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뭐라고 할까. 변한 게 아니라 저 멀리 가 있던 생각을 가깝게 끌어당긴 것뿐이네. 난 일방적 반공교육을 시키면서 괴로움을 당하기 시작했고, 내 생각이 환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했네. 그러면서 교직을 떠나야 되겠다는 생각이 커져갔지. 그 고민을 자네한테 비쳤는데, 기억하나 몰라. 그 생각이 커져가면서, 서로 맞선 두 정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난 어느 편에 서야 하나 하는 구체적인 고민까지 하게 됐지. 그 말을 자네한테 물으려다가 그만뒀었지. 그리고 보도연맹 때문에 서울로 도망오며 그 구체성은 더 강해졌고, 이번 사건으로 고문을 당하면서 나는 내 생각의 잘못과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아니야, 정하게 되었네. 그것이 뭔 줄 아나? 나를 고문하는 형사놈을 향해, 네놈 같은 민족반역자를 한 놈만 죽이고 나도 죽을 수 있다면 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겠다는 치떨림이었네. 단순하고 유치한가? 그러나 명쾌하고 확실하네. 관념이 아니고 체험이니까. 그 결심을 지킬 좋은 기회가 온 거네.’

-손승호가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나와서 김범우와 나누는 대화 中에서-

 결국 6.25가 일어난다. 몇몇 사람들은 돌아오고 몇몇 사람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사람은 어떤 때 변하는 것일까? 좋은 책이나 좋은 사람을 만날 때일까? 아마 그것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극심하게 변할 때는 직접 경험했을 때가 아닐런지.

 찝찝한 우리네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몇몇 선배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 몇권들을 추천해 주고는 한다.
그 이름만 들어도 정말 멋진 사상과 생각이 가득할 거 같은 책들을 말이다.

해외에서 출간 된 연극 이론서들의 이름은 마치 지성인이라면 혹은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봐야해 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제목들의 책이 많다.

’가난한 연극’ -그로토프스키- 도대체 무엇이 가난하다는 것인지
’빈공간’ - 무대를 채우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잔혹연극론’ - 도대체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배우의 역설’ - 책 제목 한번 거창한듯
’산연기’ - 살아있는 연기라고?!

이런 멋들어진 제목에 절대 뒤지지 않을 메소드 연기의 대가 리 스트라스버그 선생님의

’연기의 방법을 찾아서’

제목만 봐도 느껴지는 포스가 정말 ㄷㄷ 이다. 연기 그것의 방법을 찾는 여행이라니 헐~

잡설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메소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선생님에서부터 시작된 연기의 방법론 그리고 그것을 사실주의와 극사실주의의 기법에까지 확장시킨 연기 방법 메소드 연기. 그것에 대한 시작과 이해를 담고 있다.

네이버에서 오역이 판을 치는 책이라는 글을 읽고 책에 대한 정이 떨어져서 대충 읽고 말았는데, 사실 오역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메소드 연기에 대해서 읽어 봤던 책들 중에는 가장 좋은 책인 거 같다. 기본적으로 연기의 시스템을 최초로 제창한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이론을 확장 시켜서 새로운 연극이론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구체적인 예가 많지는 않지만 연습에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많이 있고, 메소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확실한 이해가 없다면 많은 참고를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 연극책은 3년만 지나면 절판되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절판되었다는 거... 오역이 많은 지는 잘 모르겠지만(원서를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냥 봐도 말이 안되는 문장이 많다. 쩝) 메소드 연기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었던 책.



배우의 신체는 이완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몸의 작은 부분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긴장에 의해서 자연스러운 표현이 불가해지게 된다. 소리와 몸은 경직되고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표현들 혹은 의도 했었지만 보여지지 못했던 표현들을 만들어낸다. 결국 긴장은 그것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느냐의 정도를 통해서 연기의 자연스러움을 나타낸다.

무대 위에서 배우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그 순간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배우가 이완된 상태이고 그 훈련이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배우의 행위를 진실되게 만들어 주고 그의 감정에 호소력 있는 진정성을 담아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참다운 노력이란 포기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그곳에 살아 남아 버티면서 멀고 구석진 고장에 서식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일이다. 집요함과 통찰이야말로, 부조리와 희망과 죽음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비인간적 유희를 구경하는 관객의 특권적 자질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신은 기본적인 동시에 미묘한 그 춤의 갖가지 모습들을 밝혀내고 또 스스로 체험적으로 살기에 앞서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방인]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철학자 카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그냥 죽음이다!’

 지금 이 순간 관습과 타성에 젖어서 그냥 저냥 살고 있을 때, 갑자기 세상이 낯설어지고 내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을 때 그냥 어떤 깨달음으로 인해서 내가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한 없이 다른 존재라는 부조리를 느낄 때, 그 때 난 죽음을 생각했다. 어설픈 허무주의는 그 부조리와 맞닿은 순간 더 이상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했다. 하지만 어찌저찌 하여 난 죽음의 강을 다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여기 앉아 지금 자살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한 선배의 책을 읽고 있다.

 카뮈의 글을 읽다보면 그냥 큰 형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은 왜일까. 항상 올바른 길과 절대 흔들리지 않는 이념들에 대해서 설교하는 선생님 같은 느낌이 아니라, 흔들리고 유약하지만, 그래도 믿는 바 그것을 완성하려 나아가는... 내 앞을 걸어가는, 딴딴한 등을 가진 듬직한 큰 형을 보는 기분이다.

 카뮈는 스스로를 실존주의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존주의는 지금의 부조리를 발견했지만, 그리고 그 의미 없음에 끝도 없이 절망하고 슬퍼 했지만, 자신은 그 절망이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고, 그래서 그는 돈주앙이나 배우, 정복자를 통해서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산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힘들어진다. 믿는 것이 확고하고, 가야할 길이라고 주어진 것이 정답이라고 느꼈던 시절은 행복했다. 그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진지함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열심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뒤돌아본 내 과거가 생각만큼 나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내가 전부라고 여기며 아둥바둥거렸던 이 조그마한 사무실이 내가 세상에서 혼자라는 것을 이해시켜주었을 때. 그리고 그 후부터는 정답은 없었고, 삶이란 것은 모호함과 변화무쌍함으로 나를 참 무섭게 한다.

 지금과 나와 세상과의 괴리. 난 너희들과 어느만큼이나 멀어져 있는 걸까. 인간은 일단 먹고 자고 싸야 하는 동물이기에 그 몸뚱아리 덕분에 난 내 삶에의 남은 길들이 한 없이 걱정스럽고 걱정스럽고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