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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31. 독서일기에서 발췌..)
* 읽기 전엔..
6월의 스페인 여행때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참관했던 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의 전부이다.
당시, 너무 많은 것들을 구경하기 위해 시간이 촉박한 여느 패키지 해외여행처럼,
프라도 미술관이 비록 세계적인 미술관이라지만,
느긋하게 모든 작품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가이드가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가이드는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꼭 봐야할 명작 그림들을 가르쳐 주었다.
비록, 덜 유명할 지언정, 그림 한 점이라도
천천히 느끼면서 음미하고 싶었던 본질적인 욕심이 있었지만,
예전,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에서의 방대한 작품들을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다 못 본 경험을 한 후로는
가이드가 제시한 명작그림부터,
마치 시험문제를 찍듯이 골라 초를 재며 보기 시작했다.
그 때 꼭 봐야할 그림들 중에, 고야의 그림이 상당수 있었다.
특히, '옷입은 마야, 옷벗은 마야'는 꼭 봐야 할 그림이었고..
우리 부부는 가이드가 제시한 꼭 봐야 될 명작그림을
재빨리 30분 안에 늦지 않고, 다 보는 데 성공한 유일한 부부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수박 겉핡기 식으로 그림을 구경한 게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비옥하게 했을까...
'프라도 미술관'이라는 세계적인 미술관에 발자국 한 번 찍었다는,
그런 심리적인 만족감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난 본질적으로 그런 허세어린 감정에
내 스스로가 그리 잘 속아주질 않는다.
만약 '고야'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그저 그렇게 프라도 미술관에 발도장만 찍었을 뿐이라고
으스대기보다는 오히려 허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야'의 작품이 있어,
그리고 '고야'의 작품을 볼 수가 있었기에(실제로 고야의 작품은 여러층에 나누어 전시되어 있어서 못 찾아서 못 본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모두 다 찾아내서 보았다)
프라도 미술관에서의 30분이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비옥하게 만들수 있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눈도장을 찍고 지나간 많은 작품 중에서
고야의 작품이 내 마음에 스며든 것이다.
고야의 작품이 미술에 무지한 내게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이유를 대라면
두가지 정도이다.
고야 초기작품인 듯한, 풍속화(초상화가 아닌) - 시골 아이들이 노는 모습, 귀족들이 산책나온 모습.. 의 인물묘사가 동글동글하고, 인물들의 동작들이 자연스럽고도 다양하고, 색감이 화사하고 부드러워 사랑스럽고 따스한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두번째로는 그와 완전히 대조되는 '검은 그림들'
즉, 괴물, 거인들이 그려진 어둡고 칙칙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그림들,
그런 괴상하고 흉칙한 대상에 대한, 실감나게 섬뜩한 묘사..
그런 무시무시한 그림들에 마음이 뺏긴 것이다.
호오....
거기서 몇가지 고야에 대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고야라는 화가에 대한 인간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고야는 한때 궁정화가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즉, 당대의 인정을 받는 '주류화가'였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의 괴기스럽고 흉칙한 작품들,
그리고, 인간의 약점을 묘사한 그의 초상화들(왕족초상화를 포함한)을
그리면서 어떻게 '주류화가'에 속할 수 있었을까..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걸까..
고야라는 인물이 여느 예술가처럼 시대를 앞서간 고독한 예술가인지,
나름대로 당대의 미술적 요구에 부합하도록 그림을 그린 미술가였는지,
인물이 입체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돌아오면,
꼭 고야에 대한 미술서적을 구입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막상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고야'라고 치니,
5-6종 정도의 서적이 검색되었다.
그 중에서 나는 무슨 기준으로 이 책을 골라서 신청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 읽고 나니..
처음 이 책이 배달왔을 때, 일단, 표지는 너무 심플하고 단순해서,
표지가 책을 더 맛깔스럽게 군침 흘리도록 만드는 효과는 별로 없었다.
둘째,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신청할 때, 다른 책들과 함께 신청되어 몰랐는데, 사고보니, 이 책 가격이 26000원이었다. 뜨아..
물론, 미술서적들은 일반서적보다 가격이 예사로 비싸곤 한다.
그런데, 판형이 크게, 그림의 퀄러티를 높여 만든 화보집도 아닌데,
(물론, 본문중에는 고야의 그림이 작게 화보인쇄되어 있긴 하지만)
이렇게나 비싸다니!.....살짝 놀랐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그림집 중에서도, 이 책은
그림보다는 단연 설명이 더 많은 부류의 책이었다.
미술서적을 구입할 때는(특히 인터넷으로 살 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림에 애착이 가서, 그림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우선할 때는
책의 면적에 그림이 많이 할애된 것을 골라야 할 것이고,
화가나 그림의 탄생배경, 그림의 이해와 해석 등,
그림자체보다는 그림을 읽는 메세지를 알고 싶다면,
그림보다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풍부한 미술서적을 골라야 한다.
내가 원했던 것은, 후자였는데,
일단 손으로 주루륵 넘겨보니, 무려 300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이
내가 원하던 종류의 책을 제대로 선택했구나..싶은 안도감은 들었지만,
미술 문외한인 내가, 혹시 미술학도가 이해할 정도의 수준의 책을(즉 너무 전문적이고 깊은)
잘못 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읽어보니, 그 방대한 설명은, 결코 얕은 것은 아니었다.
치밀하고, 꼼꼼하고, ..
사실, 미술에 대한 일반교양인을 위한 책은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 미술책은 나로선 처음 읽어봤다.
그리고 그 서술의 깊이에 감동했다.
일단 이 책은 고야가 태어나서 부터 화가로서의 행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쫒아간다.(그렇다고, 고야라는 화가가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나 하는 전기같은 글은 아니다.)
처음 미술에 입문해서부터. 고야가 죽을 때까지,
시간의 흐름을 쫒아가지만, 그 서술의 꼼꼼함과 깊이는 놀랍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처음 미술계에 입문할 무렵의 에스파냐의 미술계는 대략 어떤 분위기였다..
고야가 그 당시 고야의 신분으로 미술계에 입문하게 된 상황적 배경은 이렇다..
고야가 입문한 사라고사는 당시 에스파냐에서 어떤 미술적 사회적 분위기 였다. ..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땐, 다른 어느 화가의 이런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차이점이 보인다...등등 이런 식의 서술이다.
즉, 그냥 그 그림이 뜻하는 바, 고야의 신변상의 개인사 등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미술적, 사회적, 고야 개인의 상황적, 그리고 고야 주변의 변화등에 대한 모든 상황을 다 기술해 놓았다.
그래서 고야와 고야의 작품에 대해,
코끼리 다리 하나 만지고, 귀 하나 만지는 식이 아니라,
완전히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통찰의 기쁨이란...!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게 된 고야라는 예술가는
참으로 멋지고 입체적인 삶을 살고간 인물이었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예술세계는 마음놓고 추구한
그야말로, 부러울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다른 예술가와 달리,
사회적으로도 영민하게 처신할 줄 아는 고야역시,
당시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상황,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등의
역사의 질곡에서 독야청청할 수는 없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옹립된 스페인의 프랑스정권 호세 치하에서
궁정화가로 할 일을 다하면서(우리나라로 치자면 일본제국주의 시절 조선총독부 직원으로 일한거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조선총독부제독의 초상화를 그려줘가면서..)
스페인 민중들의 독립운동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기록에 남기는 등..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그의 작품 세계는 오히려,
전쟁과 비극과 참화를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면으로 묘사해 내었다.
그 결과,
상황을 미화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담는 그의 화풍은,
미술가가, 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산 '관찰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시초가 된다고 한다.
퇴직한 고야는 77세 까지 살았다고 한다.
난, 고야가 귀머거리가 되어 '어둠의 집'에서 완성한 '검은 그림 연작시리즈'(내가 프라도 미술관에서 반한, 무시무시한 그림들)은
고야가 정신병을 앓았거나, 아니면 귀머거리가 된 비참한 상태에서 그려진 정신병적 작품인 걸로 짐작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늘 추구하던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던 열망을,
그가 살던 집의 벽에 작품으로 남긴 것이었는데,
고야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표현해낸
'예술적 완숙기'의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고야는 실제로 누구의 부탁도 없이 후원도 없이,
왕실이나 성당의 지시도 없이, 팔기 위한 목적도 없이,
자기가 간직하고 싶은 자기자신만을 위한 작품을 꽤 남겼다고 한다.
자기 작품에 대한 애착..
그래서 죽고나서 그 작품들이 고야의 자손들에 의해 미술시장에 나오게 되고서야
후세 미술가와 평론가들이,
고야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어했던 예술세계에 대해
모자랐던 퍼즐을 짜맞추듯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고야의 작품은 아름답다거나,
특별히 눈에 띄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무시무시한 그림들 말고),
고야가 미술사에서
어째서 그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고야는 초상화 화가로서도 인물의 개성을 잘 나타내주는 그림으로
당대 귀족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전쟁의 비극과 참화를 사실 그대로 묘사하여
역사적 기록화가로도 인정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19세기 20세기(특히 피카소)에 까지 이르기 까지
세계의 수많은 화가들이 고야의 작품에 감화되어
스스로의 작품 세계속에 고야의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특히, 고야 자신이 자기자신을 위해 남긴 작품들(주로 기괴한 상상세계)
이 후세 유명 화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에서는 고야가 미술계에 남긴 영향에 대한 부분이 별도로 한 챕터를 차지 한다.)
고야 작품세계의 영향력이 그러하니,
미술사적으로 '고야'의 위치가 확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의 특장점은, 뭔가 설명을 해놓으면, 그걸 확인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그 사실에 대한 그림이나 작품을 참조할 수 있도록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즉, 고야의 작품 뿐 아니라.
고야의 특정작품에 영향을 준 다른 화가의 작품들,
그리고, 똑같은 대상을 다른 화가는 이렇게 그렸는데
고야는 이렇게 그렸다는 식의 비교가 설명되어 있으면,
해당하는 작품들을 모두 다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와 피카소, 그 외 내노라 하는 후세의 세계적인 화가들이
실제로 고야의 화풍을 어떻게 자기화 시켰는지에 대해서도,
그냥 말만이 아니라, 고야의 영향을 받은 게 역력한 작품들을
모두 책에 참조그림에 실어놓았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만만챦았다.
(그렇게 저렇게 실린 그림 no가 221번까지 갔다)
이 책을 읽고 고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많은 흥미로운 점들을 나열해 보려다가,
하나, 둘도 아니고, 페이지마다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그 많은 내용을 다 옮길 수가 없어서,
고야와 고야의 작품에 대해서 깊어진 내 안목은
내 마음속에서만 삭혀야 될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 주위사람과 고야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깊이가 활짝 만개하게 되기를..
내가 스페인 다녀와서 '고야'에 심취했다는 걸 어찌 알고,
할리우드에서 '고야의 유령'이라는 고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촬영중이라네~~
* 곰토의 평점: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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