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는 국문과 친구가 술을 거나하게 먹더니 그랬더랬다.

박완서씨가 쓴 글중에 [그 남자네 집] 이게 최고라고.
내가 [미망] 보다 나아? 그랬더니, 읽어보면 그냥 알게 된다라고. 그랬더랬다.
왠지 저 말이 너무나 건방져보여서 책을 사게 되었더랬다.

박완서씨의 이름은 그 전에도 종종 들어왔었다. 그래서 [싱아...]가 내 주변에서 보였을 때 얼른 가져와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싱아...]를 읽고나서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왜 이 작가의 이름이 이렇게 유명하지라는 의문을 갖을 정도로. 그리고 우연히 집 한 구석에서 누렇게 변한 [미망]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전에 약간의 실망이 있었으므로. 
그러나 [미망]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아 이것이 바로 한국 근대사인가라는 이해.
읽고나서 느꼈던 것은 이것이 이 작가의 전성기 때의 작품인가라는 추측.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박완서씨의 글은 새로웠다. 너무나 한국적인, 그리고 여성적인 글이라는 표현이 먼저 입밖으로 튀어나온다. 한 여성의 추억을 통해서 우리는 50년 전으로 여행을 떠난다. 전쟁이 끝난 후 시끌벅적했던 동대문시장 한 복판, 그녀의 뒤를 따라 걷는다. 이제 전쟁을 겪은 세대보다 겪지 않은 세대가 훨씬 많은 사회가 왔다. 그리고 여성이 어떠해야 한다라는 엄격한 규정들도 점차 사라져왔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 한 여성이 남자를 사랑했고, 남자와 결혼을 한 이야기.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녀의 마음 속은 어느 순간도 고요하지 않았던, 그 순간들. 아마 남자로 태어난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그 감정의 오묘한 순간들이 책을 읽다보면 내 옆을 스쳐지나간다.

참 재미났던 건. 박완서씨는 책 속에서 정말 담담하게 그 여성의 삶을 이야기 한다. 큰 기복없이 조용조용 그녀가 살았던 이야기와 그녀가 사랑했던 순간의 환상들을 시끄럽지 않게 가만가만 풀어놓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읽는 난 왜 조근조근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 들리고 아래로 꺼지고, 옆으로 구르는 등 오만 변화를 겪어야 했는지 참 재미난 일이다. 그녀의 삶은 이미 지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음과 그 젊음이 원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아마 그것을 읽는 난 그것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던 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막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보다 더욱 수선을 떨었던 것이리라.

이 책을 읽는 중에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마 어머니도 이 글의 주인공과 비슷한 시대의 여성이었으리라. 당신의 삶도 이러했을까? 내가 책을 사왔을 때 어머니는 책을 먼저 읽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니, 바로 다음날 다시 내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으셨다. 아마 하루면 당신께는 충분했으니라 당신의 꿈과 옛 사랑과 추억을 되살리시기에는... 아마 어머니껜 그런 책이었을 것이다.

난 그냥 뭐랄까... 새삼 내 삶의 고요가 조금 실증이 나기 시작했다 정도.

여전히 툭탁거리는 듯한 유쾌함으로 '더좀비스'는 나를 찾아왔다. 일본 학원만화를 읽는 듯한 재미를 주는 가네시로 가즈키와 그의 좀비스.

이교도들의 춤

'무슨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그의 말처럼 춤을 추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은 재밌다.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단순함과 시원스러움은 다음 이야기가 매번 궁금하게 만든다. 자 이번 이야기에서 우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중년의 샐러리맨 아저씨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주시려나, 그 궁금증에 책을 펼친다.

역자는 가즈키의 소설을 두고 중심을 침범하는 주변이라고 칭했다. 중심의 논리 그것을 정면에서 부딪혀서 부서뜨리는 주변의 논리로 읽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거라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권선징악이라는 말을 현실 속에서 점점 잊어간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새로운 제도와 권위에 익숙해진다. 그 제도와 권위는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들어왔던 이상과는 별로 가깝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는 그 울타리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조차 무서워하면서 조용히 그리고 순하게 살아간다.

가즈키는 일탈을 꿈꾼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지니,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라고 그의 글은 말한다. 그리고 ’주변 1미터의 울타리를 한번 벗어나보지 않겠어?’ 라고 묻고 있는 듯하다.

딸을 지키고 싶은 숭고한 아버지의 마음?
그냥 제도 속에서 무력하게 살아야 하는 한 남자의 강해지고픈 욕망일 것이다. 제도나 권위에 기대서가 아니라 자신의 두 팔로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지키고 싶어하는 단순한 본능. 하지만 본능적인 욕망에 충실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답답하지 않은가. 그의 글은 그런 해소하지 못하는 텁텁함에 대해서 시원한 대리만족을 준다. 그의 글 속에서 주인공들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고, 일상의 틀에 안주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작은 계기로 사람들은 일탈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일탈은 위험스러워 보이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울 뿐이다.


횃불처럼, 그대의 몸에서 불꽃이 튈 때
그대는 아는가, 내 몸을 태우며 자유가 된다는 것을
가진 것은 던져버려야 할 운명이란 것을
남은 것은 재와 폭풍처럼 심연으로 떨어질 혼미임을
영원한 승리의 새벽에, 재의 바닥 깊이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남는다는 것을

- 재와 다이아몬드 -

’재와 다이아몬드가’ 무슨 영화 제목 같은데 필자는 본적이 없다.;;
하지만 저 시는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치 허리케인 죠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처럼, 새하얗게 태워버리는 남자의 일생처럼. 이거 나이를 먹고도 이런 열혈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니 아마 나도 그의 책의 셀러리맨이나 여고생처럼 이 답답한 좁은 길에서 뛰쳐나가 저 멀리로 달려갈 일탈을 꿈꾸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