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권태.

사람은 누구나 권태를 꺼려한다. 허나 권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찾아온다. 이 삶에 익숙해지고 이 상황에 익숙해져서 이제 나의 삶의 변화나 혹은 내가 추구했던 이 생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바라는 순간이 오면 권태는 그 소망의 친구였던 마냥 같이 슬그머니 내 주변을 맴돈다. ’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듯이.

스무살 즈음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도스토브예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면서 그 심리 묘사의 모순성에 전율한 기억이 있다. 인간의 이중적인 그리고 모순적인 심리에 대해서 적절히,  칼로 베일듯한 절묘함으로 표현했던 작가에 대해서 천재라는 말 이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사실 그정도의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인물의 심리가 변해가는 모습들이, 그리고 그 변화의 양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신선함이 내 시선을 끌었고, 난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놓은 글에 대한 감상평을 보면서 유독 ’가독성’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내 느낌도 그러하다. 가독성이 좋다고 할만 하다.

일탈을 꿈꾼다. 그리고 권태를 싫어한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그 권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도박 또한 마찬가지 였을 뿐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새로움을 찾아서 혹은 지금의 무미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서 혹자는 카지노로 걸어들어간다. 하지만 그 도박의 세계 속에서 그는 권태를 물리칠만한 엑스칼리버를 잡지 못했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어렵고 심오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나 또한 조금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 끝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이 책을 집었을 따름이다. 책을 손에 들고 있었던 몇 시간 권태는 나에게서 조금 멀어졌고, 다시 책을 덮고 여흥이 사라져가기 시작한 몇 시간 뒤에서는 내 곁에 다가섰다.

책을 읽는 동안, 삶과 죽음, 그리고 도박, 카지노. 그 속에서 작은 일탈을 꿈꾼다.

그 벗어날 수 없는 권태 혹은 무의미 속에서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두 여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한 여인은 오래전에 연인이었고, 한 여인은 새로운 장소에서 처음 만난 여인이었다. 하지만 두 여인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로멘스는 없었다. 충분히 상상해 볼법한 상황들 조차도 기대하지 않고 너무나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이 아마도 별 다름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보였다는 건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누군가 세계문학상에 대해서 조금 안좋은 말을 해서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나름 재밌는 책이었다. 간간히 드러나는 인물의 혼란들과 그것들을 성심껏 풀어놓으려 했던 작가의 진솔함이 옅보이는 책이었다.

가네시로 가즈키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한다.
글은 활발하면서 무겁다.
Go ! 한번 달려보자는 말인듯.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중에서,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 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어둠이란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내 어둠은 차별에서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는 어둠을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밝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는  별로 그의 어둠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그 차별을 그 나름대로 풀어서 이 이야기에 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그의 글이 우리에게 재미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둠이 별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일본 문학이 그에게 상을 준 것은 일본 문학계도 나름 정화와 포용의 시기를 거치는 것이리라. 나오키 문학상이 일본 문학계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뛰어 논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기성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영유한다. 이 이야기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그 고등학생이 뛰어노는 이야기 치고는 작가가 참 하고픈 말이 많았다는 느낌이 든다. 단지 고등학생이 늘어놓는 이야기치고는 너무나 철학적인, 존재론적인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주저리 주저리 바닥에 깔려 버리기 때문에.

그도 영위한다. 삶을. 그 삶은 누구의 삶인가?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이리라.

아픈가? 당신에게 부여된 차별이? 난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난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니까. 나에게 차별은 내 능력에 대해서만 주어졌으니까. 그러나 그 능력에 대해서 주어진 차별이 나에겐 너무나 아팠다. 그래서 막연히 상상할 뿐이다. 노력으론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차별이란 무엇일까 하고, 그리고 그러한 차별이 주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하고.

니체를 좋아한다. 누구에게 배운적은 없었다. 처음 너무 어려워 다른 니체를 해설해준 책을 몇권 읽어야 했다. 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무엇인가? 하고.

치열하게 치고박고 싸우면서 하나씩 얻어가는 것이리라.

문학과 소설은 언제나 나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너의 삶을 살아라라고, 그것이 정답인지를 말해주지는 않지만, 각기 자기 나름의 삶을 이야기해 준다. 그래 삶에 정답 따위는 없는 것이다.

"Go : 가라 혹은 뛰어라. 멈추지 말고 내 삶을 살아라."

가네시로 가즈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이 아니었을까? 그가 그 어려운 니체를 인용해가면서 중간중간 삶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늘어놓았던 말들은 결국 자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넌 너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니체가 한 말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라는 그 말처럼

일단 어렵다.
나름 소설 읽기는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70페이지도 채 안되는 이 책을 읽는 데 일주일이 걸려버렸다. 역자의 20페이지를 넘어가는 작품해설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그나마 내용 파악도 힘들었을 것이다. 줄거리가 어렵지는 않은데, 표현이 난해하고 문장 구조가 길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머리에서 연상이 되는 듯한 느낌으로 흘러가다보니 반페이지만 흐름을 놓쳐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돌아가서 읽어내려가야 했으니 독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렵게 읽었지만, 이 글의 문학적인 의미나 중요성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있었으니.


"자네들은 이해할 수가 없을 거야. 자네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자네들이야 단단한 보도를 딛고 서서, 늘 자네들을 격려하거나 덤벼들듯 다정한 이웃들에 둘러싸인 채, 푸주한과 경찰관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가면서, 추문과 교수대와 정신병자 수용소 따위를 거의 종교적으로 두려워하며 살고 있으니 자네들이 어떻게 상상인들 할 수 있겠나? 경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철저한 고독으로 인해, 그리고 다정한 이웃이 여론이랍시고 속삭여주는 경고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철처한 침묵으로 인해 한 인간의 자유로운 발길이 어떤 특정한 태초의 땅으로 인간을 이끌고 갈 수 있는지를 자네들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거야. 이런 결찰관이니 이웃이니 하는 사소한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자네들은 자네들 자신의 타고난 힘에 의존해야 하고 또 스스로 충실하게 살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해야 해."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영위하고 있는 어떤 생활의 요소들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받을 충격과 혼란. 그것에 대한 작가의 마치 실제 경험담과도 같은 설명. 이 하나의 설명만으로도 아프리카의 밀림이라는 곳에서 주인공 말로가 느꼈을 이질감과 고독감이 슬그머니 이해된다.

역자의 작품설명을 읽었을 때 한 인간의 정신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한 인간이 사회와 떨어져 다른 세계 속에서 다른 문화 속에서,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요소들이 부재되어 있는 속에서 점차 파괴되어 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앞선자를 뒤따르는 자 또한 조금씩 파괴되어가는 이야기.

결국 파괴된 자의 약혼녀를 만나, 마지막 순간 그녀에게 던지는 거짓말.
’그녀의 이름’ 그 때의 그 씁쓸함.

"아니 하늘이 내 머리 위로 무너져내릴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 그러나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지.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하늘이 무너질 리 있겠나."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몇가지 기억나는 장면들과 단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