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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28. 독서일기에서 발췌..)
* 읽기 전에
이 책 역시, 지난번에 내게 <리진>을 선물한 세일즈 직원이 읽어보라고 나에게 준 책이다.
그 분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다른 책들보다는 현재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간 이런 소설책을 선물하는 것이
실패할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이 책을 거저 공짜로 얻지 않았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글쎄..
한국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이 책을 내 손으로 샀을까?
그래서, 책과의 인연도,
사람과의 인연 만큼이나, 어느 정도는 운명적이다.
* 읽고 나니,
억지로 책장을 넘기긴 했는데,
처음 몇 장은, 먹기 싫은 밥 억지로 꾸역꾸역 먹듯 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던 나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남한산성’과 거기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일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책을 여러 장 읽어가다가 보니,
이 책 상황이 병자호란이고, 그 기간동안 임금이 남한산성에 숨어 지내던 시절이 있었더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사전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시대 궁궐에서 쓰던 고어체의 표현들로 글이 흘러가니,
처음 책을 펴고 몇 장이 넘어가도록, 내가 적응부전현상을 보인 것도 놀랍지는 않다.
내 부적응도 오래가진 않았다.
이야기는 남한산성에서 갇힌 채, 숨은 채,
전력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 군사강대국인 청나라에 대적하여
겨울내내 산성속에 숨어서 견디는,
그 견디는 날들에 대한 이야기다.
남한산성이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사실 주인공이기도 하다보니,
남한산성을 둘러싼, 임금,신하, 일개 백성(대장장이, 나루..) 여러 등장인물은 그저,
당시 남한산성에 숨어지낸 시절의 각박함만을 드러내 주는 조연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구심점도, 각 인물의 행동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어쩌면 전형적인 인물중심의 소설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정리되지 않은, 그리고 집중되지 않는 산만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다가 보니, 그런 산만한 구성속에서,
그 당시 남한산성속의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퍼즐을 짜맞추어가는 듯 여겨졌고,
퍼즐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자, 그 상황에 몰입되었고,
그 때부터는 내가 ’남한산성’ 속으로 들어와,
당시의 상황을 일희일비하며 느낄 수가 있었다.
질 것이 뻔한 싸움에서
죽더라도 청나라와 대적해서 싸우길 바라는 김상헌과,
살아남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이
임금앞에서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이르러서는,
두 신하의 의견이 서로 상반되는데도 불구하고, 두사람의 의견이 모두 설득력이 있어,
내가 임금이라도 고민할 듯 싶었다.
그 즈음 읽어갈 무렵,
내가 참지 못하고 재혁아빠에게 이 소설의 내용을 재잘거렸더니, 재혁아빠는
"문제는 남한산성 안에서 싸울건가 말건가가 아니고... 거기로 데리고 간 신하들이 잘못인거라...
군사적으로 도저히 적수가 안되겠다 싶으면, 외교적으로 해결하던지, 아니면 죽던 살던, 싸우던지 할 일이지..
남한산성으로 찾아갈 일이가.. "
재혁아빠말도 일리는 있었다..
어쨌든, 이러던, 저러던, 남한산성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의 빈궁한 국력...
남한산성안에서도 매일 말만 시끄러울 뿐,
정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문약한 나라의 수치스러움..
그런 정황들을 천민에서 임금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소설로 그려놓았다.
읽다가 보니,
지난번 ’리진’도 이와 비슷한 약소국 조선의 비참함을 그렸었는데,
’리진’이 ’애도’를 위한 소설이라면,
’남한산성’은 역사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치욕의 미학’을 그린 듯 했다.
즉, 남한산성이란 민족적 비극을 기술할 때도,
’우리는 힘은 약했을 망정 끝까지 버티려했다’는 미화된 민족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이 버틴다는 것,
그리고 명분과 말만으로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는게 얼마나 우습고 수치스럽냐는 것.’ 을 적나라하게 코앞에 들이대주었다.
물론, 소설을 읽게 되면, 비록 명분일망정,
’김상헌’, ’최명길’ 같은 인물을 통해
나름대로 그 상황을 잘 겪어내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만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고, ’애도’해 주었지만,
글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소설이 묘사한 상황속의 ’구차스러움들’ 때문에
나중에는 급기야, 책을 읽다가 너무 우스워서(말하자면 블랙코미디같은)
나혼자 소리내어 웃었던 적도 여러번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 빈궁한 와중에도,
새해를 맞는 우리의 법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소를 잡아( 식량이 급박한 그 빈궁한 와중에) 쇠고기를 적군인 청나라 진영에 보내는 ’법도’의 황당스러움..
그리고, 명에 대한 충성심때문에 청에게 사대하기를 거부하여
이런 전쟁을 치루게 되고 나라의 굴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조선의 임금은 새해 첫날, 법도대로 명의 황제를 향해 임금이 예를 다해 춤을 추는 망궐례를 행하고,
그걸 본 청나라의 황제 칸은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어이없어 한다.
’난해한 나라구나...’
그 표현의 적절함때문에 난 또 한번 키득하고 웃었다.
칸은 의아스러워한다.
도대체 저자들은 싸우자는 것인가.. 숨어 있겠다는 것인가..
어쩌자는 것인가..
칸의 의아스러움이 곧,
내가 남한산성 속의 조선에 대해 묻고싶었던
바로 그런 황당함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냥 맞붙어 깨부수자라는 청나라 장수 용골매의 주장을 듣고 칸은,
저런 나라는 힘으로 정복한다고 정복될 나라가 아니다.
스스로 굽히도록 만들어야 우리가 진정으로 저 나라를 복속시킬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진짜 그랬는지 소설적 상상인지는 몰라도,
그런 칸의 ’조선’의 ’난해함’을 읽어 내는 통찰에 감탄했다.
이러구 저러구, 결국 임금은 칸에게 스스로 굴복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군신의 예를 다하기로 하고,
다시 환궁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상황들 속의 ’어이없음’,
그러나 ’어.쩔. 수. 없.었.음’..
그것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조선의 굴욕스러움에
한숨을 짓게도, 어이없어하기도, 황당해 하기도, 이해하기도 하면서
이 책을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 곰토의 평점: 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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