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전세계의 여러 국가에서는 기아와 가난으로 고통 받으며 굶어 죽는 아이들도 있지만, 여기 한국에는 자신의 모진 목숨을 스스로 끊는 가여운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모진 목숨을 스스로 거두어가는 작은 소녀 천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아한 거짓말』이 다루는 왕따나 학교 폭력 문제는 이미 여러 나라들의 사회에서 문제시 되어왔고, 특히 우리나라는 그 문제가 점차 사회문제로 형성되어 그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처럼 10대들의 관계와 내재된 폭력성의 묘한 심리를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소설로는 최근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침묵의 거리에서』가 있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10대 남학생들간의 관계와 그들의 특성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아낸 훌륭한 추리 소설이다.

 

  그러나 『우아한 거짓말』은 10대 여학생들의 관계를 그려낸 작품이며, 학생의 죽음을 밝힌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패턴을 보이지만 죽은 아이인 천지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줌으로써 당시 사건들에 대한 그녀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껴보게 한다는 면에서 기존의 추리 소설들과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죽은 여학생 천지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무심하고 털털한 성격에 천지의 우울증을 알아채지 못했다. 천지의 어머니는 천지와 만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자매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느라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언니 만지와 어머니는 천지를 몹시 사랑했고, 그들 나름대로 천지를 신경 써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소중한 가족 천지가 털 뭉치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만지는 이 사회가 널 죽였다, 식의 거창하고 고상한 변명을 동생에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야 이 망할 사회를 교양 있게 통탄하며 천지를 비운의 아이로 본다 할지라도, 자신은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미련한 언니였다.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중략) '왜?'를 밝히는 건, 만지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다.

p.51

 

 천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언니 만지는 적극적으로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천지를 꿉꿉한 마음 속의 어둠에 갇히게 만든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골적으로 따돌리지는 않았으나 교묘한 방법으로 무시하고 이유 없이 비방하며 천지를 끌어내리던 아이, 천지를 왕따로 만들기 위한 주변 아이들의 교묘한 수법에서 벗어나라며 다가와 이야기를 건넸지만 구경꾼으로 머무르며 그녀를 내려다보는 우월한 입장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았던 아이, 그리고 천지를 10대들의 유희거리로 삼아 희생양으로 만들었던 다른 아이들.

 

그리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천지의 털 뭉치들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와 그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듯 했다.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관계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성들은 그들의 책임일 뿐일까? 『우아한 거짓말』에서 들려주는 천지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던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들은 그들 또한 희생양이었음을 밝혀준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한 소녀에게 한 '사소한' 행동들은 그들에게 뼈 아픈 죄책감으로 남아 큰 상처를 주었고, 한 소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불쌍해서 어떻게 그래요...... "

 "너 말 참 우아하게 한다. 불쌍해서 못 했다고? 말은 못하면서 행동은 어떻게 했니? 천지가 떠날 정도로 지독하게? 그냥 조금 더 가지고 놀고 싶었어요, 그게 네 진심 아냐?"

 "천지가 그 정도일 줄 정말 몰랐어요. 너무 똑똑했잖아요."

 "나도 네가 그 정도일 줄 몰랐다. 너무 천진했잖아. "

p.251

 

 성인이 되기 위한 과도기 과정을 거치면서 불안정하고 혼란의 시기를 겪는 10대들, 그리고 그 10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이야기 흐름 중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설정이 엿보이기도 하고, 작가의 목소리가 덧입혀진 나머지 10대들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살아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천지와 같은 수많은 아이들이 아픈 목숨을 자신 스스로 거두어가는 이 슬픈 모습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들이 꼭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하는 소설이었다.

 

2차원 평면에 떨어진 점과 같이 아주 작은 이 글자들이 구축할 수 있는 세계의 가능성은 놀랄 만큼 무한하다. 그리고 몇몇 뛰어난 작가들은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생동감 넘치게 효과적으로 담아 전달하는데, 때때로 그러한 작품들을 읽는 이들은 감히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 너머를 보았다 생각하며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촘촘하고 찐득하게 달라붙는 바로 이 『속죄』 속 놀라운 소설 세계가 나에게는 그랬다.

 

 

 『속죄』가 지닌 이야기 구조와 아주 유사한 것 가운데 <더 헌터>라는 영화가 있다. <더 헌터>에서는너무 어리기에 미성숙했던 여자아이가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여 마음을 표현했는데 어린 아이의 마음을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선생님의 미숙한 행동에 마음에 응어리가 지고, 정말이지 아주 사소한 사건에 의해 그가 자신을 추행했다고 거짓 주장을 하게 된다. 그 말이 주는 파문을 못 이긴 주변 어른들의, 마치 부추기는 듯한 강박적인 행동들에 의해서 그 아이는 진짜 그 거짓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믿게 되고 그 남자 선생님은 마을에서 거의 모든 사회적인 위치와 기본적인 것들을 다 잃게 되는 모습을 그려가는 영화이다.

 

 

 그러나 <더 헌터>가 직접적인 ‘말’과 사회 집단의 행동들에 보다 더 주목하였다면, 『속죄』는 미묘한 악함과 그 죄의 무게에 대해 다루면서 그 배경이 되는 밑바탕에 존재하는 어느 여자아이의 자기중심적인 공상을 깊이 살펴보게 한다. 그 어린 소녀 브리오니는 작가를 꿈꾸는 특유의 공상과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인정받고 싶은 치기로 인해, 그 사실을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거짓 증언을 내세워 한 젊은이의 인생을 처참한 시체들이 즐비한 전쟁터 한가운데로 끌어 내린다.

 

 

 그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묘사와 구조는 정말 치열하고 생생하기 때문에, 이미 읽고 있는 소설의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실제 사건들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 브리오니의 공상으로 재구성된 소설 속 또 다른 현실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브리오니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고 그 얄미움을 견뎌야 한다는 대가를 덧붙인다. 그러나 동시에 한편으로 그만큼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모든 사건들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없이 뒤바뀔 수 있다. 너무나 복잡한 현실 세상에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사건이 놓인 배경이나 주변 인물들의 이해 관계와 얽혀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소하게도 넘어갈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그러한 작은 틈 사이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낳았다.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비겁함을 숨길 수는 없다.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ㅡ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ㅡ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그녀 인생의 척추였다.

 -p.449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브리오니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녀의 공상과 어린 시절에 할 수 있었던 사소한 거짓말들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녀의 잘못까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그리고 ‘영원히’ 용서할 수 없을 거라는 두 남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과연 그녀가 그것으로 ‘속죄’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소설을 통해 내어놓았다는 이 ‘속죄’도 사실 아직도 극복할 수 없는 유년기 시절 공상의 연장선상은 아니었을까?

 

 

입체적으로 만들어지는 인물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지게 했던 이언 맥큐언의 놀라운 작가적인 능력에 감탄했고, 그의 작품 『속죄』는 읽는 이들을 끌어당기면서 시대적인 배경의 무게로 묵직하게 자리잡고서 음미하며 깊이 빠져들 수 있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는 사람의 삶을 현실적으로 고스란히 담아내는 리얼리즘적 성격도 지니고 있지만, 때로 현실과는 조금 먼 상상 속의 환상적인 요소들을 담아내기도 한다. 남미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마르케스의 소설 중 이 『백년의 고독』은 소설의 리얼리즘적 성격과 환상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춘 독특한 문학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 담겨 있는 부엔디노 가문의 거대한 서사시는 백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쳐야 했던 사회적인 사건들과 함께한다. 따라서 개인적인 가족들간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시대의 큰 사건들에 얽힌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이어진다. 예를 들어, 아우렐리아 부엔디노 대령이 장군이 되어 부당한 사회에 맞서게 되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 부엔디노 가문의 개인적인 가족사들이 덧붙여지는 셈이다.

 

 특히 부엔디노 가문은 후손들이 선대의 이름을 번갈아 가며 받는데, 그 이름의 특성에 따라 그 인물의 운명이 결정되는 모습을 보인다. 부엔디노 가문은 가족 구성원에서 혼인하여 아이를 갖는 근친 행위를 보이는데, 사실 마르케스가 속한 라틴 문화에서는 이러한 근친 혼인 풍습이 실제로 존재했다. 소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엔디노 가문의 비극이 거듭된 근친 속에서 양산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한 생각이 들게하는 것은 바로 부엔디노 가문의 역사를 온전히 지켜보았다 할 수 있는 어머니 우르술라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엔디노가 사촌 지간이라 볼 수 있는 우르술라에게 청혼했을 때, 우르술라는 피가 섞인 사람들이 결혼하면 그 아이가 '돼지 꼬리'가 달린 채 태어나게 된다며 몹시 두려워하면서 그를 밀어냈다. 후에도 근친 혼인 풍습을 두려워하며 기피하게 되는데 그녀의 현명한 우려와는 달리 후손들은 그녀의 말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세대가 거듭되어 근친 혼인이 이어질수록, 아우렐리아 부엔디노 대령과 같은 현명한 인물들은 줄어들고 문제를 심화시키는 후손들이 이어지는 것도 근친 혼인을 충분히 꺼리게 만들었을 법한데 이 부엔디노 가문은 독특하게도 혈통 속에 근친 혼인 풍습에 대한 운명적인 끌림이라도 존재하는지 비참한 최후를 맞는 마지막 후손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아마 마르케스가 살았던 라틴 문화 속 근친 혼인 풍습도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고, 부엔디노 가문의 비극을 통해 간접적인 경고와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부엔디노 대령의 저항 정신이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명예를 쫓아 이념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의 속물적인 생각을 발견하고 나서는 모든 것을 그만두는 결의를 보여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그정도로 진행되었을 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상황에 휘말려 끌려가기 쉬운데 그것을 중단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노 대령만큼은 가문의 이름에 대한 운명 속에서 비껴나 자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유일한 개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진짜 생각을 진지하게 좇을 수 있는 사색 속에서 죽지 않고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는 운명적인 상황들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부엔디노 가문의 비극적인 최후를 확인하면서 마지막 후손이 신비한 연금술사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발견하는 것은 꽤나 극적인 사건이다. 자신의 운명을 비롯해 모든 부엔디노 가문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 양피지 속에 다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었던 일이었다, 허구적인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쥐고 있는 거대한 힘을 발견한다는 것은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을 책 속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었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현실로 일어난다면 어떨까?

 

 우리의 삶 속에서 운명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우리의 삶은 정해지지 않고 온전히 우리가 선택하며 만들어가는 삶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양극화가 심화되고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시들어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고 개인은 그 거대한 운명의 힘 앞에서 무력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개인은 자유로워야 하며, 그러하기에 자신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어야만 한다. 제도라는 것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속에서 두 번 다시 부엔디노 가문의 일과 같은 일은 되풀이 되지 않다고 했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것이 변화되어야 하고 그것을 꿈꾸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르케스는 무슨 생각을 담아 전하고 싶어했을까를 생각해보았고, 한편으로 위대한 작가가 목숨을 잃어 안타까웠기도 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는 갔지만 남은 그의 빛나는 작품들을 틈틈이 읽어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