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zard of Earthsea

학교 도서관에 신청했다가 한번 거부당했던, 그 이유인즉슨 '환타지물은 신청받지 않습니다.'
옘병할 도서관지기 같으니라구. 정말 그도 독서를 하는지 의심스럽더라. 이거이 나름 대한민국 명문대학의 수준이라니. 개탄할 일이었다. 결국 거금 25,000원을 들여 인터파크에서 세권을 모두 구매했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 때 책을 사둔 덕분에 벌써 두 번째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만, 그 당시에는 참 가슴이 아팠더랬다. 요즘도 이 책을 읽노라면 내가 살아가는 삶이 부끄러워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삶의 고단함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여유를 갖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것을.'

이 책에서처럼 삶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나이 많은 사람들, 현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을 잘 표현했던 모습들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엄하면서도 따뜻한, 그리고 강한... 너무나 강한 사람.

1권 '어스시의 마법사'는 르귄이 대략 40살 정도에 집필한 책으로, 마흔은 되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성장을 너무 이상적으로 그린 글이었다. 글 속에서는 마법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었고, 아이에서 어른이 그리고 현자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내 안의 어둠을 알고, 도망쳤으며, 나를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딛고, 글에서는 '이름을 안다' 라는 너무나 멋진 표현을 사용한다, 다시 나로 비롯된 어둠과 맞서는 모습. 상처받았지만 얼굴에 깊은 흉터를 간직한 채 따뜻하고 굳건한 미소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들이 이 글에는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직까지 이렇게나 한 인간의 성장을 멋드러진 사건과 문체로 표현해낸 글은 본 적이 없음이다.

3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쓰여진 '어스시의 마법사'는 르귄 그녀의 성장만큼으니 많은 걸 담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자꾸 돌아보게 된다. 내가 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불러야 하는 이름들은 무엇인가하고...

개인적으로 20년 전쯤 웅진출판사에서 동화책 용으로 출판된 어스시의 마법사의 번역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이유인즉슨 게드의 이름은 황금가지 판에서는 '새매' 라고 불리우나 웅진 판에서는 영어 이름 그대로 '스페로우 호크' 라고 불리운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이 이름을 발음 할 때 입에 씹히는 어감이 너무나 좋았다. 약간 바람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시작해 'ㅋ'라는 거센소리 (맞나 ... ㅡㅡ 국어를 배운지 너무 오래되서) 로 끝나는 자연스러운 느낌. 솔직히 '새매' 는 정말 아웃이다. 'Legend of Earthsea' 라는 1,2권을 버무려 놓은 영화에서, 영화는 거진 투 스트라익 노볼 수준이었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이름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테나','오지언'... ,'스페로우 호크'...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황금가지에서도 번역된 이름옆에 괄호치고 영어이름도 추가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참 궁금하다. 예를 들어 1권에서 등장하는 게드의 친구 '들콩' 의 이름은 무엇인지... 3권에서 등장하는 '도박' (Gamble 이라고 예상)의 이름은 무엇인지 등등... 만약 gamble 이면 '도박'이라는 번역은 너무 의미에만 충실하지 않은가... 커흑 솔직히 '겜블'이라고 한글로 쓰는게 한 7.5 배쯤 나아보이는 데 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최초 그에게 명성을 선사한 ’이기적 유전자’ 이후 30년이 지난 뒤 종교, 특히 미국 기독교의 부조리와 광기에 환멸을 느끼며 작가는 종교를 부정하는 글을 썼다. 이 글은 미국 내부 종교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도킨스는 ’악마의 사도’ (재밌게도 이 명칭은 실제 도킨스가 또 다른 저서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라는 닉네임을 선물했다.

전반적인 내용은 종교의 비이성적인 논의들과 종교를 통해서 자행되는 광기에 가득찬 폭력에 대한 고발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담긴 과학적인 논리정연함과 새로운 사상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고른 사람들에게는 ’만들어진 신’은 아마도 실망을 안겨 줄 것이다. 

하지만  25년 동안 기독교를 믿어왔고, 다시 그 후 5년 만에 종교에 회의를 느껴 무신론자가 된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애매하고 모호했던 생각들과 사상들을 좀더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 도킨스는 과학을 통해서 성경을 바라보며, 그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해답들을 통해서 기독교가 사람들-특히 타종교 혹은 타인종들-에게 가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에 부당성을 설파한다. 그러나 아마도 이 글이 우리 나라에서 갖는 영향력은 다른 종교를 문화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나라에 비해서는 크지 않으리라.

이 글을 읽으면서 도킨스 답지 않게 매우 감정적이고 공격적으로 쓰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종교는 마치 타파해야 하는 ’적’ 처럼 느껴진다. 그 ’적’을 논함에 있어서 약간은 논리적 비약이 쓰이기도 하고, 통계의 맹점을 이용한 과도한 일반화 원칙을 적용하기도 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보여졌던 그의 명석함과 논리성 그리고 문체의 깔끔함이 많이 희석되어졌음을 알게 된다. 이 명석한 두뇌를 가진 학자를 이렇게까지나 공격적으로 만들어버린 미국의 기독교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난 무교야’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우리네 문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일 것이다.

얼마전 읽은 ’아서뮐러’의 ’세일럼의 마녀들’ 거기서 느껴졌던 이해할 수 없는 종교의 폭력성과 그것을 별다른 저항 없이 너무나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일반 대중들에게서 받았던 어색함, 그것이 나와 도킨스의 차이일 것이다.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

 ’파멸의 미’ 책 머릿말에 이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서 눈에 밖혀버린 예상외의 단어 둘이다.  ’무뢰파 문학’이라는 생소한 단어도 시선을 끌었다. 보통 한국의 작가들이나 독일의 작가들(물론 필자의 독서 내력은 매우 얕다.)의 글들에서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인간의 나약함에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고, 자신의 연약함에 강하지 못함에 소리치지만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파멸’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글을 썼다. 쉽게 희망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어설프게 삶을 채색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겐 별로 무겁지만은 않게 느껴진건 왜일까.

 그는 조용히 읊조린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나약함에 두려워 했던 인간들을 그리고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사람들을. 내 안에도 잠들어 있던 두려움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두려움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과 세상에 대한 공포가. 그리고 어느덧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서 그 모두를 이해하지 않고 익숙해짐에 따라 묻어두었던 사실이. 그래서였을까. 그 두려움의 끝을 살다간 ’오조’의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담담할 수 있었음은.

 일본 문학은 종종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감수성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호기심인지, 난 그들의 책을 읽고 있다.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