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다이어리」, 「셀러브리티」「19,29,39」등의 작품으로 이미 잘 알려진 정수현 작가님의 신작. 분명 흥미로운 작품들이지만 그동안 나와는 인연이 없어서인지 만나보지 못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떤 색깔일까? 첫장을 펼쳐보기 전부터 두근거림이 가득.
어찌보면 조금 자극적인 제목, 「그녀가 죽길, 바라다」여기서 그녀는 누굴까? 그녀가 죽길 바라는 이는 또 누구인가? 보라색 띠지가 신비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는, 다른 책을 읽던 중이었지만 새치기(?)를 해서라도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평소 난 단순한 성격탓에 여러권을 함께 읽지 못하는 병(?)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책의 포스는 나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첫장을 열자마자 폭풍 몰입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몰입도. 왜 그토록 많은 이가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제서야 그녀의 작품을 만난게 아쉬울만큼.
과거 끔찍한 성폭행의 상처로 복수를 꿈꾸는 아름답고 유능한 이민아.
외모, 재력등 모든것이 부족한 뮤지컬 배우 지망생 윤재희.
예상치 못한 사고로 육체를 잃어버린 재희의 영혼이 민아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루아침에 육체를 공유하게 된 두 사람.
재희의 등장으로 복수에 차질이 생긴 민아,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삶과 사랑하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민아의 육체를 탐내는 재희.
육체를 공유한 두 여자, 그녀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최근 빙의를 소재로한 드라마가 있었다. 나의 관심 밖이라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빙의"라는 소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책 또한 매력적이며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한번 잡은 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었고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과거의 상처가 드러나고 그 상처의 원인이 밝혀졌을 때, 사실 조금은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라는 민아의 이야기가 조금은 찡했다.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과연 누가 육체를 차지했을까 정말 궁금했었다. 원래 주인인 민아가 당연하겠지만, 그럼 재희는 어쩌나... 초반부에 장기적출 이야기 까지 나왔던 터라 돌아갈 곳 없는 재희의 영혼이 너무 불쌍해 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못했던 책을 덮은 이 순간,
아직도 혼란스럽다. 빙의인가, 해리성 정체 장애인가. 분명 재희의 육체는 장기기증으로 사라졌을텐데...
마지막 장면, 재희의 미소... 오마이갓! 속았네.
책소개에서 "독자를 미궁으로 몰고 가는 작가의 영리한 트릭!" 이라는 문구를 봤었다. 결말을 향해가던 이야기 속에서 이 문구에 대해 의문을 품어었다. 대체 어디가 트릭이란 말인가.
조금은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길래 잠깐 실망했었는데, 마지막 단 세 줄에서 '아차!'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두근거림으로 만난 정수현 작가와의 첫만남.
간만에 만난 폭풍몰입도와 적당한 긴장감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지금 나에겐 그거면 충분하다.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기대된다.
......
만약 누군가 재희 씨에게 불꽃같지만 짧은 인생, 무미건조하지만 긴 인생.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인생을 택할 것 같아요?
......
그 질문 언젠가 들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음. 만약 옛날 같으면 둘 다 택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단 나한테 알려주진 말고요'를 선택할래요. p 417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하다.
덤불과 돌은 저마다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 다 혼자이다.
......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하다.
산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알지 못한다.
모두 다 혼자이다.
헤르만 헤세 「안개 속에서」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