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을 읽고 나면 ’천재’라는 단어만이 머리를 맴돈다. 인간의 저 깊이까지 들어가는 그의 글.

’도스또예프스키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
그는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 가운데 하나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한 젊은이가 노파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한 줄로 끝나버릴 수 있는 사건을 그는 장장 800페이지에 달하는 글 속에서 인간의 심연을 들락거리면서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의 글 속에서 인간은 파헤쳐지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들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난다. 말빨이 좋다거나 구성이 좋다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일자무식인 나는 더 이상 글에 대해서 분석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상권이 끝났다. 완역본으로 다시 읽고 있는데 그 두꺼움에 처음 느꼈던 무거움과 두려움은 사라져버렸다. 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누가 던졌더랬다. 이 책 속에서는 그 본질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각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인간에대한 이야기. 그 끝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끝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니게 되었다.

할 말도 없으면서 말을 잇다보니 주저리주저리 어디를 돌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하권을 마저 읽으러 가야겠다.

역사에 있어서 어떤 과거들은 잘 치유되지 못한다. 그 시절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것은 다시 들춰내어지고 재연되어진다. 1950년대 독일은 그런 역사와의 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은 그 역사를 대표한다.

[식인종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상처는 남았다. 상처는 치유된다고 해도 흉터라는 흔적을 남긴다. 어떤 한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먹음으로써 생을 연명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지 타보리는 끄집어 내었다. 아직 채 아물지 못했던 상처는 그로인해 다시 벌어졌다.

대본은 어렵다. 이야기의 흐름은 말보다는 지문으로 그리고 시간의 역행과 다양한 인물들의 변화를 통해서 진행된다. 때론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아들이 되기도 하는 인물과 자주 역전되는 극중극의 형식을 통해서 극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대본이 어려웠기 때문에 후반부의 해설을 먼저 읽어야 했다. 그럼에도 극에서 많은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독일 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필자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이기는 했다.

인상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조금 어려웠다는 느낌이 강하다.

공연으로 올려진다면 어떤 형식과 느낌으로 올려질지 궁금하다.

(아주 조금, 위험에 찬 휴지, 곧 집시가 온켈에게 주먹을 가하고, 온켈은 간이의자에서 넘어져 의자 사이에서 비틀거리다 바닥에 떨어진다. 일정 정도 개인적 본성에 따르고 절되지 않는 인상을 일으키는 일이 뒤따른다. 배우들은 연극으로부터 나와 그들이 이전에 연기로만 했던 비인간적인 야만성을 보여준다.... 중략)

이런식이다.

얼마전 공연을 보았다. 장 주네. 공연이 시작하고 30분쯤 지났을 때 많이 낯선 말들과 숨겨진 의미 때문에 머리에서 서서히 열이 나기 시작했다.  공연이 흘러 1시간 10분쯤 경과했을 때, 묘하게도 머리에서는 열이 났지만 심장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정확히 한 방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장 주네는 파란만장하다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삶을 살았다. 어린시절 거의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이별했고, 도둑질을 일삼으며 10대와 20대를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장콕트와 사르트르에 의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가진 자 보다는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섬뜩한 묘사가 함께하고 있다.

[하녀들]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갈망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 그들은 아름다움을 갈망하기도 하고, 사랑받음을 갈망하기도 하며, 그 지위와 부를 갈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쥐어질 듯하다가 그들을 떠나간다.

혹자는 그를 미친작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글들이 가지는 난해함과 낯설음이 아마도 그렇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쉽지는 않았다. 단지 느껴졌던 어떤 부분들과 그가 풀어낸 이야기가 깊고 진하게 다가왔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_-;


’아니요, 검사님, 아녜요.... 검사님은 내가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모를 거예요. 이 살인이 우리의 합작품이라는 것도 모를 거고, 우리가 서로 협조했다는 것도 모를 거예요... 옷이요? 그건 마담이나 가지세요. 우리한테도 우리 옷이 있었어요. 동생과 내가 밤마다 남몰래 입던 옷 말예요. 이제 나에게는 내 옷이 있어요. 이제 난 마담과 동등해요. 이제 난 살인범들의 붉은 옷을 입었어요. .... 중략.... 그런데도 절 용서하신다고요? 친절도 하셔라. 나와 경쟁을 하고 싶으신가 보군요. 누가 더 위대한지 말예요. 하지만 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위대성을 쟁취했어요. 마담은 나의 고독을 알아차렸군요. 그래요, 이제 난 혼자예요.... 중략’

- 극의 후반 부 쏠랑쥬의 대사중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