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해안 연대기 두 번째 이야기. [보이스] 목소리.

읽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예전엔 많이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읽을 수 있는 배움은 특정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내가 서 있는 이 나라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된 시기는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위험하다. 그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겐 너무나 민간함 사항이기에. 그들은 몇 마디 말로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장난으로 던진 한 마디로 인해서 서로는 얼굴을 붉히게 된다.

[보이스]는 이 두 가지 결코 가볍지 않은 줄기들을 큰 흐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르귄이 매번 그녀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포용과 따뜻한 인간에 대한 희망이 역시 이 작품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언뜻 그녀는 옳고 그름에 대한 정답을 내놓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결국 판단은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을 위해 썼다는 이 서부해안 연대기는 판단을 독자에게 맡겨둔 것 같다는 느낌을 조금 받는다.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대현자 게드가 맡았던 역할. 스스로 깨우치고,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며 힘을 얻고, 그 힘을 통해서 굳게 닫히려는 누군가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는 역할을 [서부해안 연대기]에서는 카스프로가 맡은 듯하다. 대현자의 위치가 대시인의 위치로 변한 느낌. 이 둘이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별로 다르지는 않다. 둘 모두 ’말’이 지닌 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귄의 책은 화려하지 않고 폭발적이진 않지만, 잔잔하고 따뜻하고 조금은 몽환적이어서 참 재밌는 것 같다.

뒤렌마트. 국내에서 지만지에 의해 처음으로 번역된 [헬라클레스와 아우기아스의 외양간].
뒤렌마트는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름과 그의 희곡 한 두편 정도는 들어보았을만한 독일어권의 유명 작가다. 그러나 열악한 우리 나라 연극계에서는 그의 대표작품 한 두개 정도만이 출판 되었을 뿐이고 그나마 이 작품도 근래에 번역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회의 폐단과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했으며 그로인해 무엇이 사라지고 어떤 것들이 생겨났는지 그는 옛날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데리고 와 스꽝스러운 코미디를 통서 친절히 설명해준다.

’이제는 영웅이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라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수 많은 고난 속에서 모든 역경을 뚫으며 변화를 가져왔던 영웅이었던 헤라클레스는 이곳에서는 단지 힘이 센 인간일 뿐이었다. 결국 그는 몰락한다. 가난. 제도. 정치. 이 고난들에서도 영웅은 비켜갈 수 없었다.


얼마전 보았던 극단 백수광부의 ’야메의사’가 생각났다. 매번 공동창작으로 따끈따근한 지금의 현실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었던 공연. 엉뚱하고 억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한참 웃게 되지만, 막상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그 우스운 상황이 지금 이 현실이기에 슬퍼지게 만들었던 공연. 

객석에 앉아서는 실컷 웃을 수 있지만, 불이 켜지고 공연장을 나설 때 무거운 발걸음을 띠게 만드는 그런 희곡이었던 것 같다.


"영웅은 사람을 감격시키는 숭고한 생각을 일깨우는 말일 뿐이다. 현실 속에서 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소유하지 못한 특성을 우연히 가지게 된 한 남자일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힘이 세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늪지에서 소탕하는 파충류와 같은 괴물이다. 그들의 시대도 지나갔고 나의 시대도 끝났다. 나는 피의 세계에 속한다. 이올레, 그리고 나는 손에 피를 묻히는 막일을 한다. 죽음은 내가 독화살로 쏘아 보내는 나의 동반자이며 나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나는 인간들의 명예에 의해 덧칠해진 한 명의 살인자이다. 부드러운 달빛 속에서 너를 보내는 지금처럼 내가 인간다운 적도 드물다. 왜냐하면 넌 언젠가 제대로 된 한 남자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남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고 그 두려움을 극복한 진정한 영웅 말이다. 그리고 넌 언젠가 평화를 사랑하고, 나와 싸웠던 모든 야수들을 그저 동화로 생각하는 아들과 딸을 가져야만 한다. 그게 인간다운 것이다."

- 헤라클레스의 대사 중 발췌 -

연극사 책임에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고전주의에서부터 시작된 연극은 혁명과 전쟁을 거치면서 점차 사실주의로 나아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를 냉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연극은 그것을 가능케 하여야 한다 라는 말을 외쳤던 19세기 작가들. 그리고 그들에게 태어난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사실주의 그 연극의 역사에 대한 흐름이 손에 잡기 쉽게 아담하니 뭉쳐져서 나에게 쥐어진 느낌이다.

책에 대한 감상은 이정도.

유명한 작가들의 일화. 그들의 작품을 좀 더 알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그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들.

책 내용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바그너에 대한 이야기.
[니벨룽엔의 반지]라는 오페라로 너무나 유명한 작곡가. 사실 오페라는 본적 없고(당연 너어~~무나 비싸니까 -_-) 각색된 영화로는 보았었다. 사실 그 당시 영화 자체는 별거 없었는데 웅장했던 노래와 애절했던 사랑, 그리고 묘하게 섹시했던 여배우가 인상에 남았더랬다.

그런데 그런 바그너가 원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는 사실.
자신이 쓴 작품에 서곡을 너무나 쓰고 싶어했기에 음악을 수년간 공부했고, 그리고 결국 자신의 작품에대한 서곡을 썼다는 바그너. 거참. 대단한 사람이다.

여튼 연극사에 대해서 개략적인 지도를 그리고픈 초심자라면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