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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25. 재혁이 독서일기에서 발췌..)
재혁이 독서생활 속에서도, 늦게 피어나는 꽃같은 책이 있다.
대부분의 재혁이가 열광하는 책들은,
보여주자 말자 재혁이가 재밌어 하며 또 읽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보통은 2번째에서 3,4번째 보여줄 무렵이면, 책의 재미를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끔,
책을 처음 읽어줄 때 재혁이 수준보다 약간 어려운 듯 하거나 하면,
한참 지나 재혁이가 좀 더 성장 하고 읽어주었을 때 재혁이가 책의 재미를 뒤늦게 재발견하고 새삼스럽게 푹 빠지기도 한다.
어른인 나에게도 그렇듯이, 예전부터 알던 책을 '재발견' 하게 되는 기쁨도 독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 아니. 이렇게 재밌었단 말야?" 하고 말이지..
이 책도 오늘 재혁이 마음속에 활짝 꽃이 피었다.
이 책을 사준 건 일년도 더 되었지 싶다.
읽어준 것도 최소한 5-6번 이상은 되었을 거다.
그런데 재혁이는 오늘에사 이 책에 푹 빠졌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잠든 갓난 아기를 안고 아기 엄마는 노래를 부른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그 다음장에서, 아기는 자란다.
아기가 앉아 있는 모습, 기는 모습, 짜박짜박 걸음마을 떼는 모습이
자라고.. 자라고.. 자랐어요..
나는 말 위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아이가 두살이 되었을 때,
두살배기 아이의 이런저런 집안 탐험 때문에
집안은 엉망이 된다.
시계를 변기속에 넣고 서랍을 뒤져 온 방을 어질고..
엄마는 "미쳐버릴 것 같아"하고 외치지만,
그 다음 장면에선,
... 그래도 아기가 잠든 밤이 되면, 엄마는 잠든 아기를 안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너를 사랑해..
하는 노래가사가 또 적혀있다.
이런 구성으로, 말썽 부리는 아이가 아홉살이 되어도
엄마는 낮에 아이한테 혼쭐을 내고도
밤이 되면 잠든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가 십대 소년이 되어 이상한 밴드를 만들어 괴상한 짓을 해도
밤이 되면 잠든 소년을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고..
...
그렇게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드디어 엄마의 집을 떠나 집을 따로 살게 되어도
엄마는 가끔 버스를 타고 아들 집을 찾아와
잠든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그 다음 장면에는
자라나는 아들이 아닌,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나와있고.
아들에게 노래를 부를 힘도 없는 늙은 엄마를
아들이 엄마를 품에 안고서
사랑해요 어머니 언제까지나..
하고 노래를 불러준다.
거기까지의 구성은, 어느정도 예측된 반복이었다면,
마지막 마무리 장면이 나름 의미심장하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창문밖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다가
갓 태어난 여자 갓난 아기를 안고
어릴적부터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노래를
이제는 자기의 갓난 딸에게 노래불러주는 장면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평소에 가끔 읽어줄 때 그냥 그저 그렇고 별다른 반응이 없던 재혁이는
오늘은 다 읽었을 때, 또 읽어달라고 했다.
그림책이 읽어주는데 한 10분 이상은 걸리는 그림책인데도,
또 읽어달라하고 또 읽어달라해서 세번은 더 읽어줘야 했다.
오늘 따라 재혁이는 이 책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새삼스럽게 재밌었을까..
두살배기 어린이와 아홉살 어린이, 열네살 청소년이
나름대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작은 비행을 일삼는 것이 재밌어서 였을까...
아님, 엄마가 밤에 잠든 아이를 안아주는 모습이
재혁이에게 정서적으로 아주 따뜻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어서였을까..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하고 반복되는 노래 운율이
귀에 듣기에 즐거워서 였을까..
세가지 다 이유가 되겠지만, 아마도, 반복되는 노래 운율 때문 탓이 큰 것 같다.
왜나면, 다시 반복해서 책을 읽어줄 때도,
재혁이는 이야기 자체도 몰입해서 들었지만,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하는 노래가 나오는 부분이 되면
미소를 배시시 흘리면서 고개를 박자에 맞춰 끄덕끄덕 거리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그 노래멜로디가 참 그랬다..!!!
이 책의 맨 뒤에는 이 책의 출판에 관련된 일들이 적혀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한 때 엄청난 아동 베스트셀러 였던 책이다.
이 글의 저자는
두 아이를 사산으로 잃은 슬픔을 본인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love you forever>라는 노래를 소재로 해서 이 그림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책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뿐만 아니라,
다 자란 자식을 둔 노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이 책은, 심금을 울리는 책이 되어
최고로 많이 읽힌 책이 되었다고 한다.
재혁이의 독서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내 시선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
노인들이 왜 이 책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이의 자라남...
품 속의 아기였던 자식이, 말썽쟁이 시절을 보내는 가 싶더니
어느샌가 불쑥 자라나 어른이 되어서 늙은 어머니를 안아주게 되는 장면은,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짠하다.
그렇지만, 아마도, 미국사람들에겐, 이야기 자체의 따스함만큼이나
<love you forever>라는 노래의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긴, 사랑과 그리움도
이 책에 잔잔히 배경음악으로 깔려서 감동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love you forever>라는 노래도, 그 멜로디도 나는 전혀 모른다.
그렇지만, 뭐 당황스러울 것은 없었다.
재혁이 그림책을 읽어주다보면 이 책처럼
주인공들이 노래를 불렀다고 하면서 노래가사가 적혀있는 내용이 포함된 그림책을 종종 만나게 되던데,
그러면, 그냥 시 읽듯이 읽어주는 게 아니라,
진짜로 노래부르듯 읽어준다.
멜로디는?
그냥 내 마음대로 적당히 부른다. 말하자면 즉흥작곡이다.
이 책도, 처음에 내가 이 책을 읽어줄 때부터
완전 내 즉흥작곡으로 노래를 불러줬다.
(아마 음표로 하면 솔미 솔솔미 솔솔미라솔.. 뭐 대충 그렇다)
그런데, 한 장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장면에서
똑같은 가사가 반복되기 때문에,
즉흥작곡일망정, 부를 때마다 똑같은 멜로디여야 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지어낸 멜로디지만,
재혁이는 그 멜로디의 반복에 재혁이는 지금,
엄청 재밌어하고 행복해하며
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되면
노래를 불러줄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내 즉흥작곡은 아마도 실제 <love you forever> 라는 노래에 비하면
멜로디가 아름답지도 애틋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재혁이와 나만의 <너를 사랑해> 노래인 것이다.
우리 재혁이가 내 노래의 멜로디에 행복해 한다면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어쩌면, 훨씬 더 아름다울 원래 노래의 멜로디보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며 즉흥적으로 불러준 그 멜로디를
재혁이는 더 정겹고 그리워 할게다.
재혁이에게 책 읽혀주면서 재혁이랑 이런저런 작은 추억들이 많이 쌓였지만,
오늘 우리 둘만의 노래도 이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인 내 눈에는
그 노래 말고도, 이 그림책에는,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들이 있었다.
낮에는 말썽꾸러기인 아들때문에 골치를 썩는 엄마의 고충은
아이가 두살이 되어도, 아홉살이 되어도, 십대 소년이 되어도
조금도 나아져 보이질 않는다. (내가 엄마이다보니 엄마의 시선으로 읽게 되네..)
그런데도, 밤이 되어 아이가 잠들기만 하면
엄마는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잠든 아이를 토닥이며, 아이는 듣지도 못할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나는 그 심정을 알지..
아이를 키워 본 엄마만이 알 수 있는 그 감정..
낮에 아이가 어떤 장난을 쳐서 속을 썩였든
어떤 말과 행동으로 나를 괴롭게 만들었든,
(그래서 정말 고 순간 자식이 미워서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었던 날조차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아이에 대한 모든 걱정과 미움은 눈녹듯이 녹아내리고
사랑으로 넘쳐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잠든 아이를 안고 사랑한다고 노래해주고
잠든 아이의 온 얼굴에 뽀뽀해주고 싶은 그 마음을.....
매일 재혁이와 재원이 잠든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이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마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이 드디어 어른이 되어 엄마의 집을 떠나 분가한 후에도
엄마는 아들이 보고 싶어, 밤에 버스를 타고 아들집에 찾아 가
잠든 아들을 보는 그 마음도 짠하고,
노쇠해서 더이상은 그 노래를 불러주지 못할 만큼 기운이 빠진 어머니에게
이젠 반대로 아들이 어머니를 안고 노래불러주는 장면이 되면
그 때부턴 눈물이 맺히지 않도록 눈에 힘을 줘야 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갓난 딸에게 노래를 불러주기 전에 아들이
잠시 창문밖을 바라보고 서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사실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빠져도 되는 장면이기에
더 의미심장하다.
아들은 그 때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들의 마음이 전해져 와서,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엄마가 평생을 '너를 사랑해.. '하면서 자신을 키워왔던 그 사랑 그대로를
마음깊이 느끼고 있는 그 뒷모습..
그 고마움과 그 사랑으로 넘쳐 난 아들의 마음은,
자신의 갓난 딸에게 향한다.
이제 자신이 갓난 딸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에서, 우리들은
어느 순간, (특히 우리 스스로가 부모가 되고 나서)
부모의 깊은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는 장면을 만난다.
그리고, 그 깊은 사랑 그대로를 우리 자식들에게 대물림한다.
그렇게 사랑에서 사랑을 대물림하며 인류는 자손을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미덕은,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자신의 갓난 딸에게 내리사랑으로 베풀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텐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안았듯이
자신이 노쇠해진 어머니를 안고,
어머니가 해주신 사랑의 노래를 자신이 어머니에게 그래도 불러드렸다는 것이다.
즉,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으로만 보답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베푼 늙은 어머니에게,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도 마음에 참으로 따사로왔다.
재혁이가 이 책의 깊은 맛을 나 만큼이나 느낄 수 있으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더 지나야 할 것이다.
이 그림책은 그래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속에서
늘 변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사랑을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세월'의 아름다움, 그리움같은 것들이 잔뜩 묻어있는 그림책이라서...
곰토의 평점 :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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