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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먼저 사토 마나부의 말대로라면 이 책의 제목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이 아닌 ‘공부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 책은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과 ‘학력을 묻는다’라는 논문을 두 개 합본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교육문제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왕따, 학급붕괴, 소년범죄 증가 등 매스컴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보다는 학력저하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고 말한다. 학력저하의 배경에 대하여 선택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인해 학력편중과 교양해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았다. 학력저하의 실체는 국제 수학 이과 교육조사와 교육과정 실시상황조사 결과의 분석을 예로 들어 기초적인 항목에는 강하지만 학습에 대한 기피증을 보이고, 창조적인 사고나 추론적인 사고 등에 약하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는 21세기 고도의 복합적인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회 시스템에 비추어 큰 문제가 됨을 지적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번지는 허무주의와 냉소주의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았다.

이런 문제의 이면에는 동아시아형 교육의 붕괴가 있다고 보았는데 급속한 근대화와 경쟁원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동아시아형 교육은 경제의 발전을 통한 사회이동의 유동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가 포스트산업사회로 그리고 글로벌화 됨에 따라 기존 세대가 누려왔던 사회이동의 유동성이 학습자들에게 보장이 되지 않음으로 인해 학력의 신화와 공부의 시대가 끝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가 아닌 ‘배움’을 추구하는 학교를 이야기한다. ‘공부’와 ‘배움’의 차이는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 있다. ‘공부’는 무엇과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없이 수행되는 것임에 비해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항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타자의 사고나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타자의 사고나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고, 자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다. ‘배움’이란 사물(대상세계)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한 <세계 만들기>와.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에 의한 <친구 만들기>,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만남과 대화에 의한 <자기 만들기>가 삼위일체되어 수행되는 ‘의미와 관계를 엮어가는’ 영속적인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교실에서 ‘공부’를 ‘배움’으로 전환을 실천하기 위해서 세 가지 구체적인 과제의 수행이 필요한데 첫째, ‘사물이나 사람이나 일’과의 만남과 대화에 의한 ‘활동적인 배움’을 실현하는 일이다. 좌학으로 교과서의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은 ‘동굴의 죄인’의 예처럼 그림자를 현실로 잘못 인식하기 쉽다. 이 그림자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구나 소재나 사람으로 매개된 ‘활동적인 배움’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타자와의 대화를 통한 ‘협동적인 배움’을 실현하는 것이다. 고도화 된 지식 정보화 사회에는 너무나 배울 것이 많은데 혼자 하는 공부만으로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상호존중하면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타자의 아이디어를 겸허하게 서로 배워가며 만나는 협동적인 배움이 이 시대에 부합하는 배움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하여 축적하는 ‘공부’로부터 탈피하여. 지식이나 기능을 실현 공유하여 음미하는 배움을 실현해야 한다. 생각의 숙지나 암기 같은 예금의 개념에 묶여 있는다면 배움으로 전환하는 일도 저학력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일도, 창조적인 배움을 수행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하여 축적하는 공부에서 자신의 이해방식을 발표나 작품으로 표현하여 친구들과 공유하고 서로 음미하는 ‘반성적인 학습’을 실현하는 것이 요구된다.

‘2장 학력을 묻는다.’는 ‘배움으로 도주하는 아이들’에서 언급된 내용이 많은데 새로운 내용이라면 학력의 화폐적 기능, 기초학력의 철저, 수준별 학습지도, 소집단지도가 정말 학력향상에 효과적인지에 대하여 이야기 한 부분이다.

학력의 화폐적 기능을 3가지 측면에서 이야기 한다. 첫째, 평가기준으로 기능이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학습경험을 일정하고 균질적인 척도로 값을 매기고 가치를 부여하는 기능이 있다. 둘째 학력의 교환수단으로의 기능이다. 입시나 고용에 있어 서로 일치하지 않은 채용자의 요구와 지원자의 능력관계를 간접교환하여 합리화시키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축수단으로의 기능이다. 화폐의 가치가 통화시장에서 끊임없이 변도하는 것처럼 학력의 가치도 사회와 경제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읽고 쓰고 셈하기가 과연 기초학력일까?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기초학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읽기, 쓰기, 셈하기 위주의 기초학력 교육의 철저는 사회에 참여가하기에 필요한 교육이 미치지 못하고 청년실업자의 확대를 초래하게 된다. 기초적인 지식과 기능은 반복연습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기능적으로 획득된다. 또한 학력형성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끌어올려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비고츠키의 발달근접영역과 내화이론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학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돌아가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할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을 교사나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모방하고 이를 스스로 내화할 필요가 있다.

수준별 학습지도 역시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 이미 1960~70년대 영국의 능력별 편성의 폐지에서처럼 수준별 학습지도는 공립학교가 입각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차별교육이며, 학습지도에 있어 곤란을 초래할 수 있다. 기능을 단계적으로 습득하는 학습에는 이 지도법이 유효하겠지만 교육내용의 주제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같이 참여하여 서로 배우는 수업하는 학교학습에는 적합하지 않다. 1969~70년대에 세계 각국에서 수준별 학습지도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있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와 폐지되고 있는 추세이다. 학습의 개별화는 블룸의 완전학습에 그 근거를 두는데 블룸의 완전학습의 결과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저학력에서 구하는 것은 블룸이 연구한 수준별 학습지도 프로램이나 지도법이 아닌 아이들이 배우는 교실이며 교사이며 친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