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이야기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 구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이다. 이 노래에서 전해지듯이 당시 커피는 사람들과 더불어 마시는 음료요, 만남의 매개였다. 문학 여대생부터 장발에 도끼빗을 뒷주머니에 찬 멋쟁이 청년들, 멋드러진 팝송을 선곡해주던 DJ, 계란 동동 띄운 모닝커피까지. 다방은 도시의 오아시스요, 문화공간이었다. 요즘은 어떨까? 9시에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믹스를 타서 마신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회사 근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대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가끔은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주문한다. 이 시간의 커피전문점은 늘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부터 휘핑크림이 듬뿍 올려진 카페모카까지. 회사로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모두 커피컵이 들려있다. 저녁 약속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스타벅스(일명 별다방)로 향한다. 커피를 주문하면 점원이 순서를 알려주는 호출기를 건네준다.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면 된다. “드르륵” 커피를 찾아가라는 신호다. 커피는 이제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다.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하루에 소비되는 커피는 약 25억 잔. 세계 인구 3명 중 2명은 매일 커피를 마신다. 한국인은 1년에 약 350잔의 커피를 마신다.
‘왕의 음료’, 커피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의 양치기가 커피를 발견한 지 약 1,300여년 뒤다. 커피에 대한 최초 기록은 우리나라 최초 미국 유학생인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1895년)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길준은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사람들도 커피를 마신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마니아는 고종이다.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맛보았다. 고종은 환궁 후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커피를 즐겼다.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었던 독일 여인 손탁(웨벨 러시아 공사의 처형)은 1902년 중구 정동 29번지, 지금의 창덕여중 정문 앞 184평의 대지에 손탁 호텔을 세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다. 일제 강점 직후에는 일본인들이 속속 서양식 다방을 열었다. 이 시기 커피는 일본인과 특수 계층들만이 맛볼 수 있는 귀한 음료였다.
新청년들, 커피에 취하다
1920~30년대 커피는 모너니즘의 상징이었다. 1927년 문을 연 ‘카카듀’ 다방은 예술가들을 커피 향기에 취하게 했다. 종로 관훈동에 있는 ‘카카듀’의 주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씨다. 이곳은 해외 문학파의 아지트로, 예술가들에게 ‘다방 취미’라는 문화를 퍼뜨렸다.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신청년들(모던보이와 모던걸)에게는 이상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1930년 대 들어서는 문인들이 커피를 팔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시인 이상(李箱)이다. 이상은 그의 소설에 등장했던 기생 금홍과 ‘제비다방’을 운영했다. 극작가 유치진은 소공동에서 다방 ‘프라타너스’를 열어 여러 문학행사를 벌였다. 대다수 서민들은 여전히 커피를 접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커피는 해방을 맞으면서 일반에게 확산된다. 1948년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다.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가 주목받았다. 당시 커피는 피곤한 군인의 잠을 깨우고, 힘을 북돋워주는 역할을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커피는 ‘신기한 것’ 그 자체였다.
계란 동동 ‘모닝커피’와 ‘커피믹스’
1960년 초 커피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대로 가나와 함께 최빈국에 속했던 때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커피를 사실상 금지했다. 수입에만 의존하는 커피가 ‘사치스럽다’는 이유에서다. 다방에서는 몰래 커피를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커피 대용품으로 국산 커피가 나왔지만 맛이 없어 외면 당했고, 커피는 ‘귀물 중에 귀물’이 됐다. 이 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인만의 커피’가 등장한다. 한국식 ‘모닝커피’다. 뜨거운 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넣어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휘휘 저어마시는 독특한 풍경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었다. 1970년에는 국산 브랜드 커피가 탄생한다. 9월 동서식품은 미국과 합작해 국내 최초로 ‘맥스웰하우스’라는 인스턴트 커피를 내놨다. 사람들은 이제 다방이 아니라 집에서도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다. 대중적인 커피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국내 커피시장의 99%를 장악한 동서식품은 1976년 또 하나의 역사적인 커피를 선보인다. 세계 최초로 커피와 크림, 설탕이 섞인 ‘커피믹스’다. 이후 ‘커피믹스’는 한국인의 삶에 깊게 자리잡는다. 국산 브랜드 커피와 함께 다방도 변화를 꾀한다. 이 같은 변화는 ‘미인계 다방’과 ‘음악 전문 다방’ 등으로 대표된다. 특히 음악다방은 정치와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청년들에게 탈출구 역할을 했다. 장발과 청바지, 리퀘스트 뮤직으로 대변되는 음악다방은 1970년대 청년문화의 대표주자였다.
다방, 자판기와 경쟁하다
1978년은 한국의 커피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다. 4월 정부는 커피 수입의 자유화를 최종확정했다. 78년 1,400만 달러였던 커피 수입액은 이듬해 3,10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커피 자동판매기가 첫 선을 보인 해이기도 하다. 커피 자판기는 1979년까지 전국에 4,000여대가 설치됐고, 하루에 100만 잔 이상을 판매했다. 이후 1985년까지 15만대가 보급됐다. 커피 자판기는 다방에 영향을 미쳤다. 다방업자들은 생존경쟁을 벌이기 위해 진화했다. 노년층을 공략한 다방이 생겼고, 변두리 다방들은 카드를 빼들었다. 소위 말하는 티켓 다방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원두커피가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1993년 다방 외에 여타업종에서도 커피를 팔 수 있게 되면서 커피 인구는 급증세를 보였다. 반면 서민의 대화장소이자 성인의 오락공간이었던 다방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IMF 외환 위기는 커피 시장과 다방에 타격을 미쳤다. IMF 이전 3만개에 달했던 다방은 이후 9천여개로 쪼그라들었다. 도시에서 쫓겨난 다방은 농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99년, 미국의 대표적 커피체인 스타벅스가 한국에 상륙한다.
‘별다방’ 10년, 커피문화를 바꾸다
스타벅스는 다방과 커피믹스로 대표되던 한국의 커피문화를 바꿨다. 1999년 7월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연 스타벅스는 10년 만에 매장을 299개로 늘렸다.(2009년8월, 300호점 개점). 매출은 첫해 86억 원에서 지난해 1,710억 원으로 20배 증가했다. 스타벅스는 국내 커피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에스프레소와 테이크아웃 커피문화가 활성화됐다. 에스프레소 커피 시장은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외국계 체인과 엔젤리너스, 할리스 등 국내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한편 스타벅스는 젊은 여성의 과소비 행태를 꼬집는 ‘된장녀’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왠만한 식사 한 끼값과 맞먹는 스타벅스 커피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던 것. 그러나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은 1970년대 음악다방처럼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승승장구한다. 앉아서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걸으면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늘었고, 커피전문점을 사무실로 애용하는 ‘코피스족(COFFICE族, coffee+office)’,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글루미족(gloomy族)’ 등도 출현했다. 인스턴트 커피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한국의 커피시장 규모는 세계 11위. 인스턴트 커피만 보면 세계 1위 수준이다. 이중 커피믹스가 전체 커피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여성의 인권 신장’과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초고속 압축성장’의 흔적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공정무역 커피를 아시나요?
세계인이 한 해 동안 마시는 커피는 25억 잔. 어마어마한 양이다. 커피는 베트남과 에티오피아등 저개발국가에서 주로 재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커피농가는 모두 부자일까? 안타깝게도 커피 재배 농민들이 손에 쥐는 돈은 한 잔당 0.5%에 불과하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을 살펴보면 유통의 마지막 단계인 소매점이 25%를 가진다. 10%는 수출업자가 가지고, 세계 커피 무역의 75%를 지배하는 네슬레 등 거대 다국적기업이 55%를 가져간다.<한겨레 칼럼- 공정무역이란 무엇인가?中, 2009.05.17> 이 같은 세태 속에서 공정무역(Fair Trade)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정무역은 시장에서 생산자가 불합리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탄생했다. 제3세계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급하고 만든 물건을 사주자는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운동이다. 대표적인 품목이 바로 커피다. 1950년대 후반 최초로 공정무역을 시작한 영국의 NGO단체 옥스팜(Oxfam)에 따르면, 저개발국 공정무역 1% 증가는 정부개발원조(ODA)의 5배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름다운가게’가 2006년부터 공정무역 커피를 팔고 있다. 네팔과 페루 등 제3세계 농민들이 재배한 커피를 정당한 가격에 사들여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또 커피 매출의 11%를 네팔과 페루 학생들을 위한 배움의 기회로 제공하고 있다. 산간 오지 농부를 위한 차량 지원과 커피 묘목 보급사업, 학교 건축 및 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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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정치학
http://www.datanews.co.kr/site/datanews/DTWork.asp?itemIDT=1002910&aID=20090804180738937
*written by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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