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재현씨 연출로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에쿠우스.
너무나 유명한 대본이지만, 무식한 나는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말(馬)의 이름 [에쿠우스].
이 이름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은 열정, 정렬, 에로스. 한 소년이 억압 속에서 환상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세계 속에서 살던 소년을 어느 한 소녀가 끄집어 낸다. 그리고 둘 사이에 몸을 통한 대화가 잠시 있고, 다음은 파국으로 이어진다.

사실 대본이 너무 유명해서 기대치가 조금 높았었나 보다. 대본이 가지는 서사의 힘이 그렇게 썩 훌륭하지는 않다. 말(言)이 가지는 힘도 기대했던 만큼 글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이 대본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연출적인 부분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묘한 뜨거움으로 가득한 무대. ’말(馬)’로 분한 배우들이 뿜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그 에너지 안에서 노련한 의사와 격정적인 소년의 갈등이 섬세하게 드러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여지는 부분과 느껴지는 연극적인 부분들을 대본에서는 많이 느낄 수가 없었다. 글은 일단 서사와 말빨에 집중하게 되다보니 조금 아쉬웠다.

안좋았던 점을 길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결론은 좋은 대본이라는 거.


다이사트
 누가 알겠습니까? 소년이 섹스를 재미있는 것이라고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스꽝스럽고 그리고 조금은 투정도 부릴 그런 걸로 말입니다. 또한 억압되
 고, 남의 눈을 피하고 전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애가 말을 타더
 라도 공인된 육체 이외에는 느끼는 게 아마 없을 겁니다. 정열을 쏟으며 나
 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기야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
 는 없습니다.

(상)권을 읽고 네 달 뒤 (하)권을 마저 읽었다.
조금 힘들었다. 요즘 상태가 장대한 글을 읽기에 별로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책을 마저 다 읽고 느껴졌던 감상은 ’부활’ 이라는 한 단어.
예전에 책을 읽었을 때는 편역이었는지 300페이지 조금 넘었었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그것보다는 훨씬 길었다. 그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여러 사상들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견해들이 담겨 있었다. 100년도 더 지난 사람인데 그 생각들이 참 깊더라. 예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만큼의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새삼 대단하다는 느낌은 있었다.

결국 죽는다. 스스로를 죽이고, 저 먼 유배지의 삶에서 그는 사랑을 통해서 다시 부활한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전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를 죽음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 준 한 여인이 있었다. 그를 이끈 것은 사랑인가. 그 둘의 사랑이 사람을 죽음에서 태어남으로 이끈 것인가. 책을 읽고 뒤의 역자 해설까지 모두 읽었건만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느낌.

예전 양장으로 된 책이 더 좋았었는데 책 표지가 얇아지고, 종이는 두꺼워져서, 책 부피가 커져버렸다. 그래서 읽기가 더 힘들게 변했다는 거. 가뜩이나 두꺼운 책인데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이름이 참 어렵다.)
니체를 좋아했단다. 호메로스도 좋아했고.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참 장대하다.

조르바는 물었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왜 있는 것입니까?
똑똑한 당신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
세상 누가 있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인간은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도 없다.
죽음 앞에 인간은 평등하다. 그 죽음에 이르는 삶은 다를지라도.
그 죽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산다.
죽음을 극복할 수 없음에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으로 매진하면서 치열하게 산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고, 나의 삶이어야 한다.
조르바는 그렇게 말했다.

십 몇년을 책을 읽어 보았지만, 초반 몇년을 제외하고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책은 답을 주지 않았다. 나에게 주었던 것은, 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단다 라는 위안과 위로였을 뿐. 내 이전에 사람들도 나처럼 아파하고 괴로워 했다는 따뜻한 말이었을 뿐. 내가 가는 길에 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 책이 답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움과 위안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답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간의 삶에 답 따위는 없으니까.

조르바의 삶이 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인간적인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틀림 없다. 그의 삶은 매력적이었다. 그래 난 그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매력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조금 옆으로 돌려 놓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좋은 책이었다.
특히 지식에 매몰되어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졌던 사람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