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시작부터 결론을 말한다. 사람은 '욕망'으로 인해서 살아가지만, '욕망'은 잘 채워지지 않는다. 만약 '욕망'이 채워진다고 해도 그것은 더 높은 욕망을 낳고, 그 순환으로 인간은 끊임 없이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욕망 이론을 설명하는 서론 부분은 그렇저렇 읽을 만했다. 심리학에 대해서 학창 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프로이트 관련 수업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중, 후반 부의 비평이론과 시각이론 부분은 당초에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책의 편집 방식이 라캉의 저서를 기반으로 했다기 보다는 그의 세미나를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책의 머릿말에서도 거론 된 '파편적'이라는 말처럼 이야기의 흐름과 사용되어지는 어휘는 제반 지식이 없거나 누군가의 부차적인 설명이 없다면, 단지 이 책만으로 라캉의 복잡한 사유와 추론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래도 라캉의 욕망 이론에 대한 맛은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조금 쉬웠던 구절 몇 가지를 풀어 본다.

 '의사전달 행위가 어떻게 유일한 의미만을 전달하도록 허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이것이 이론가의 주의를 끌게 되는 이유는 아무리 중요한 주석일지라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으면 체계 속으로 통합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 [도난당한 편지] 라는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을 예로 의사전달 행위의 한계성에 대해서 설명한 구절. 대충 풀이하면 초등학생한테 윤동주의 시를 읽어줘 봐야 별 쓸데가 없다 정도.

 '여성은 남성 속에서 오직 남성의 영혼이 지식을 지향하는 방식을 사랑할 뿐이다. 그러나 남성이 의존하는 지식이란 <희열>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지 어떨지 물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그리고 <희열>은 여성이 그것에 관해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지 어떤지, 그녀가 그것에 관해 아는 것을 말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도록 한다.'
- 페미니즘 이론 부분에 등장하는 글귀.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욕망에 대한 차이첨을 설명하는 부분.

 '그녀의 희열이 근본적으로 타자의 위치를 점유할 때 여성은 인류의 선(善)으로서만 오직 분명히 표현되어온 어떤 길을 따라 옛사상 속에서 진술되어온 모든 글들보다 더 위대하게 신과 관련될 수 있다.'
- 페미니즘 이론 부분에 등장하는 글귀.

 ' 부러움이란 그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즉 자신에게는 충족의 대상이 아닌 것을 타인이 소유할 때 느낀다. 자신의 결여를 떠올리게 하는 완벽한 이미지 앞에서 아이는 창백하고 떠리는 눈으로 동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창백한 떨림을 거두고 그것이 완벽함처럼 보이는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응시이다.'
- 해설 부분에 나온 글귀.

 전체적으로 난해하다. 번역도 15년 전 번역이라 조금 어렵고, 책 내용도 세미나를 기반으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초심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냥 라깡에 대해서 맛만 보는 정도.

 동일한 제목의 무용을 봤었다. 둘러보던 도서관에서 프랑스 문학 서가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았다. 가벼워 보이는 책이 선뜻 손에 잡혔다. ’책 읽어주는 여자’라... 무용은 많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현대인의 고독과 자아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도대체 이 책에서 어떤 감명을 받았기에 그것을 춤으로 풀어낼 생각을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로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픈 생각은 없었다. 내 독서이력은 어떤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하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히 눈에 띄는 대로 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후자 쪽에 가깝웠다. 책을 대출한 후 집에 돌아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야기는 재밌었다. 그리고 특이했다.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처럼 이 글은 ’책’을 읽어주는 여자에 의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한 여자가 책을 읽어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안에 갖혀 있는 사람들, 사회와 별로 신통치 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관계가 격리 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관계’에 조금씩은 문제를 가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처음만난 ’아이’는 ’어머니’와 문제가 있었고, 다음에 만나는 ’할머니’는 ’가족’과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의 문제를 ’책’을 읽어주는 여자를 통해서 조금씩 해소해 나간다.

 책을 읽고 나서 무용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하얀색 무대 위의 투명한 조명은 사각형의 방 모양으로 그 안의 인물을 가둬두고 있었다. 그 인물은 조금씩 움지이며 그 방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조명은 조금씩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한 몸짓과 움직임을 반복하며 조명은 그 넓이를 조금씩 넓어간다. 그리고 작았던 그 사각형이 넓어진 후 다시 조명은 조금씩 그 크기를 줄여 원래 시작했던 모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한 장면이 끝이난다.

  작자는 머릿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서’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그 책을 쓴 사람과의 관계맺기가 이닐까 한다. 이 사람의 생각을 알고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은 일방적인 말하기 같지만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고, 나는 그 사람의 글에서 나를 보고 내가 듣고 싶은, 들을 수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그것은 서로 주고 받는 말하기와 같다고. 소소한 이야기에서 알게 된 조금은 깊은 생각이었다.

십년 전 출판 된 르 클레지오의 소설 [황금 물고기],
처음 이 소설을 들었을 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떠올랐다.
아마도 물고기라는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햇빛에 반짝이며 튀어오르는 물방울과 그 흐름을 힘찬 몸짓으로 거슬러오르는 연어.

이 책은 한 소녀의 삶을 다룬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매번 다른 곳으로 흘러가야 했던 그녀. 그것은 그녀의 의지도 욕망도 아닌 타자와 사회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자기 왔던 초승달 모양의 귀걸이가 주어졌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내 근원을 향하는 여행.

우리네 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하나의 물방울은 다른 수많은 물방울과 같이 어딘가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물방울들은 어느덧 어디서 흘러왔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잊어버린채 마냥 흘러가기 위해서 흘러간다. 생은 흐른다. 우리는 그 커다란 강물의 어디쯤에 흐르고 있는 것일까.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혹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절박함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때론 사람들은 타인을 구속하고 소유함으로 욕망을 달성하려 한다. 그리고 한 소녀는 새처럼 물고기처럼 그런 사람들의 품에서 뛰쳐나온다. 내 자유를 침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것은 여행이었고, 흐름이었고, 회귀를 의미했다.


글은 섬세하고 책은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