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 동갑내기인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놀라운 힘을 다시금 느꼈다. 무수한 고전들의 나이는 몇백년된 것도 있지만 그저 나와 같은 해 태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금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대중성보다는 독틈함과 매니아 층을 가질만한 글같다. 이 책을 처음 발견하게 된 계기도 네이버 지식인 서재에 나온 박찬욱 감독 덕분이었는데, 그의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복수, 살인 심지어는 흡혈귀까지 등장하는 평범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의 정신 세계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그것을 채운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에 초점을 두다보니 그가 읽은 책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추천 책 속에 덩그라니 자리했던 이 책은 그가 특히 영화를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기에 더욱 궁금했었다. 그래서 몇개월 아니 1년여란 시간을 모셔놓다가 이제서야 책 읽기를 마치게 되었다. 

책 겉표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의 얼굴이 앞, 뒤표지에 사진으로 실려 있는데 과연 한 인상 해주시는 이 이문구 작가는 진정코 카리스마를 가진 작가인 듯 하다. 고로 이 책은 소설이 아니 그의 삶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글로서 6.25를 전후한 그네들이 삶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삶이라 할 수 있겠다. 과연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냐만은 먹고 사는 본능적 욕구의 문제와 더불어 자고 일어났더니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었더라는 상전벽해라는 말과 같은 커다란 변화의 중심 속에 살았던 그들이 어떠했는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의 삶 속에서도 살아야 할 가치가 있고 그 속에서도 찾아지는 삶의 주체성이 있음을 작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배우고 느끼고 있었으며 그러한 삶을 맛갈스런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사실 외국나라 말처럼 이해가 안갈만큼 그네들만의 사투리였지만 고기가 씹어야 맛이라고 하듯이 읽을수록 그 고유의 문체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8개의 특정한 일가나 인물을 중심으로 쓰여진 글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작가가 살면서 실제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진실되게 보여주고 있다. 족보만은 지켜야 한다는 올곧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가까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저 곧음으로 혼자 외롭고 힘들었겠다는 연민의 정도 갖게 되고, 집에서 일하던 부엌데기 옹점이만큼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 요즘 세상에 더 있을까라고 혼자 되뇌이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하고 욕하거나 틀렸다고 해도 대복이는 그의 진정한 친구였으며 끝까지 작가의 집안을 진짜 양반으로 대했던 신가네도 그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처럼 소설이 아닌 그의 수필이 극적인 소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남들이 생각하거나 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바로 그 삶에 대한 통찰이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글을 남김으로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나같은 후손들이 역사 시간에 배울 수 없었던 진짜 우리 선대들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줌에도 틀림없는 일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의 삶을 놓고 그들의 편에서 이해를 같이 할 수 있었던 작가의 따뜻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작년 한해 동안 나를 상담해주신 학교 상담자가 이 책을 선물로 건내주었다. 사실 집에도 이 분의 책이 한 권 더 있었는데 끝까지 다 읽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맹인인데 미국에서 박사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기에 커다란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분의 이야기는 정말 극적이라고 할만큼 놀라운 이야기이며, 그의 표현대로 장애인의 반대가 정상인이 아니라 그저 비장애인인 우리들 모두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의 성공보다도 세상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한 그가 가진 마음의 눈이다. 눈을 갖고도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정안인보다 그는 실로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를 통해서 성공했다’

1944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은 전쟁 속에서 보내고 양친과 누나마저 잃고 결국엔 망막박리로 시력잃게 된 그는 맹학교에 입학하여 연세대학에서까지 공부하게 된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정말 나로선 얼마나 많은 핑계들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했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고 하였다. 길을 스스로 찾으면 그 길이 하나의 길이 되듯이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을 하였고 그럴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노라 말했다. 물론 많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분명 그를 무시하고 힘들게 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것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이 빛을 보지 못함으로 인해 만나게 된 빛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아야겠노라 결심했던 것이다.

어쨋든 강박사는 장애인에게 열리지 않은 한국의 교육을 등지고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로 부시 행정부에서 장애인 정책과 관련된 일도 맡아서 했었다. 그의 꿈이 한국에 돌아와 강단에 서는 것이었지만 실로 한국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은 아직은 실망스러운 수준이기에(아마 수십년 전엔 더 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 4학년 미국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 기사의 장애인에 대한 행동을 보고 미국의 의식수준에 대해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개인의 인성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를 말하는 것인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타려고 하자 버스기사는 버스 시동을 끄고 내려서 직접 장애인을 실어주고 안전장치까지 해준 후에야 다시 버스를 출발시켰다. 바쁘고 이용자가 많은 서울 버스에서는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 의식전환만 된다면 분몇히 실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책을 읽는 내내 미국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 수준에 대해, 그리고 그보다 더 확장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기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몇일 전에도 신문기사에서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정유선 박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인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대학 진학이 쉽지 않자 미국으로 건너 가 특수 교육에 대해 전공하고 현재 대학에서 의사소통 보조기에 대해 장애인 특수 교사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이들에겐 신체적 장애가 그들의 삶에서 전환점이 되어 오히려 남을 위해 일하는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도 하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은 종교에 대한 부분인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을 많이 느꼈다. 난 몇몇 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안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흔히 사이비라 불리거나 지나치게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우기는 광신교도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 종교의 전체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를 보면 유독 그들의 오만함이나 타종교에 대한 배척이 심하다 생각하여 불편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가 강박사의 삶의 미친 영향을 보았을 때 얼마나 훌륭한 삶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삶은 훌륭하고 성공했다라고 하기엔 그가 겪은 수많은 삶의 과정들이 무색해질지도 모르겠다. 한권의 책으로 우리가 어찌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나는 그가 지금 서있는 위치보다는 그가 책에서 강조하던 사람을 긍율히 여기는 마음 혹은 공감하는 마음은 ’compassion 이 머리 속에 남았다. 한시도 그러한 마음을 잃지 않았기에 지금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있는 것이다. 그의 부인이 그러했고 그의 아들들, 그를 도와 준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다.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