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

1. 옛날의 그집

2.어머니

3.가을

4.까치설

박경리님에 대해는 아는 것이- 굳이 딱 집어내어 얘기 하자면 아는 작품이라곤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 정도가 다일것인데 5월 5일 타계하신 분의 이 유고 시집을 접했을때 처음 든 어리석은 생각은 시집으로 출판될 것을 이미 아셨을까, 혹은 허락을 하셨을까.

책의 서문에는 따님이신 김영주 님의 글이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거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수도 있으나, 총명하지 못한 궁금증이 생겼다.

시종 담담한 필체로 과연 시를 이렇게나 이야기 처럼 다정히도 읽힐 수 있구나.

그저 낮게 흥얼 거리며 노래하듯이 지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시로 쓰신 이분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도 못한 인간이 유고시집을 읽고서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것이 못내 마음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잔잔하고도 살뜰하게 지난 삶을 돌아보며 한땀 한땀 바느질 하듯이 시를 쓰셨을 박경리님이 마치 화면으로 보이는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었는데, 수많은 생각과 뜻의 조각들을 한땀 한땀 바느질해 마침내 둘은 없는 조각보를 만들어 내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구절구절 귀찮은 설명 하지 않아도 절제되고 단단하게 뿌리 박힌 듯한 시들은 외려 비어보이지 않으고 어린시절과 어머니, 친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아직은 젊으신 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지나 까치설에 이르면 세상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부터 올곧은 신념과 확신에 찬 사람의 시가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또 '체' 하는구나 하고 배알이 뒤틀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체' 는 느껴지지 않으니 훈계의 어조보다는 살아보니 그렇더라...하는 깨달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예전 어느 작가의 자전적소설 이라는 책을 읽었을때는 표현은'난 이렇게 살았어, 이런 환경, 우리집은 이랬고 난 이랬어' 하는 투였지만 실로 내게는 모든 주옥은 사라지고 잘난체 있는체 좋은체 하는 것으로만 기억되었던 적이 있었다.

십대를 지나고 이십대를 지나고 삼십대가 되니 생각이 철 없지많은 않을테니 좀 더 이상적인 인간에 가까워졌어야 옳은일이련만 세월이 흐른다고 지금이 지난 그때보다 현명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볼때 즈음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라는 말을 나는 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어떤이라도 시집을 접하게 된다면 마음이 알수 없는, 혹은 알고 있는 감정의 물결로 잔잔히 출렁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9편의 시 중 어느 하나 물결치며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시가 없지만 여행이라는 시는 아주 오랫동안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부끄럽고 소심한 공감과 함께......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때도

설거지를 할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을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여행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