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아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러 떠난 롤란트 가족은 상상도 못한 큰 일을 겪는다.먼 하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섬광과 굉음이 따르고 곧이어 검은 연기가 뒤덮는다.정신을 차리고 외할아버지 댁에 가지만,그 때부터 재앙은 시작된다.

롤란트는 여동생을 시작으로 누나,엄마,새로 태어난 아기동생까지 차례로 가족을 잃는다.이 책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은 점차 대수로운 일도 아니게 된다.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의 죽음조차 민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주인공은 어찌보면 제 몸 사리기 바쁜 시기에 병원으로 달려간다.그리고 죽어가는 가족을 뒤로한 채,병원에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도와주고 희생한다.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은 아직 동,서독이 통일의 벽을 허물기 전인 1980년대 초반에 쓰여졌다고 한다.현재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한 국가에 독일은 빠져있으니 사회적인 배경으로 본다면 독일에 핵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하지만 핵이라는 주제가,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국가의 정세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국면이고,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무기보유국인 것으로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인 것을 감안하면,우리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또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 중의 상당부분은 우리 한국인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우리는 핵무기에 있어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민족임에 틀림없다.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보유한 국가들은 핵보유국이라는 엄청난 지위를 갖고 있으며,때로는 위협을 행사하기도 한다.국제사회는 핵무기보유에 대해 확산방지에 그칠 것이 아니라,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로부터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국제사회는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핵무기가 만들어지고 보유되는 한 사실상 세계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슴이 먹먹했다.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과거에 대해,이 책은 너무도 생생하다.

우리말과 글을 쓸 수가 없었고,숟가락이든 밥그릇이든 일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주어야 했으며,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몰매를 맞아야 했고,강제로 징용당해야 했으며,생체 실험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우리 민족에 이러한 갖은 만행을 저지르고도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라 주장하며,진실을 은폐한 채 자손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또한 1965년 박정희 정권 당시에 양국 간에 이루어진 과거청산 협약을 근거로 들며,실질적인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다른 보상도 해줄 수 없다고 한다.참으로 억울하고 분한 노릇이다.

하지만,과연 우리는 과거의 비통했던 역사를 모두 일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열두 살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의‘조선의 남자들은 어쩌다가 제 나라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풀잎 같은 딸들을 이토록 더럽히는지’라는 독백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나라도 못 지키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문득 지난 5월에 독립기념관 전시실에서 본 ‘한일합병’순간의 밀랍모형이 떠올랐다.온갖 부당한 조항으로 채워진 협정서에 날인을 한 것은 바로 조선의 남자들이었다.비통한 표정의 인물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일본인들과 섞여서 웃고 있는 조선남자의 얼굴이 기억에 생생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독단과 독선으로 똘똘 뭉쳐진 현재의 위정자들의 모습이 그 시절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씁쓸하다.

일본에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그 때의 치욕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적어도 우리는 우리 자손들에게 제대로 역사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일본을 미워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수 년 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신개념을 처음 받아들이게 했던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가득 받았던 터라 이번 작품은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편견이라고 해야 하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은 탓이라고 해야 하나? ‘과수원을 점령하라’의 도입부분을 읽으면서 전작(前作)과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고양이 이야기, 생쥐 이야기, 나무귀신 이야기 등으로 넘어 갈수록 다행히 내 상상력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작가는 보는 위치에 따라 세상은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환경파괴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물들에게는 생명을 위협받는 행동일 뿐이었다.일상생활에서는 혐오동물로 취급받는 생쥐나 유기 고양이 등도 결국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며, 존중 받아야 마땅한 고귀한 생명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 할머니라는 존재, 생명을 잃어가는 나이많은 버드나무, 이제는 다른 나무로 삶의 터전을 옮겨 가야 한 나무귀신 등을 통해 새것만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옛것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상기하게 되었다. 개발로 인해 사라진 것들이 비단 장승이나, 낡은 집, 어린 나무 만은 아니었을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간의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작품속의 할머니의 그것과 같다면, 우리는 저마다 자기자리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주변의 동물들과 훨씬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심 어딘가에 그런 풍요로운 과수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맑은 공기를 양껏 들이마신 듯 상쾌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