의 희망으로 삼고 싶었기 때문일까. 소년이 옮기고 있다는 불이란 것은 어쩌면 소년이 남자와 함께하며 갖는 사랑과 희망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모든 것들이 이름조차 없는 무채색의 세상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걱정하는 존재’인 소년, 생존만을 갈망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너머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소년의 모습은 아마도 이 책에서 유일한 ‘유채색’이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서 절망 속 희망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어쩌면 일흔이 넘은 저자 자신이 아들을 통해 희망을 찾고자, 또 자신의 아들은 잿빛 절망에 덮인 무채색 세상에서 유채색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첫 장을 열고 책을 덮는 순간이 되어도 이 책이 어찌하여 성서와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권위적이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성서에 비견하여 책의 위상을 높이려는 카피라이터의 모략(?)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성서를 보며 느꼈던 무언가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은 차치하고 그들의 여정을 통해 삶과 절망, 희망에 대해 색다른 사유를 해볼 수 있는 유쾌한 독서가 될 수 있었다.

 '슈퍼 자본주의' 흔히 들어본 용어는 아니다. 
 과연 슈퍼자본주의란 것이 뭘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저자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슈퍼 자본주의'라 칭한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균형을 이루던 지난날과는 달리 극대화된 자본주의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을 일컫는 것이며 책을 통해 과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조화를 이루던 '황금기', 그리고 자본주의의 극대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발생한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노조의 강성한 활동과 자본가들의 사회적 책임의식, 그리고 어느정도의 독과점 상태가 유지되면서 소비자들은 지금과 같은 신속하고 능동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지는 못했지만 기업들은 독과점 상태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을 보장받았다. 따라서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될 수 있었고 사회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에서 개발한 기술이 민간에 적용되고, 점차 세계화의 바람이 불면서 80년대 이후 시민들은 노동에 의한 수익보다는 주식 등의 투자에 의한 수익을 추구하게 되었다. 덕분에 기업은 자신들의 주식 가치를 올리기 위한 구조조정 및 다양한 혁신활동을 펼치게 되고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은 보다 높은 지위적 향상을 얻지만 노동자는 그 위치가 매우 격하되고 이는 결국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적 불안정을 낳는다. 여기에서 월마트의 사례를 들어 소비자에게 최저가의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하청업체와 고용원들을 저단가, 저임금으로 압박하고 소비자들이 월마트를 찾으면 찾을 수록 이는 하청업체와 고용원에 대한 부담으로 적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비자로서는 더 낮은 가격을, 투자자로서는 기업의 혁신을 바라지만 노동자로서는 안정적 직장과 높은 임금을, 시민으로서는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민주주의의 형성을 원하는 우리 안의 두 마음을 꼬집고 있다.

 기업은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 수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좀더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 조성에 힘쓰기 위한 로비활동을 활발히 펼친다. 이전에는 워싱턴이 한적한 도시였으나 이제 번화가로 변한 도시의 모습을 보며 로비활동이 얼마나 심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당들은 이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보다는 자신들의 후원금을 대주는 기업의 목소리를 우선시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중산층의 붕괴와 맞물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했지만 책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월마트 등을 비롯한 각종 사례와 수많은 통계를 도입하여 실증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아 '슈퍼자본주의'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다. 앞의 분석은 훌륭한데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시민의식 회복과 법인세 폐지를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분석을 보며 너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개인적으로 대안에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큰 설득력을 얻지는 못하는 듯 싶다. 하긴.. 이 문제를 혼자의 고민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들 이렇게 열심히 고생하며 노력하진 않겠지만.. 또한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나타난 현상 위주의 분석이므로 자본주의라기보단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라는 한계도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점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의 분석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양립에 대한 문제, 노동자이자 동시에 소비자/투자자인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