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15년입니다.  월간『샘터』1월호도 김성구 발행인의 글이 맞이합니다. 

새해 '샘터'의 화두는 '만남'이라고 하네요.

"위대하든 보잘 것 없든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더더욱 죽음 앞에는 모두가 같습니다. 2015년 올 한해만이라도 저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벌거벗은 삶을 만나고 싶습니다." (4쪽)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조금씩 바뀌어가는 세상"

2015년,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사람들의 참된 이야기를 전한다고 하는데

이번 호에는 어떤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2015년부터 연재되는 새로운 코너들

「이색 협동조합」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복지·의료 혜택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 부부나 중국 동포, 고려인, 해외 난민, 불법체류자. 그리고 그런 이유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도록 뜻을 함께 하는 한국 최초의 이주민 협동조합 '지구촌협동조합'을 소개합니다.

「이곳이 뜬다」에서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동네 서점 '북바이북'(bookbybook.co.kr)을 소개하였습니다. 

자매가 공동운영하는 북바이북은 걸어서 3분 거리에 2개 점포로 운영 중이라고 하네요. 언니분이 운영하는 곳은 소설책 중심으로, 동생분은 여행, 창업, 실용서를 주로 판다고 합니다.

책, 커피, 맥주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빈 책갈피에 추천평을 적는 책꼬리, 독서카드 제도를 운영하고 매달 다양한 문화강좌도 열린다고.

「예술로 다독다독」에서는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다룬다고 합니다.

3월호까지는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 상담가로 활동중이신 심영섭 님이 영화 치료의 세계를 소개한다고 하네요.

독자원고로 이루어지는.

이번 달의 주제는 '나를 바꾼 만남'입니다.

「내가 사랑한 이곳」은 명사들이 그리워하고 자주 가고 싶은 도시나 골목, 건물 등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이번달은 사진작가 배병우님의 고향인 여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는 서로 공존하면서 우리를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게 하는 저울추 역할을 한다. 좋은 뉴스와 행복이 늘 동의어인 것도 아니다. 좋은 뉴스 속에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쁜 뉴스 속에서도 잃어버렸던 행복을 되찾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 외적인 조건보다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새해엔 좋은 뉴스를 만나는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숨어 있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교수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나희덕 작가님의「나희덕의 산책」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뉴스라는 주제에 대해 새해와 어울리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과학에게 묻다」에서는 '생명의 본성은 경쟁이다?'라는 글이 실렸는데,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협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달려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를 다룰 「반 발 앞선 미래」에서는 '메이커가 만들 사회'라는 글이 실렸는데요. 

여기서 메이커는 우리가 미래의 모습으로 흔히 떠올리는 삭막한 사회와 설 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극복하는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네요.

"미국에서는 2005년부터 '메이커 운동'이 시작되었을 정도로 강력하고도 꾸준한 움직임이다."

"메이커들이 사회 전면에 서면 인간관계도 변화한다. (중략) 스페인 7위 재벌기업 몬드라곤은 훌륭한 예다. 110여 개의 협동조합과 260여개의 자회사가 모인 이 거대 협동조합 복합체는 직원 수만 해도 약 8만 명에 달하며 연간 30조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최고 임금은 최저 임금의 열 배를 넘지 않고, 소속 협동조합이 파산해도 노동자들은 모두 다른 협동조합에 배치돼 일자리를 지킨다. 연대와 협동, 공유경제 실천을 위해 모인 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주도하여 무언가를 창조하고 공유 경제를 실천하는 사회. 다가올 미래는 생각보다 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짧은 글이지만 생소한 분야를 소개해주어 좋았습니다.

이번 달 샘터도 얇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2015년 한해는 어땠으면 하는지.

「나를 움직인 한마디」에서 김성근 야구 감독은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라는 말을 언급했는데,

새해에는 같이 손잡고 서로 돕는 사회를 바랍니다.

 

 

고병권 저자의『철학자와 하녀』.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후기들을 본 적이 있다. 어떤 글은 이 책에서 다루는 것들이 불편하다고 했다. 본문의「우리는 시설 사회에 살고 있다」라는 글에서 저자는 "시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사회적 관계로부터 배제된 공간이지만 음각화의 방식으로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공간이다."(190~191쪽) 라고 하였는데, 이 책이 불편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감추고 있는 민낯을 보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 안에 공존하는 밝음과 어둠. 불편한 것을 가려버리는 것. 그 불편함은 누구의 불편함인지.

 

사실 '철학'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게 우리 대다수다. 나 또한 학창시절 한 친구가 대학에 가서 철학과를 가겠다고 했을때, 그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 전공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거기에는 철학이 돈이 되는지 밥이 되는지 하는 물음도 담겨 있었을 터.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가장 떨어져 있다고 여기는 교도소에서 했던 강연 이야기로 시작한다. "철학이 일상의 삶과 무관하게 저 하늘의 별만을 보는 것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적하듯 철학은 한가한 일이거나 쓸모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떠받드는 현실 감각 역시 그들을 빈곤하게 만든 세상의 구조를 승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기껏해야 영리한 노예, 성공한 노예가 될 수 있을 뿐이다."(7쪽)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교도소에 갇혀 있는, 우리와 멀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또한 20대 80의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모두가 쫓는 부와 성공과 멀어진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즉 위의 질문은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서로 조롱하고 적대하면서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불행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구원은 서로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삶의 절실함과 대면하면서 철학자는 새로 철학을 배우고, 앎의 각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새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위대한 탈레스를 재치 있게 조롱했던 총명한 하녀가 어느밤 다락방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7쪽) 이 책은 공식적으로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가 철학과 일상에서 자유롭고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이다.

 

"1996년 가을,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의 한 학생이 하룻밤 엠티를 하던 중에 하늘에서 빛나던 별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모든 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서 비추어 주는 것 같았어요. 정말 눈물이 나와서 울 뻔 했어요. 무언지 모를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군요." 평생을 집과 작업장에 갇혀 지내던 그녀가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엠티 장면, 그러니까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일을 실제로 해보았을 때,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일어난 일. 그것은 철학자가 별을 보았을 때와 달랐다. (중략) 그것은 그녀 안에 변혁을 일으켰다. 그녀는 영원할 줄만 알았던 마음속 도덕률이 깨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기 안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순종과 금기의 명령들, 오랫동안 그녀에게 무능력과 불가능을 주입하던 내면의 목소리가 무너져 내리를 것을 느꼈다. (중략) 밤하늘의 별이 그녀에게 준 것은 천체에 관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일깨움, 각성, 용기였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철학에 대한 참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8~9쪽) '일깨움, 각성, 용기'를 깨닫게된 학생의 이야기는 본문에도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무척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감동으로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는데, 그녀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지친 일상 속에서 그 동안 나를 스스로 가두었던 생각들.

 

저자에게 철학은 '일깨움'이라고 한다. "교양을 쌓는 호기심이 아니라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호기심,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지식욕.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비판적 사유. 푸코는 그것을 철학이라 불렀다."(133쪽) 에서 보듯 우리의 삶과 문화, 사회구조, 가치 체계등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옳고 바르고 또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거기서 맞닥뜨린 것은 우리가 감추려고 했던 모습, 민낯이기도 하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책 속에서 때로는 책 바깥에서 내 정신의 등짝을 후려쳐준 이들 덕분이다. 그 경험이 내게는 철학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철학이 그런 친구이기를 바란다."(11쪽)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했다.

 

한동안 자기계발, 힐링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을 보면 그 열풍이 잠깐의 진통제였지 않았나 싶다. 내가 죽어라 노력하면 성공하고, 아픔은 강연과 책을 보면 치유되는 줄 알았지만 우리는 그런 최면에 빠져 또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 많지 않았는지. 이제 우리는 자기계발에서 '서로계발'이 필요한 시기이다. 불편한 것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쫓고 바라던 것들이 과연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것인지. 우리 사회의 행복론이 진정 맞는 것인지. 많은 의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저자가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라고 했듯, 우리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삶'을 진지하게 새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불편한 우리의 현실이 담겨 있는 책이었지만 암울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진정한 희망을 보았기에.

 

 불길이 점점 더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빗 양이 찍었던 골목 사진처럼 검고 더러운 연기가 발자국 찍히듯 검게 퍼져 올라가고 있었다. 당신은 보빗 양의 눈과 짧고 퉁퉁한 손가락과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던 담배연기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보빗 양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때 가슴속에 차오르던 사랑스러운 기분.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스타가 되기에 충분했던 보빗 양은 어떻게 되었던가. 새소리처럼 높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가졌던 소설가는 매력적이고 가증스러운 보빗 양을 어떻게 만들었던가. 어차피 보빗 양의 최후란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