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홉은 소설 보다는 희곡으로 훨씬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그의 4대 비극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과 글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이 매우 뛰어나다. 시대와 장소가 다른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무대 위에서 공연되고 있는 것만 봐도 체홉의 이야기들이 인간의 공통적인 어떤 감성들을 충분히 자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 책이 희곡 단편집인 줄 알았다. 그의 희곡은 장편뿐만 아니라 많은 단편들도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았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온 상자의 포장을 풀어봤더니, 단편 소설집이었다는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일단 집에 도착한 따끈하고 반짝이는 책을 들었다. 책에대한 조금의 실망과 머쓱함을 가지고 겉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맨 뒤를 펼처 역자 후기를 읽고, 아 체홉의 단편 소설들이 이러한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었군 이란 것을 알고 난 후 처음으로 돌아와 첫 페이지를 넘겼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지나갈 때마다. 역자 후기에서 나왔던 ’천재적인 이야기꾼’ 이라는 체홉에 대한 표현이 새삼 떠올랐다.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인간에 대한 어떤 고민이 담겨 있는 이야기, 혹은 작가가 느꼈던 짧은 순간의 단상들에 대한 이야기. 그의 글에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재밌는 이야기꾼은 이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도 매우 능숙해야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가 무덤덤한 말들을 통해서 뱉어지면 차갑게 식은 국처럼 식욕이 당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도 체홉은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는 다음 순간을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매번 흘러갔고, 그 끝은 매번 신선했다.

안톤체홉은 장수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40대 중반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들 모두가 물론 그가 죽기전에 쓰여졌을 것이고, 다시 말하면 그가 쓴 800 여편의 장,단편 소설 및 희곡들이 약 20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쓰여졌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에서 던져 놓는 이야기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맨 마지막에 소개되는 '주교'라는 작품이다. 인간의 존재의 가벼움, 죽음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잊혀지는 인간의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체홉은 매우 시니컬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존재의 가벼움과 그 의미에 대한 고민들, 그것이 종교와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를 한 주교의 눈을 통해서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이렇게 쉽게 다루기 힘든 이야기를 인상깊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참 존경스럽다.

짬짬이 시간내어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문학 사상 최고의 악녀 메데이아.
그것은 진정 사실일까? 역사는 남겨진 자 혹은 승리한 자에 의해서 다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메데이아,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남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한다. 그 안에서, 왜곡되고 뒤틀린 사람들의 욕망 속에서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를 작가는 다시 두꺼운 무덤을 파헤쳐 끄집어 내었다.

고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접해보진 못했다. 책의 서문과 작가의 말에서 설명되어진 메데이아를 보았을 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동생을 살해하고,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다리 사이에서 들어올린 아이를 죽이고, 모든 세상을 저주하고 그리고 군중에 의해서 추방당했던 악녀. 이것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메데이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묻는다. 과연 그것이 진정 사실일까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내가 아닌 이 사회를 위해서’ 이런 말들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족속들이 있다. 그 행위의 잔인성과 광폭함이 우리의 상식을 얼마만큼이나 벗어날 수 있는지 인간의 역사는 그것을 증명한다. 맹신 혹은 광신 어떤 대상이나 신념에 대한 그러한 자세는 인간에게 마치 다른 인간의 삶과 생사여탈의 권한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독특한 방식의 서술 형식으로 이 이야기를 읊어준다. 처음 메데이아가 말을 시작한다. 자신이 왜 고향을 떠나야 했는지, 자신이 만난 남자 이아손이 처음 만났을 때는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아손이 말을 시작한다. 메데이아에 대한 그가 본 그녀의 이야기를. 그 뒤로 아가메다가 말을 잇는다. 그녀의 질투와 증오에 휩싸인 메데이아에 대한 감정들을. 이렇듯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관점에서 메데이아가 겪었던 큰 이야기가 흐르고, 그리고 그들이 보았던 메데이아가 물 위로 떠오른다. 그녀도 그냥 여자였을 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서 행복을 찾았으며, 아이를 갖고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여자를 그린다. 하지만 너무나 시대를 앞서 갔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무지와 불의에 저항 할 수밖에 없었던 그 피에 흐르는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기린다.


페미니즘의 말을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어린 시절 페미니즘 하면 맨날 TV 에 나와 ’남자는 군대가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 대신 여자는 애를 난다’라고 외쳐대던 아줌마들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그걸 보면서 아 무서운 여자들... 이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페미니즘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처음 ’어슐러 르귄’의 [어둠의 왼손]이란 작품을 읽고, 내가 생각했던 페미니즘에 대한 근본부터 뒤흔들렸다. 그 뒤 몇몇 작가의 글들은 나에게 ’여성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크리스타 볼프’ 그녀의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이 글에서도 좋은 페미니즘의 냄새(?)를 맡았다.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볼 때 많은 것들은 변한다. 심지어는 그 의미와 목적까지도. 이 글에서 그녀는 메데이아를 그렇게 바꾸어 놓았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 글쎄.... 그건 평등의 문제가 아닌 게 아닐까? 그냥 다름의 문제가 아닐런지.... 그냥 다른 것 사이에서 굳이 평등을 논할 수 있는 것인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하면 그냥 되는 것일 뿐인데....

너무 앞서가는 인식과 상식을 소유했던 메데이아는 결국 그 집단에서 추방당한다.
결국, 단지, 다른 것일 뿐이었는데...

성숙하지 못한 사회일 수록 다름은 인정 받지 못한다.
메데이아는 그 다름이 인정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격하게 저항하다 스러진 한 '여자'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프랑스의 부조리 희곡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그의 대표작 [대머리 여가수] .

이 희곡집에는 [대머리 여가수] 말고도 그의 초기작 [수업],[의자] 이 두 편의 희곡이 더 수록되어 있다.
부조리극 하면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하곤 한다. 그것은 전혀 말도 안되고 이해되지도 않는 단지 ’어려운’연극일 뿐이라고, 하지만 부조리극의 탄생배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조리극은 부조리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일반 연극에서 보여지는 드라마는 실제 있을 법한 극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막상 그 현실같은 이야기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일들이 실제 우리 곁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부조리극은 그 보여지는 표현이나 단어들이 우리들에게 익숙치 않은 모양을 띠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이다. 부조리극은 다른 종류의 연극들 보다 더욱 깊게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책 속에서도 우리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머리 여가수]에서 등장하는 나와 너의 관계, 내가 진정 너를 알고 있는 것인지. 너 또한 나를 알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서로를 정말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으며, 이해하고 있는지. 말을 해체하고 단어를 치환함으로써 우리의 관계가 지금가지 우리가 알고 있던 관계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번 이해와 소통에서 절망하고, 말의 한계에 부딪치고 그럼으로써 다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현실을 이 희곡은 담고 있다.

두번째 작품인 [수업]에서도 그러한 현실에서의 부조리는 우리에게 보여진다. 권위의, 권위에 의한 횡포. 그 권위에 굴복하고 복종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과 그 인간을 휘두르고 이용하는 권위, 그리고 권력.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과 그 어긋나는 과오 속에서도 다시 또 되풀이 되는 순환.  이것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고, 매번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영원한 과제처럼 주어지는 무엇이다.

마지막 이야기 [의자]는 가상의 관계들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관계들, 그리고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가깝다고 느끼는 실제 거기 있다고 느끼는 관계들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내가 상상하지 않고도 보여지는가? 이 희곡은 이런 물음 속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확고한 것처럼 느껴지는 관계가 얼마나 우리의 주관적인 생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인지 [의자]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부조리극은 그 표현의 형식이 조금 낯설고 은유나 상징의 사용이 조금 많은 편이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고, 때문에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연출가 혹은 작가의 관념적이기만 한 생각의 단층인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어떤 극보다 현실에 대한, 실제 우리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보다는 충격이 조금 덜 했지만, 작가의 독특한 생각과 색깔이 인상 깊은 글이었다. 
그리고 번역하신 오세곤씨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희곡은 소설과는 다르게 작품의 문학적인 의미로써만이 아니라 무대에 올려질 것을 가정해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때문이 말이나 어미, 단어의 선택들에 있어서 문어체적인 성격 뿐만아니라 구어체적인 부분도 신경써야 한다. 이런 면에 있어서 근래에 나온 민음사의 판본은 번역자의 세심함이 번역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