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로 꼽히며, 30여년 동안 진한 휴머니티가 담긴 감동적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온 이금이 작가의 신간 『청춘기담』. 이 책에는 작가가 지난 5년간 쓴 단편소설 6편이 담겨 있다. 낮은 톤의 바탕에 어둡거나 표정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의 표정이 담긴 표지와 제목은 요즘 아이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청춘기담'이라니. 20대 후반인 나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청춘예찬'이란 말을 익숙하게 접했다. 지긋지긋한 입시만 마치면 이라는 생각과 대학입학에 대한 기대도 있었을 시절. 물론 지금은 힘든 청년시기를 보내는 나에게 아이들은 그 시절의 나보다 나아진 것 없이 그대로구나 라는 생각이 제목을 접하면서 떠올랐다.

 책에는 스마트폰 절도, 자살문제, 입시경쟁, 사교육, 폭력 문제 등 우리에게 익숙한(익숙하다고 하려니 씁쓸하다)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데, 아이들의 시각과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저자의 상상력과 관심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들과 책의 제목과의 관계를 생각해 봤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책의 제목이 따로 정해진 상태였다고 하며 「천국의 아이들」은 편집자가 제목에 부합하는 소설이 한 편 더 있었으면 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전 읽게 된 『유령에게 말 걸기』(김진경, 이중현, 김성근, 이광호, 한민호 지음, 문학동네, 2014)에서 저자들은 "아이들은 가슴에 수많은 유령을 품고 산다. 아무도 아이들 가슴속의 유령을 호명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유령들은 점점 기괴한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을 생각해보니 유령이 된 이 시대의 아이들을 다룬 이 책 『청춘기담』은 정말 기담이 되어버린 지금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상대방에 대한강한 애정과 집착을 나타내게 되고 그 결과 강렬한 기쁨과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나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이 낭만적 사랑의 전형으로 이야기되듯이,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상물 등에서 낭만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낭만적 사랑을 사랑의 원형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사랑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296쪽, 『젊은이를 위한 인간관계의 심리학』, 권석만, 학지사, 2004) 에서 보듯 연애 초기에 흔히 겪는 강한 친밀감과 열정을 바탕으로 하는 낭만적 사랑은 기쁨과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열정적인 감성과 감정은 모두가 갖고 있으나 사실 그 이후의 관계에서는 자동적인 것만이 아닌 서로의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갖가지 사랑에 관한 신화와 편견, 상식들이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학지사는 심리학 전문 교재와 일반 서적들을 출간하는 출판사로서, 종종 접하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도 결혼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무척 신선한 책이었다. 원제는 All You Need Is Love and Other Lies About Marriage : How to Save Your Marriage Before It's Too Late 으로 책 내용을 핵심적으로 담고 있다. 

 요즘 EBS에서 방영하는 <가족이 달라졌어요>를 종종 시청하는데, 가족간의 문제를 보여주고 심리치유와 치료를 통해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심각한 일촉즉발의 갈등상황을 보고 있으면 마냥 편치가 않은데, 상대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문제들을 심리상담을 통해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자동적으로 맺어진 가족간의 관계도, 그 1차적인 관계도 그냥 살다보면 같이 있다보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족간의 이런 관계도 그렇다면 친구관계, 사회적 관계등은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연인간의 사랑 또한 더욱.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상식이나 편견들에 쉽게 기대는 반면 서로간의 노력과 기술은 되는대로 하는 편이 있다. 그러는 사이 관계가 나빠지게 되고 돌이킬 수 없어진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제이콥스는 뉴욕에서 30년 이상 부부상담을 해 오고 있는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분석이론과 체계이론을 접합한 새로운 접근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 온 분이라고 한다. "가족치료에서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주위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특히 생물학, 가족, 지역사회, 사회, 문화와 종교의 체계)의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다." (20쪽) 인용문은 가족치료에서 체계이론에 관한 내용인데, (개인보다는)가족이나 사회 등 체계(system)의 변화를 주목표로 하는 심리치료의 한 접근법인 이 체계이론을 부부 문제에 적용한 내용들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외적인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적절히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위한 정보가 부족해진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결혼생활을 보호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혼생활을 위협하는 사회적·역사적 영향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6쪽) 에서 보듯 결혼과 부부문제는 단지 부부 개개인만의 문제만을 보기보다 그밖의 여러가지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평균 수명의 증가와 결혼제도가 가지는 성격의 변화, 여성의 직업 참여, 금전적 문제, 물질 사회, 빠른 속도의 사회, 이혼의 보편화, 그리고 이 책의 본문격인 문화적으로 믿어오는 결혼의 일곱 가지 거짓말'등 그가 말하는 사회적·역사적 영향의 정리는 매우 흥미로웠다. 

 7가지 거짓과 진실을 통해 우리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결혼생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 지 알아보고, 제대로 진실을 알아보고 거기에서 행복한 생활을 위한 방법을 찾기위한 노력이 저자의 경혐을 바탕으로 한 사례와 해법을 통해 제시된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과 결혼을 하지 않은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흔하게 접하거나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통해 관계를 맺어가고 발달시키지만 거기에 빠져있는 노력과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심리학은 역사라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우리가 모르던 점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비합리적인 고정관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것을 더 나은 인간 관계를 위해 제대로 보고 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코끼리를 소화하고 있는 보아뱀 그림. 생 떽 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그림은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유명한 장면이다. 사실 나또한 교과서에서 잠깐 배워서 알고 있지, 읽어보지 못했다. 얼마전 인간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심리학 책에서 『어린 왕자』에는 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해서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이 보아뱀이 나오는 책이 나왔고 먼저 읽어 보게 되었다.

 

 황경신 작가의 이름은 사실 몰랐는데, 잡지 페이퍼의 편집장을 맡고 계시다고 하셔서 놀랐다. 아,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았는데. 물론 잡지는 여러 사람들이 만들지만, 각자의 감성이 담길거라 생각하기에. 아무튼 책을 읽으면서 요즈음 접하기 힘든 따뜻한 감성이 느껴졌다.

 

 "여덟 살은 인생에 대해 무지한 나이가 아니다." 당돌하고 귀여운 여덟살 소녀와 삼백일흔세살의 보아뱀의 만남을 그리고 있는 이 책에서는 열 여덟가지의 질문이 담긴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비교하지도 않고?", "이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해?",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걸까?" 등 그림형제의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소녀가 궁금해 하는 질문과 보아뱀과의 대화 그리고 소녀의 일상들이 이야기된다. 또 기억을 담고 있는 현재 나이의 소녀의 목소리까지.

 

 단순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소녀의 질문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을 깨닫게한다. 또한 그림형제의 동화들도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나도 읽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맞아, 나도 그랬지. 하며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소녀와 보아뱀의 관계가 따뜻하게 그려져서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삼키기 위해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나의 호흡소리와 보아뱀의 숨소리가 조금씩 엇갈리다가, 차츰차츰 하나로 겹쳐졌다. 많은 밤들 동안 우리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삶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숨소리를 맞추고, 발걸음의 폭을 맞추고, 생각의 속도를 맞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불안해하지 않고 뒤따라간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준다. 그렇게 지냈는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건 거짓말이다. 언젠가는 그 시간들이 끝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깊은 밤의 고요한 시간을 온전히 견뎌야 한다는 걸, 죽음 같은 잠을 지켜줄 친구를 잃어야만 한다는 걸, 모를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언젠가가 서둘러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바라는 것 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아홉 살짜리 꼬마여서가 아니라, 그가 코끼리를 잡아먹는 보아뱀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을 지녔으나 어이없을 정도로 유약하기만 한, 생명과 생명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열 여덟 번째 이야기 _ 무덤 "왜 나를 잡아먹지 않았어?"」

 

 어릴 적 그 꾸밈없고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 모두 다 일상의 무게를 겪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에 파 뭍여 있기 보다 그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의미, 소중함, 기억 등을 항상 지니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존재했다는 증표가 깔끔하고 단호하게 사라져도, 사람의 기억과 시간은 여전히 내 삶을 받쳐 들고 있다. 그 힘에 기대어 흘러온 나날들이 나로 하여금 막연하고 난감한 질문을 겁 없이 던지게 했다.

 그러한 질문들이 또다시 수없는 길들을 만든다. 그 길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사람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