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동현 선생님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출하신 공연을 보고 대본을 샀다.

남미 작가들의 상상력이란 정말 감탄스럽다.
다윈의 거북이가 급격한 진화를 거듭한 뒤 인간들 앞에 나타난다.
그들에게 인간의 역사와 진화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다.
’그래서 인간은 진화하였는가?’

지구에서 같은 종을, 먹기 위해서가 아닌 이유로 죽이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죽음과 살인의 역사. 그 위에 문명은 세워졌고, 우리는 그 시체들의 산 위에서 살고 있다. 아니 시체들의 산 밑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이뤄놓은 사상을 머리에 이고서.

혁명과 전쟁. 사상과 이념의 대립.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위에서 현대사는 이룩되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많은 죽음이 뒤 따랐고, 역사와 문명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생물학적인 진화로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외부의 변화를 기술문명으로 해결하는 데 인간은 이미 능숙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인식과 사고의 부분에서 인간은 진화하였는가?

변하지 않는 인간. 변할 것 같지 않은 인간들을 앞에 두고 다윈의 거북이 였던 헤리엇이 던진 질문은 그 변화를 간절히 희망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진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저자 앙리 레비
책은 어렵다. 세계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으면, 책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 말도 직설적이기 보다는 은유적이고 빙빙 돌려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필자에게는 참 어려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 ’좌파’라는 말에 끌렸다. 젊음의 열정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까. 부조리한 지금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조급함 때문일까. 참을 수 없는 부당함과 변질 속에서도 ’사상’이 가장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 그렇기 때문에 ’좌파’의 변질을 안타까워하면서 직설적으로 변해야 한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사상이 일탈한 것이다.
보다시피 다른 하늘, 즉 여러 모습의 전체주의라는 하늘이 당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지 못했고 또 인류의 추락을 가속화한 정치적 변화의 원천인 신의 고통과 죽음을 인정하는 대신, 그리고 지드나 사르트르처럼 이 신의 고통과 죽음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대신, 돛의 면적을 줄이는 대신, 혹은 텅 빈 하늘에서 자유의 근원이나 자아 고찰의 기회 혹은 자아 산출의 기회를 보는 대신, 사람들은 ’야생의 신앙’을 만들어내며, 하늘을 비스듬히 날아 가능한 모든 도피성 가치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좌파 프로그램 전체를 통째로 바꾸면서 ’프랑스 이데올로기’라는 바이러스가 공들여 만들어지고 있는 문화의 분출 현장을 선망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 본문에서 발췌 -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좌파가 사회체제를 뒤흔드는 거의 국가의 공적처럼 모도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더욱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희곡

새삼 느끼는 거지만 그의 희곡은 쉽지 않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이야기와 사람들의 말 속에 담아 놓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어서며, 여전히 우직한 어조로)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한번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거야. 그러나 어쩌면 끝까지 논리적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지도 몰라. (헬리콘을 바라보며)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다 알아. 겨우 계집 하나 죽은 것인데 이토록 야단법석이냐 이거지! 아냐, 그게 아냐. 그래, 기억나, 며칠 전에 내가 사랑하던 여자가 죽었다는 것 말야. 하지만 도대체 사랑이라는 것이 뭐야? 별거 아니지. 그런 죽음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냐. 그건 단지 내가 달을 갖고 싶게 만드는 어떤 진리의 표시에 불과해. 그 진리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고 좀 바보같은 거야. 하지만 발견하기 어렵고, 감당하기에 무거운 진리야.’

- <칼리굴라> 에서 칼리굴라의 대사중 발췌 -

한 폭군의 억지스러운 주장일 뿐인 이 말.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런 처절한 인간의 극복에 대한 투쟁이 조금씩 이해된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편적인 논리와 가치관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데 있어서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뭐 결론은 공연으로 올리기는 힘들 것 같다라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