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 여자. 얼굴과 목에는 뾰족한 가시가 돋아있고 머리카락을 타고 소인들이 올라간다. 그리고 뒤통수에서 머리카락을 헤치며 나오는 소인 한 명. 뒷배경으로는 손톱이 긴 손들이 무엇을 잡으려는 듯 각기 기괴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보통 표지를 보면 이 책의 내용이 어떠할 것이다라는 짐작을 하기 마련이다. 또는 책을 읽은 후에 표지를 보면 이런 내용을 그리고자 했구나 하며 이해가 가기 마련이다. 

​

하지만 이책은 달랐다. 어떻게 보면 실종된 작가로 대성한 사촌누라를 찾아가는 한 부패교도관의 이야기와 이 그림이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박해로라는 작가의 이름이 주는 밸류가 있으니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이것은 돈을 현대의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지옥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

​

사촌인 서진과 주생은 함께 자랐다. 서진의 연락을 받고 가던 부모님이 사고를 당하고 죽었다. 주생은 한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런 그를 찾아온 두 사람. 출판사 대표와 편집장이었다. 그들은 서진이 잘 나가는 소설 단죄의 신들의 저자인 반야심이라고 밝히며 그녀가 실종되어서 원고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주생을 찾아온 이유는 하나다. 하나뿐인 혈육이니 그녀가 어디있는지 알 것이라는 것. 그녀와 연락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머어마한 돈을 모으고 있는 그녀의 현재상황을 알게 된 주생은 돈이 필요했다. 수감자의 편의를 봐주고 그에게서 돈을 빌리고 협박을 받고 있는 그였기에 이 모든 것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직장에서 내쫓김을 당할 것이 자명했기에 어떻게해서라도 서진을 찾아내고 돈을 받고 자신이 당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이것은 그런 그의 모험기라고 봐도 좋았을 것이다.

​

그가 서진의 자취를 쫓아서 가는 곳곳마다 사건이 벌어진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용의선상에서 언제나 제외된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빠지게 된다. 이것은 작가의 전작인 [살]에서도 보았던 장면이 아니었던가. 누군가는 전혀 일어날 수도 없을 것 같은 일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반면 멀쩡하게 사고를 피해가는 사람들 말이다. 

​

​

본문 속에서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단죄의 신들>이 계속 언급되어 오고 있다. 44쇄를 찍을만큼 잘 팔리는 책.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책을 선택하게 만든 것일까. 작가는 혹시 자신의 책이 그 책처럼 날개 달고 날아가길 바라며 일부러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 운명의 빨간 실이 소설 속의 단죄의 신들과 현실의 단죄의 신들을 연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

박해로 작가의 소설을 꽤 읽어왔다. 때로는 무속신앙에 바탕으로 둔 저주의 이야기들이 섬짓함을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어서 몇번을 반복해서 읽게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은 이때까지의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가독성이 좋지 않을까. 술술술 읽혀내려간다. 단 지금 현재 2022년의 이야기와 1857년의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단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순간 마지막에서 다시 한번 확 깨는 설정이 나온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반전은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신선하다. 하지만 여전히 표지의 이미지는 모호하다. 저건 과연 지옥의 이미지를 나타낸 것일까.

​

책을 딱 받자마자 감탄을 연발했다. 이건 실제로 책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인터넷 미리보기라던가 책표지로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이다. 책배, 그러니까 책등의 반대말로 책을 펼치는 부분이 보통 일반책이라면 그저 하얀색이겠으나 이 책은 음식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알록달록 파스텔 컬러를 선택해서 한동안 책을 넘기지 못하고 종이를 잡고 넘기면서 펄럭이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겹치는 색도 있는데 그것은 한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다르기때문이고 같은 색은 주인공이 같다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이쁘다.

​

안개꽃 빌라라는 이름도 이쁜 한 쉐어 하우스에서 다섯 명의 여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니 재미있을 수가 없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흥미로운데다가 서로간에 얽혀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을 것 같아서 더욱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유정이 시금치 된장국을 만들고 있는 와중에 안개꽃 빌라를 구경하러 온 소미. 주인인 모란과 함께 온 소미는 무엇엔가 이끌린 것처럼 계약을 하고 이곳에서 살게 된다. 여기에 먹방 유튜버인 보라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나나 그리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제일 나이 많은 한솔까지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진지하면서도 가벼움을 담았고 통통 튀는가 하면 기뵤적 사실적인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

​

채식주의나 성정체성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들도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에 살짝 묻어서 너무 심각하지 않게 그렇지만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조절을 잘 한 것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없이 접근 할 수 있게 했다. 작가의 난이도 조절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

각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 이야기는 자꾸 사라지고 있는 음식에 집중하고 있다. 갈비와 도미 그리고 치킨까지 하나씩 차례대로 사라지는 음식들. 공용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이기에 분명 없어진 음식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소행임이 분명한데 아무리 봐도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적은 양이라면 먹고 치웠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도 않은 양.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그많은 음식을 가져간 것일까.

​

​

사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기는 했으나 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하는 모습이 궁금해서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된다. 어디엔가는 안개꽃 빌라가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는 유정과 소미 나나와 보라 그리고 한솔이 아직도 정답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나간다면 나도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쉐어 하우스라는 공간은 언제가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요소를 가진다. 화장실이나 부엌이나 같이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도 감수하고서라도 그곳에 살고 싶을만큼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같은 공간에서 살 메이트들을 잘 만나야 할 테지만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사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테니 말이다.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친구라면 그 또한 매일매일이 재미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삶이라는 것은 살아보면 다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갈 다섯 명의 여자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