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명제한의원 김판규 원장

 

오랜만에 가슴 뜨거워지는 소설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정확히 말씀 드리자면 이것은 소설책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선생님의

일대기입니다.

우당선생님의 전기를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이렇게 쉽게 소개하는 것조차도

결례가 되거나 선생님의 큰 뜻을 자칫 폄훼하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먼저 고해(枯骸)도 찾지 못했을 우당 이회영선생님의 발자취와 뜻을 찾기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느라 넓고도 넓은 중국대륙을 수도 없이 오가며 발이 부르터도록

걷고 또 걸었을 작가 박정선선생님께 기립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독립을 하고도 실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독립운동가의 삶이

머나 먼 타국의 역사가 된 지 오래인 오늘날 어쩌면 우당선생님의 대한민국

독립운동사가 세인의 관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몇 번을 울면서 진료시간 중에도 환자를 대기시키며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때로는 우당선생님과 전생에 함께 독립운동을 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그 시대에 태어나 우당선생님을 보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아쉬움에 목이 메기도 했습니다.

에필로그가 끝나고 작가선생님의 말씀도 끝이 났지만 저는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맨 뒷장에 둥근 네모로 박스가

쳐진 하얀 백지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쓰는 공간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제 머리 속은

이미 첸징우의 썰매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는 눈보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페이지의 백지를 하염없이 오래 쳐다보았음에도 맨 뒷장을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사는 진정한 의미와 진리를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오로지 저 자신에게로만 집중되었던 많고 많은 에고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오늘의 이 풍요롭고 복된 삶이 얼마나 많은 숭고한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

졌음을, 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가을바람과 맑고 푸른 하늘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되새겨봅니다.

어느날 지인인 푸른바람님이 저에게 택배로 책을 한 권 보내주셨습니다.

저자와 가까운 사이라는 말씀에 처음엔 이웃에 사시는 어느 작가선생님

한 분을 좀 아시나보다 그렇게 대수롭잖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손에 드는 그 순간부터 한 페이지도 읽지 않은 저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쥐꼬리만한 의협심으로 가끔 정의를 생각하는 정도의 알량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스스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개인의 삶이 만인을 감화시키기 참으로 어려울 것이고 이미 100년도 넘은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구체화됨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흥행이 쉽지 않은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금전이나 영업적인 이익보다 오로지 뜻을 전달하시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노력.

어쩌면 이 소설을 쓰신 작가 박정선선생님의 애쓰심이 우당선생님의 그것에

필적할만하지 않을까 여깁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토시 하나도 곱씹어 읽어야 되는 습관 때문에

잠자리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는데도 사흘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책장을 덮었음에도 도무지 소설은 끝이 나지 않았고 마음이 너무 쓰려서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큰 가슴을 가진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 한 분이

자꾸만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