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별을 세개 밖에 주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번역 때문이다.
번역이 너무 안좋다. 문맥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가 많다. 오타도 좀 있고, 읽기가 심히 어렵다. 민음사의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의 번역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조금 오래 된 번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군대에서 있었던 2년간, 인간의 추악한 일면들을 많이 보았다. 이 사회에서는 아주 평범했을 한 인간에게서 악한 본성을 끌어 내는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안재우고 안먹이고 딱 이 두 가지. 한 일주일만 그러면 사람은 근본적인 이 두 가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했다. 그 순간 사람에게 타인은 단 두 가지 의미로만 존재한다. 욕구를 충족시킴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자와 방해가 되는 자. 그리고 그는 충분히 잔인해졌다.


아이들은 육체적인 욕구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자기표현의 욕구? 자기중심의 욕구? 간섭받지 않음의 욕구?
욕구가 조금 달랐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네들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충분히 잔인해졌다.

사회를 설명하는 다양한 상징들이 존재한다고 책 말미의 작품해설에서 이야기 했다. 뭐 그 나름의 기재들을 음미하면서 읽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으나,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근데 왜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인지.
제도, 사회, 집단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결국 그것을 이루는 사람의 문제라는.

젊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비단 신체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변해가는 나와 내 주변을 바로 보며 내 사고를 같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리라. 지금의 부조리한 방식을 지탄할 수 있음과 더 나은 방식을 지향할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답답한 사대부들의 응어리들. 결국 지금을 보지 못하고 글 속에 그리고 말 속에 파묻혀 모두를 무덤으로 끌고 갔던 그들의 그 응어리들. 그것은 답답함이었다.

김훈 작가님의 말은 사람을 너무 멋지게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절제된 단어의 사용. 그리고 여백. 이러한 방식은 인물의 깊은 정서와 가득한 한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별로 그렇게 멋지게 그려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너무 그럴 듯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쓸데 없는 고집과 아집으로 절망적인 지금을 있게 한 그 고집불통의 사람들을 너무 멋지게 표현했다는 느낌.

위에서 내려다 보는 전쟁과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전쟁. 명분과 말, 허울 뿐인 명분과 돌고 돌 뿐인 말. 전쟁은 말이 아닌 것일진데. 결국 단순한 죽고 삶의 문제였을 뿐이었을 텐데. 늙은이들은 왜 그 말에 집착을 하려 한 것인지. 아래에서 올려다 본 전쟁은 훨씬 간단했다. 먹고 사는 것의 문제. 그것을 보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늙은이들.

고인 물은 썩는다. 사람은 썩은 물을 마시면서 살 수 없다.
궁벽한 산성 안에 갖혀서 왕은 무엇을 보았는가?
책을 모두 읽고 남겨진 건 씁쓸함과 답답함이었다.

르 클레지오의 처녀작. 그가 23살 때 쓰여진 소설.

처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전에 읽어 보았던 [황금물고기]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황금물고기]에서 느껴지던 유려하고 몽환적인 글 대신 날카롭고 거친 글들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이 둘의 차이는 정말 같은 작가의 글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글을 다 읽고, 작가 연보에서 이 글이 그가 스물살 초반에 쓴 글이라는 것과 [황금물고기]가 40대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스무살의 혼란과 마흔살의 안정감. 그 차이는 적지 않았다.

글은 조금 무거웠다. 태초의 인간의 이름을 가진 아담이라는 청년이 겪는 일상은 끝이 없는 책바퀴를 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회에 속한 사람이 아닌 사회에서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는 듯한 그의 모습. 사물을 관찰하고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구분하며 신에 대해 부정하는 아담.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만 그 말은 언제나 소통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듯한 느낌. 아마도 그것은 그가 생에서 느낀 방향을 갈구하던 시기의 혼란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스무살 초반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참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여튼 이번의 독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변화된 작가의 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