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사: 문학사상사
* 읽기 전에
내가 ’책’에 대해 가지는 관심에 비하면, ’문학’에 가지는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온,오프라인 서점 여기저기 그 이름이 눈에 띄었던 탓에
’일본 인기 소설작가’란 정도만 알 뿐,
굳이 그의 작품이 어떤 지에 대한 호기심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이 책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던 건 의외로,
이 책 표지의 원숭이 그림이었다.
그래서 살펴보니, 이게 그 유명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작품이었는데, 그것보다도
이 책의 글들이 단편이라는 점,
그리고 기괴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들 때문에
호기심 반, 심심풀이용으로 구입하게 된 것 같다.
* 읽고 나니,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을 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읽을 때,
그 때마다 그 책의 의미가 다르게 와닿는 경험을 가끔 한다.
그 중에서도, 처음 읽을 때는 영 별로 였다가
한참 지나 다음에 읽을 때 그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책들도 있는데,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와 두번째 읽었을 때가 왜 그렇게 느낌이 달랐는지를
나름대로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당연하지만 ’나 자신’의 문제,
즉, 내가 이 책을 ’어떤 관점’으로 읽었냐의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전부터 나는 단편이면서 특이한 내용을 담은 소설들을 좋아했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이니, 베르베르의 ’나무’도 그렇고,
얼마전에 읽은 ’zoo’도 그렇고...
그런 책들의 특징은, 멜로드라마나 역사소설처럼 100% 현실공간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타지 소설이나 SF 소설처럼 100% 공상스러운 이야기도 아닌,
순도 90% 의 현실적인 공간속에서 10%의 비현실적인 상황이 섞여서 유발되는 독특한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 였다.
(어린 시절 보았던 ’환상특급’이라는 TV드라마가 딱 그랬다)
그런 독특한 설정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
그걸 나는 그런 책들을 통해 즐겨 왔었고, 그 ’상상력’이,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을무렵 이 책에 내심으로 기대했던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는 내가 짐작한 ’설정’은 분명 맞는데,
그 상황적인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력’에 의한 독자를 확 잡아끄는 매력적인 ’결말’이라는 면에서,
너무 기대 이하였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나오는 글 중, ’사람의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라든가,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콩팥) 모양의 돌’ 같은 설정은,
나름대로 독특하고,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나게 이끌어 갈까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지만,
결말부에 가서는 ’에게.. 이게 뭐야..’하고 허무할정도로, 내용도 별로, 결말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매 이야기마다,
시선을 끌고 호기심을 끄는 도입부에 비하면, 카타르시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시시한 결말들로 이야기가 맺어버려
허무해서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독후감 문집이랍시고, 일년전에 읽었던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보려고 2007년 8월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두번째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 책에서 받는 느낌이 뭔가 달라진 것이다!
여전히, 이야기 구조가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현실과 기묘한 상황의 결합’이라는 관점을 이미 포기하고나서 이 이야기들을 읽으니,
좀 더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그 ’날마다 움직여 다니는 신장모양의 돌’얘기도,
작년에는 ’그 이상한 돌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혼자 돌아다니며,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에 내 독서의 집중력의 초점을 맞추어 읽었는데,
올해는,
그 이야기속의 소설가가 그 ’신장모양의 돌’에 대한 소설을 쓰는 동안 만나게 된 ’여자친구’에 대해 더 깊은 시선을 두고 그 글을 읽었다. 그 여자친구와 소설속의 주인공이 서로 나누는 서로의 소통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들.. 등등이 오히려 더욱 흥미로왔던 것이다..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 이야기도 그렇다.
처음에는 ’왜 이 여자주인공은 자꾸 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까.. 그 배후에 어떤 사건들이 있을까.. 이 원숭이는 왜 이름을 훔칠까.."등등
어떤 추리소설을 읽듯 이 이야기를 읽었었기 때문에,
시시하고 별 것도 아닌 결말에 허무함을 느꼈는데,
두번째 읽을 때엔, 그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자체가 아닌,
’이름’이 가지는 어떤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문제..
그리고, 원숭이가 이름을 훔칠 때, 그 사람의 이름에 깃든 나쁜 액운도 함께 훔쳐간다고 독특한 설정,
즉, 자기의 정체성과, 자기자신의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는 상징성...
등의 의미를 곱씹어 가며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영 기대에 못 미쳤던 첫번째 독서에 비해,
두번째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무언가’ 좀, 마음에 남는 느낌이 있었다.
어쩜, 처음부터 그렇게 읽었어야 했을지 모른다.
이 책의 뒷표지에 적힌 옮긴이의 설명을 읽어보면, 이 작품집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여백이 남겨지고, 독자로 하여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립고 절실한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데 <도쿄기담집>은 그러한 하루키 단편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집으로 평가받고 있다...>라고 적혀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립고 절실한 깊은 맛...이라...!
내가 두번째 이 책을 읽고 깨닫고 나서야,
이 책 뒷표지의 그 말,
’그립고 절실한 깊은 맛’이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 것도, 그래서 공감하게 된 것도 참으로 묘하다..
나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참 좋아한다.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애절하고도 절절한 감정..
그러나, 그런 감정이 이 책에 많이 담겨있냐고 말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노골적인 ’그리움’의 감정은
이 책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아들이 서핑하다 죽은 하와이 해변을 찾아가는 어머니의 얘기를 다룬 ’하나레이 만’이라는 단편에서조차,
자식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은 글로 묘사되지 않고, 단지 ’눈치만’ 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옮긴이가 적어 둔,
그 ’그립고 절실한 깊은 맛’이라는 표현에는
나 역시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뭐랄까... 대상이 분명하고, 명백한 감정으로써의 ’그리움’이 아닌,
뭔가, 외롭고, 호젓하고 정처없음.. 그런 애매모호한 그리움들이
이야기의 소재나 내용에 무관하게 전체적으로 작품을 감싸며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든 달까...
무라카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냄새가 날까? 아님 이 단편집만의 분위기인가...
호기심이 든다.
이 작품집의 여운은 가슴이 벅찰 정도의 강렬한 것이 아니었다.
뭔가 잡힐 듯 말 듯하고도 소소한,
어떤 ’흔들림’같은 여운..
그래서, 그 소소한 감상을 잡아내어 표현해 내려하니
실제 글을 읽을 때보다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이 더 재미있네..
* 곰토의 평점 : 5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