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가 장 주네. 빈민굴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었으며, 서른 살까지 감옥을 들락거렸던 작가. 사르트르의 지인이었고, 조각가 자코메티와 친분을 가졌던 바람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

’....그때 내 시선에 사로잡힌 빠르고 강렬했던 그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추함이나 악의를 넘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바로 그 추함이나 악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생각이 자비가 아니라 하나의 인식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자코메티의 시선은 오래 전부터 이 점을 읽어내어 우리에게 재구성해 주었다.’

인간의 내면, 혹은 사물이 나타내는 짧막한 단상. 그것들을 찾아내어 옮겨 놓는 조각가. 장 주네는 자코메티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도대체 그것은 어떤 것일까? 머리를 통해서 가슴으로 들어와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닌, 손끝을 타고 가슴으로 들어와 심장에 호소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글은 읽기 쉽게 쓰여졌다. 짧막한 70페이지도 되지 않는 이 주네의 예술론은 그가 담아 놓은 예술에 대한 섬세한 감각만큼이나 날카롭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며칠전 그의 희곡 [하녀들]의 공연을 보았다. 대사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는 공연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담아내었던 어떤 ’욕망’에 대한 간절함이 내 볼에 눈물 한 방울을 흐르게 만들었다. 그의 예술론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 떠올랐다.

이제 그의 희곡을 찾아 보아야 겠다.

[왕은 죽어가다]

연극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처럼 보이도록 꾸민 ’허구’, 즉 ’사실임직한 비사실’을 보여 줘야 한다는 기존 연극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로서, 이런 관점을 극히 교조적으로 적용한다면, 이오네스코가 입고 있는 옷은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에 절대 ’사실임직’할 수 없으며, 따라서 연극에는 부적절하다. 한편 바로 이러한 점이 소위 옇ㄴ대 연극과 그 이전의 연극이 보이는 중요한 차이인데, 한마디로 기존 연극이 ’사실임직한 비사실’을 추구한다면, 부조리극을 필두로 하는 현대 연극은 ’사실임직하지 않은 사실’, 다시 말해 ’얼핏 사실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연한 사실’을 추구한다. - [왕은 죽어가다] 주석에서 발췌 -

부조리극의 시작을 함께 했던 작가. 한 왕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고 받아 들이는가. 그 과정이 과장되게 그리고 우스꽝스럽게 이야기 된다.

왕은 죽어간다. 그리고 그의 왕국도 사라져 간다. 그는 점점 작아진다. 그의 감각도 서서히 퇴화하고, 그의 지성도 서서히 잦아든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이라는 부조리에 대해서 진진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 때문에 주어졌는가?

윤영선 선생님의 희곡 ’여행’ 에서 말하여진 한 대사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과 알몸으로 아무리 껴안고 껴안아도 그 틈바구니로 스며드는 죽음, 매일 매일 우리 밥상 위를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죽음. 죽음은 밥상 위에 알을 까놓고 봄날 꽃처럼 피어나네.’ - 태우의 대사 -

죽음은 우리를 언제나 둘러싸고 있다. 너무나 가까운 죽음이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끊임 없는 고뇌를 안기는 부조리한 숙명이다. 언젠가 불현듯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이오네스코는 말을 잘 가지고 논다. 사람들의 말은 이어지는 듯하면서도 이어지지 않고,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은 현실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글 속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희곡이 무대 위에서 올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웃으며 지나치고, 우울해 하며 극장문을 나서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당통의 죽음]

당통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역사적인 인물.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술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혁명가.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혁명을 이끌었던 그는 그 고집대로 마지막을 고수하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희곡은 프랑스 혁명 그 직후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혁명의 격렬했던 상황들이 눈 앞에 그려진다.

'내게는 무덤이 차라리 안전해. 무덤은 최소한 망각을 가져다주니까. 무덤은 기억을 지워주니까. 그러나 여기선 내 기억이 살아서 날 죽일 거야. 나를 택할 것인가, 기억을 택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해. 난 죽음에게 아양을 떨고 있어. 멀리서 안경을 쓰고 죽음을 염탐해 보는 것이 아주 편해. 난 역사를 비웃지 않을 수 없어. 내게 그것은 정체된 느낌이야.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더 먼 훗날도 오늘과 같을 거라는 느낌이야. 공허한 소리야. 나에게 겁을 주겠다는 거지. 그러나 감히 그렇게는 못할 거야.' - 당통의 대사 중에서 발췌 -

그렇게 당통은 죽음을 향해 간다. 가슴이 뜨거웠던 혁명가. 죽음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새삼 뷔히너의 천재성. 이 글을 22살 때 썼다고 한다. 단 2주의 시간 동안. 세상과 사람에 대한 환멸, 그러나 꿋꿋했던 어떤 사람에 대한 추모가 진득히 느껴지는 그의 희곡.

혁명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혁명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었던 사람들은 그 손에 쥔 무엇인가를 놓치기 싫었으리라. 그것은 어느 순간 두려움으로 변했을 것이고, 그들은 동지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들이 내 손에 있는 무엇을 노리지 않을까?' 그 의심은 끝 없는 피의 강을 만들었고, 그들과 혁명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그 강에 떠밀어 버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피의 강 앞에서 의연했던 한 사람이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