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이 그려 낸 세계는 유교적 금욕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기 이전의 세상 모습이다. 여기에서 성(性)은 중세의 윤리와는 현저히 다르며 지금 우리 시대와도 또 다르다. <미실>은 우리 역사의 일부이면서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고, 그럼으로써 그 자체가 우리의 통념에 대한 한 편의 음화가 된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실>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불편했다. - 서영채(문화평론가) -

책의 말미, 당선작 심사평에 쓰여 있던 어느 심사위원의 평가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꼈던 감정과 거의 똑같은 말을 하는 평가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유교적, 혹은 기도교적 성 윤리가 이 사회를 지배하기 이전에는 <미실>에서 보여지는 성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금욕주의에 의해서 통제되고 억압되는 성이 아니라 쾌락을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그 쾌락을 통해서 해탈을 꿈꾸기까지 하는 도교적인 성 윤리를 사람들은 따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다름’을 머리로는 알지만, 지금 내 기준과 가치관을 벗어나서 일어나는 ’미실’의 행태가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나고 자라고 배운 이 이데올로기를 난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사랑’이라고 믿는 그 정의가 싹을 틔운 땅이 유교적 그리고 기도교적 가치관의 토양 위이기 때문일 것이라.

성이란 것과 사랑이란 것 이 두 가지 의미에 대해서 갇혀 있지 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글은 독자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의미 없지는 않을 것이다.

드디어 4개월여에 걸친 대장정이 끝이났다. 마지막 책을 덮을 때 찝지름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정말 잘 쓴 글이다. 사람 하나하나에 대해서, 역사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한민족이라는 정서와 한반도라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살아가는 사람과 이념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역사를 글 속에 잘 어울리게 녹여 놓았다.

한명 한명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지나간 역사는 큰 사건과 의미만을 후대에 전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움틀거렸고, 그 하나하나의 존재가 역사에 매달려 그 흐름이 흔들렸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과거일 것이다.


한국 근대사, 육이오를 생각하면 씁쓰름한 느낌만이 가득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결국 얻어진 것과 찾아진 것은 무엇이었는지. 누군가에 대한 원망만 끓어오른다.

요즘 정치적으로 참 말이 많은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전 대통령의 서거, 그 얼마전 최초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매번 반복되는 대통령의 부정. 어처구니 없는 국회의원들의 청문회.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그냥 그 시끄러움만 느껴질 뿐이다. 태백산맥을 오르면서 이런 시끄러운 정치와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더 잘 귀에 들어왔다.


아마도 최초 역사의 시작에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가 그 처음과 같았다면, 욕망과 생존이 먼저가 아니라 이상과 의지가 굳건히 지켜졌다면 이라는 가정은 버려지지 못하고 여전히 글을 읽는 중에도 주변을 돈다.

이 땅의 1950년은 아름답지 못한 서글픈 시기였다.

며칠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하셨다.
네어버에서 그 소식을 알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슬픔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노 전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분의 죽음 앞에서 모든게 숙연해져 버렸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회가 싫어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총살을 당해 죽으면서까지 싸우기를 거부한 남해여단장의 속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분은 그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었던가요?"

"한마디 했다는데, 그 말이 아주 알아듣기가 어렵고 뜻이 모호해요."

" 그 말이 뭔데요?"

"지친 혁명가의 허무적 초월주의!"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오?"

"남해여단장 그 사람 죽어도 싸요."
이해룡이 자르듯이 말했다.

"혁명가가 지치면 그것 자체가 죽음인 거요."
안창민의 나직한 말이었다.


누구를 욕하고 싶지 않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누구를 담는 건 가슴과 머리 속에 그리고 나아가는 것이다.


산 속에서 삶은 고되었다. 음식, 약, 무기 모든게 부족했다. 그리고 전쟁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꿈이었다. 매번 역사가 새로운 왕조에 의해서 다시 쓰여질 때마다. 세상은 새로웠다. 이전까지의 악습과 폐단들이 사라지고 깨끗한 역사였다. 하지만 그 깨끗함도 어느샌가 때를 타고 말았다.

그들의 죽음에 의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