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서평을 써온 지 삼 년 째 가 되어간다. 처음엔 20대 내내 책을 읽지 않고 지난 시간이 후회스러워 몇 권을 읽었나 새어보기 위함이었고, 나중에는 쓰는 서평마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나서 나름 심혈을 기울여 써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초중학교에서 제일로 싫어하는 숙제가 독후감 쓰기였을 정도로 글쓰기를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아마 못해서 싫어한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책을 읽고 느낌이나 좋은 문구를 남기면서 써놓은 글이 부족해서 부끄러우면서도 써놓고 나니 몇번 씩 읽어보고 뿌듯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글쓰기와 함께 나는 치유하고 성장했다고 믿게 되었다.
박미라와는 이미 책을 읽기 시작한 2년 여전부터 만날 수 있었는데 김형경씨와 한겨레신문 상담코너에서 상담해주던 내용을 추려 책을 내었기에 그 두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가졌는데 아마 두 사람이 치유의 중점을 두는 방식의 차이도 있을테고 본인이 가진 성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형경의 글에서는 겸손과 자신의 아픔이 많이 묻어나고 박미라의 것에서는 따뜻한 위로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독자에게 하고픈 말은 꼭 같다.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더 알아보라고,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글쓰기는 분명 치유의 효과가 있다. 내 주장이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혹은 개인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으며, 박미라도 여러가지 방법 중 자신이 실제 경험하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 책에서 소개해주고 있다. 특히 그 중의 미친년 글쓰기가 참 맘에 들었다. 어감이 좋진 않지만 뭔가 자유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박미라도 그것을 우려하여 말하기를 미친년을 우리가 생각하는 머리에 꽃 꽂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여인으로 상상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몰랐던 나의 감정을 미친듯이 표현해볼 수 있는 것, 그 누구의 방해와 감시에도 아랑곳없이 표현해 볼 수 있는 것, 심지어 자신의 검열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있는 글쓰기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박미라가 말하는 글쓰기는 법칙에 맞추거나 잘쓰고 보여주기 위한 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글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가를 글쓰기 치유 프로그램의 참가자를 통해 많이 보아왔고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이러한 경험을 해보기를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실은 나도 서평을 쓰거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도 많은 장막을 치고 검열을 하며 숨기는 글쓰기를 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상일 것이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무의식을 억압하느라 용을 쓰며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니까…
예전에 글쓰기에 관한 책 중에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도 참 인상에 남았었다. 그 책의 제목처럼 바로 자신의 밑바닥 때론 추하고 너무 적나라해서 자신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스스로 치유해보라는 것에서는 박미라와 뜻을 같이하는 듯 하다. 박미라의 책에는 적나라한 글쓰기 프로그램 참여자의 글들이 꽤 실려있다. 보다보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감이 잡힐 것이다. 나도 몇번 시도를 한적이 있는데 그런 충동적이고 거침없는 글을 비밀폴더에 담아 두었다가도 누가 볼세라 한달만에 지워버린 적이 있었다. 그만큼 내면의 나와 만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심리학 수업 중 교수가 말했듯이 그렇게 써버리고 태워버리거나 지워버려도 나는 어느 정도 치유의 과정을 거친다고 본다고 한다. 그저 스트레스 해소가 되거나 본연의 나에 대해 작은 무엇하나라도 발견한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인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가장 가슴을 울리는 것은 진실되다고 느껴지는 글이다. 소설이든 자기계발서든 글에서 진정성을 느꼈다면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로 치유가 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박미라의 글에서도 그녀가 지나왔을 치유의 과정이 느껴지고 그녀도 또한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또한 책을 읽다보면 다른 이의 글을 읽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의 확장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내 글이나 혹은 말에 대한 다른 이의 반응은 다른 이의 투사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은 내가 타인의 평가나 비판 앞에서 더 자유롭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즉, 내가 누군가의 글이나 말에서 감정이나 생각의 변화를 감지하거나 민감한 부분을 느낀다면 바로 그때가 타인을 볼게 아니라 자신에게 화살을 돌릴 때라는 것이다. 내가 왜 그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왜 그러한 감정이 들었는지를 잘 들여다보면 좋을 것이다.
작년에 다니던 사이버대학 상담센터에서 일년 간 상담을 받았더랬다. 상담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던 나도 내가 상담이란 것을 받아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참 값진 시간이란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학교 수업과 직장 생활, 새로 시작한 영어스터디에 참가하면서 매주 한번 참가해서 나를 돌아본 시간은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인함을 갖게 해주었고 실제 나란 인간에 대해 조금 깊게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성장할 때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내가 상담을 받으며 보냈던 시간도 한권 한권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던 시간도 거북이처럼 느리게 만들어지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를 자라게 하는 과정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