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나'란 무엇일까?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순간들 속에 나는 '나'를 보고, 그 '나'를 보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 삶의 순간들은 매우 혼란스럽고, 그 속에서 우리는 개인들이 스스로 소진(消盡)하도록 만드는 사회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토록 나를 바쁘게 만들고 어떻게든 무엇인가를 하게 하도록 채찍질 하는 것이 정말 옳은 삶의 방식일까?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쉴 틈은 없고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p. 29)

 

 우리가 생활 속의 1분, 1초를 즐겁게 누려야 하는 이유는, 인생이란 것이 본래 무수한 일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근할 때나 길을 건너는 매 순간이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두 삶의 풍경이고 생명 속에서 고동치는 음표임을 인식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p. 50)

 

 위 구절들은 책 속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위 문구들을 읽고 나서 앞의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 어떤가? 우리는 성공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항상 바쁜 상태로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부족하다 평가하며 자신 스스로를 자꾸 몰아세우고 있다. 이같은 광경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풍경'이노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마땅히 여유로운 마음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중국의 청화 대학교에서 현대인의 마음의 문제를 돌아보고 이에 대한 근거를 옛 중국 경전에서 찾는 <유가경전입문> 강의로 큰 인기를 끌었던 팡차오후이 교수의 저서이다. 교수는 수신 사상을 강조하며 현대인들이 마음의 병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헤집어내 치유하도록 이끌 수 있는 정좌를 실천할 것을 권유한다.

 

 정좌란 고요한 가운데 나 스스로에게 말을 걸면서 내가 부족했던 점들을 살펴보고, 내 안에 감추어지고 억눌러왔던 욕망을 끄집어 내어 그 욕망의 날것에 당당히 마주서는 작업이다. 나 자신의 부족함과 계속 맞서려니 괴롭고, 고요하지 않은 세상에서 집중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계속 노력해야 하고, 내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언어가 다스려지며, 언어가 다스려지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나는 삶을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를 채근담, 논어, 맹자 등의 뛰어난 사상가들이 남긴 지혜로운 언어로 설명해준다. 처음에는 바쁘고 삭막한 삶 속에서 나의 아픔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듯한 책 속의 언어에 빠져들듯 읽어나갔지만, 위안이 되고 앞으로는 이렇게 하여야겠다는 다짐 뒤편에는 '글쎄? 그때는 지금과 사회 모습이 달랐지 않았을까? 전통 사회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느긋하고 빠르지 않은 속도 속에서 살아왔지만 지금의 우리는 전혀 다른 환경과 다른 사회에 놓여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 작은 티끌마저도 털어버리려는 듯이 전통 사회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를 비교하며 따끔하게 일침한다. 그때와 지금 모두 생존을 위해 경쟁하며 숨가쁘게 몰아치는 사회의 모습이 똑같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때가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때는 과거도 거의 0.1%로 등용되었고, 그렇게 어렵사리 통과한 과거였어도 정치 속에서 희생되거나 군주에 의해 목숨을 잃을 확률이 꽤 높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미루어 볼 때, 과거의 사회도 오늘날 사회와 같이 생존이 어렵고 급박한 사회라는 것은 별 다름이 없다.

 

 그러나 전통 사회의 사람들의 '태도'는 지금의 우리와 현저하게 달랐다는 것이다. 생존의 위협이 있고 경쟁 체제라 하더라도 부족한 자신을 소진시키고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하여 자신 스스로 소진하는 태도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잘못된 삶의 방식이라 평가하는 것이다. 바로 사마광을 바라보는 정이의 생각이 그러했다. 밤새 불을 밝히며 깊은 생각에 잠겨 초조와 불안에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이는 자신의 학생에게 사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마광, 이 사람은 그야말로 아주 비참한 인물이다. 어쩌면 세상을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가! 세상을 사는 데 도대체 얼마나 정력이 넘치기에 그렇게 스스로를 소모하며 살아간단 말인가!"

 

 옛 사람들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 심신의 건강을 훼손하면서까지 큰 성취를 얻더라도 그것이 별 다른 의미가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편집'이라 하고 반드시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p. 106)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반성하게 되고 마음 한 구석이 뜨끔하게 되었던 부분은 제 7강 주경 (나를 사랑하는 힘)에서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남을 깔보는 오만함을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어느새 허영이 가득하고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진 나머지 은연중에 남을 내려다 보기도 하는 오만함이 있었고, 이에 덧붙여 남들보다 항상 앞서서 누군가를 이기고자 했던 지나친 승부욕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는 나에게 격언련벽은 따끔하게 경고해 주었다.

 

p.218

 걸음마다 앞서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밀치는 사람이 있고,

 사사건건 이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좌절시키는 사람이 있다.

                                            -《격언련벽》

 그리고 이에 온화한 어투로 덧붙여 이어지는 팡차오후이의 충고는 나의 미련함과 부족함을 보여주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는지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수많은 유혹들, 그리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내 마음을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쉽게 설명해주는 옛 지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에 위로와 평안함을 주어 좋은 휴식이 되어 준 시간이었다.

 

나를지켜낸다는것, 고전, 팡차오후이, 성찰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러시아 문학은 한 때 인텔리한 지식인들이 향유할 만한 고급 문화로 여겨져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었을 만큼 읽지는 못했어도 이름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왜일까. 왜 '러시아 문학'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그토록 많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을까? 물론 러시아 문학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큼 명작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전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의 첫 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책의 첫 장에서는 당시 러시아의 역사와 민족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데 240년동안의 몽골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던 러시아 국민들의 민족성과 항상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우리나라 국민들간의 정서적 동질감을 확인시켜 준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에게 러시아란, 아나스타샤의 세상과 추운 시베리아의 기후를 견디는 강인함 뿐이었는데 러시아에게 식민통치에 대한 아픔의 역사가 있었고 유럽과는 어떠한 독특한 차이로 역사가 발전되었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내 책장에 자리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 위해 저자와 작품에 대한 배경적 지식을 얻는 것이었는데, 로쟈 선생님의 정신분석학적 접근과 작가의 생애에 얽힌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서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작가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고, 문학을 대하는 작가들의 접근법이 서로 어떠한 차이를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보다 더 높일 수 있었다.

 

 로쟈 선생님의 해석은 흥미로웠고 설득력이 있었지만, 이러한 문학 해석을 대함에 있어서 의문이 드는 것은 문학 작품에 대한 정통의 해석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물음이었다. 어차피 작가는 작품을 내어놓을 뿐이고 그러한 작품을 해석하여 삶에 녹이는 것은 독자의 재창조 작업인데, 전문적으로 문학 작품을 연구하는 분들을 보면 대개 작품에 대한 온전한 해석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며, 작품에 대한 해석 작업을 마치 전문적인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물론 독자들의 텍스트 해석에 대한 오류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독서 과정에서 그 표면적인 의미를 잘못 파악하면 해석에 대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명작명문과 글쓰기 수업을 수강할 때도 작품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때까지 서로간의 토론을 거쳐서 생각을 확장하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텍스트의 표면적인 의미 해석은 일종의 정해진 방향이 있는 듯 보이나, 텍스트 내부의 본질적인 의미 수용은 그 텍스트를 대하는 독자의 배경지식과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해석을 접할 때는 그 해석을 수용하건, 수용하지 않건간에 다른 이들의 관점을 통해서 기존에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단순한 텍스트 자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역사적인 배경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측면들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해주었다. 이들 작품들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물론 관심 있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그들의 생애와 환경도 관심이 있었지만, 작가 고골의 생애였다.

 

 러시아에서 추앙받는 시인인 푸슈킨의 사망 후 이제 본인이 러시아 국민들의 도덕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작가로서의 책임 의식을 느꼈으나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껴 절망하여 결국 미치광이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이러한 생애가 불우한 예술가에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구나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참 안타까웠다.

 

 고골의 경우 특출한 재능은 풍자와 해학이었는데 진지하게 사고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가의 입장과 의무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본 재능을 돌보지 못한 사례이다. 이러한 고골의 생애는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것 같다. 자신의 진짜 재능과 원래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선망하는 것들을 좇은 나머지, 원래의 재능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순간에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을 놓치는 일. 이것은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원래의 재능을 발현시켰다면 얻을 수 있었을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그의 희곡 작품 중 『검찰관』에서 무대 위 등장인물들이 1분 30초 동안 멈춰 있어야 한다는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책의 본문 내용을 살펴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검찰관』의 첫머리에  "제 낯짝 삐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는 러시아 속담이 제사로 쓰여 있습니다. 제사, 즉 에피그라프는 이 작품을 어떻게 읽으라는 주문입니다. 사람들은 제 얼굴이 삐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에 얼굴이 삐뚤어지게 나오니까 거울을 탓합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신의 삐뚤어진 면상이죠. 무대 위에서는 굉장히 속물적인 인물들이 그려집니다. 관객들은 깔깔대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무대가 거울이라면 그 모습이 바로 관객들의 자기 모습이라는 거예요. 고골은 이 무대라는 거울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1분 30초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정지 장면이 계속되면 그 속에서 자기를 보게 되는 겁니다. 웃음에서 경악과 공포로 변해가요. 이것이 고골이 의도했던 거였습니다. 이 작품은 우스운 드라마지만 마지막에 공포를 심어주고, 이 공포를 통해서 도덕적인 정화가 일어나야 했던 것이지요.

-이현우(201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p.114

 

  이러한 단순한 장치 하나에도 작가의 세심한 의도와 깊은 사고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1분 30초의 의미가 내게도 명확하게 느껴지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렇듯 이 책은 매혹적인 러시아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그들의 작품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어 있고, 그들의 삶은 그들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상호연계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모습과 후의 작가들에게 일종의 모티프로써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과 작품들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으로 다가가서 작가와 작품을 낱낱이 파헤치는 저자의 해석을 통해서 러시아 문학을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러시아문학, 로쟈, 현암사, 톨스토이

 요즈음 역사와 관련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들이 많다. 뉴라이트 진영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학계의 대처, 그리고 교학사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를 거부하는 교사와 학교의 대립 등은 여러 가지 이슈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간단히 이야기하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근대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혹은 식민지 이전의 조선에서는 근대화를 이루려는 조짐이 없었다)을 주창하는 뉴라이트 진영은 대개 경제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여러 가지 수치화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던 이영훈 교수는 그의 책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민족주의 위주의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할 수 있어야하고, 교과서도 다양성을 존중하여 다양화 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에 두고 생각하면 교학사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 또한 이러한 '다양화'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관련되어 토론할 기회가 있어왔고 그때마다 항상 언급했던 것과 같이 나는 이러한 움직임에는 보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식민지 근대화론의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은 자유로운 의사가 표출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거하여, 그들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학사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 사건은 단순히 '다양성'으로 넘길 수만은 없다. 교육은 학계의 '정설'을 토대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과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 사관을 벗어나 다양한 입장에서의 의견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명목하에서 학계에서 명확히 인정을 받지 못한 '비주류의' 뉴라이트 입장에서 서술된 교과서로 지도하자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여전히 끊임없이 이와 관련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그래서 더더욱 올바른 '사관'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 역사를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료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어떠한 해석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역사는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가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적절한가? 이 물음에 앞서 여기 냉철한 시선으로 과거 우리 역사의 잘잘못을 명백히 가려낸 천재 역사가의 책이 있다.   

 

 신채호는 이 책 『조선상고사』를 옥중에서 집필하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참고할 수 있는 책도 없었고, 그래서 오류도 여러 개 남아 있었다. 후에 탈고를 거쳐 완성할 계획이었지만 건강 악화로 인해 채 이루지 못하고 이 책은 이렇게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다양한 역사서를 풍부하게 읽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잘못 쓰여진 과거의 역사들을 바로잡는다. 그리고 잘못 쓰여진 역사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동시에 옳지 않은 사관을 꼬집는다.

 

 대표적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여졌고, 또한 중국의 역사서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잘못된 기록들이 많다. 게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위상을 깎아내리고자 의도적으로 편향된 관점에서 여러 사건들의 연대를 뒤섞기까지 했다. 신채호는 이를 비판하면서 잘못된 역사들을 여러 서적들의 내용과 비교하고 유추하면서 올바른 역사로 바로잡고 있다.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객관적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역사다. 작자의 의도에 따라 사실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덧붙이거나 바꾸어서는 안 된다.

 

 신채호를 민족사관이라 엮어 편향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객관적인 입장에 선 한 명의 독자로서 판단하건대 신채호만큼 객관적인 서술은 없을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 역사를 비판하는 어떤 책에서는 자신의 역사관을 관철시키기 위해 인용한 근거로서 한 개인의 대화, 혹은 한 개인의 의견을 인터뷰한 신문을 인용하는 근거로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들을 제시하기도 반해 신채호는 오직 다른 사료들을 기반으로 유추한 그 자신의 논리적 판단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로 판단하건대 신채호의 역사가 훨씬 더 객관적이며 정설에 가까운 견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은 역사를 배웠을 때 깊이 짚어본 적 없었던 옛 이름들의 어원을 추적하여 관련된 사건들의 이해를 높여준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마가, 우가, 저가 등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리고 당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비추어 설명하는 것이 배웠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다. 사실 용어를 달달 외우게 하는 것보다 배경이 되는 부분들을 설명해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교과서에서는 단순히 명시적으로 언급만 하고 해설해주지 않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또한 특별히 역사의 아침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엮은이 김종성씨는 신채호가 참고문헌을 확인해가며 저술할 수 없었던 한계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했던 오류들을 바로잡고, 독자가 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에는 주석과 따로이 지면을 할애해서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독자로서 참 감사하게 느꼈는데 내가 처음 도서관에서 다른 출판사의『조선상고사』를 도서관에서 읽으려고 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책 읽는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못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그때 파악하지 못한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정말 술술 읽혔다. 독자에 대한 역자의 배려가 빛나는 부분이었다.

 

 역사가 신채호는 참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고 왜곡되어 사장될 뻔했던 옛 선조들의 빛나는 업적을 명확히 바로볼 수 있게 해준 업적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책조차 구하기 어려운 중에도 자신을 지켜내면서 독립운동으로 옥에 갇혀서도 기억에 의존해 책을 쓸 수 있는 지식과 식견까지 쌓았으니 정말 대단하다. 신채호가 최치원을 평가하면서 인물은 그 자신의 역량 뿐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는데 신채호는 그 뛰어난 역량과 놀랄만한 업적에도 그만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위인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이제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이 등장했으니 앞으로 『조선 상고사』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역사책들을 읽으며 공통적인 기록을 비교하고 유추하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바탕에 두고 잘못된 관점으로 왜곡된 부분들을 바르게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여러 입장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커져가는 논란 가운데에서도 왜곡되지 않을 사관을 지니며 이를 토대로 바른 판단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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