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문학작품들은 항상 시험문제와 함께였다. 문학작품들을 즐기기에 앞서 다양한 이론과 용어들을 배우고 그 후 작품을 보고 문제를 푸는 그런 기계적인 것의 반복. 나는 언어영역을 꾀 좋아했지만, 작품들을 즐기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집에 있던 정효구 교수의 『시 읽는 기쁨』(작가정신, 2001)을 읽었는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나에게 시를 풍부하게 느끼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작가, 연도, 주제 등을 암기하던 것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이 책을 보면서 시에 대해 솔직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샘터 출판사에서 새로이 만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세 번째 책인 구비문학 전문가 신동훈 교수의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는 사실 시리즈의 1권, 2권의 저자인 최재천 교수, 故 장영희 교수와는 다르게 처음 접하는 분이라 읽기 전에 어떤 기대(?) 같은 것이 덜했는데 이게 왠걸, 우리가 어린시절 재미있게 접했던 옛이야기에 대한 교수님의 풀이에서 그 예전 『시 읽는 기쁨』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책을 읽을 수록 아이들에게 권해주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에서 보듯이 백설공주는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숲으로 옮겨집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거친 숲으로요. 언제 그리됐는가 하면 일곱살 때였어요. 이제 막 세상을 알아 가기 시작할 무렵이지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보면, 그전에는 마법의 거울이 백설공주 얘기를 하지 않잖아요? 그건 그가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왕비와 미모를 겨룰 만한 존재가 된 거예요. (중략)
중요한 것은 저 귀엽고 예쁘기만 했던 아이가 이제 세상을 알기 시작할 때, 세상과 대면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거친 숲은 그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공격해서 힘들게 하는 것투성이입니다. 공주를 죽이려는 왕비나 그 명령을 받아 칼을 빼 드는 사냥꾼은 그 단적인 예이지요. 어린아이가 거친 숲 속에 던져진다는 것은 이런 위태한 대면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이야기 요소가 됩니다. 누구라도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상황이지요. 문제는 그때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32~33쪽)
대부분 이런 옛이야기는 어릴적 접하기에, 단순한 그 이야기를 떠올리지만 저자는 그런 이야기가 담고 있는 비유와 상징 그리고 그것이 단지 상상의 이야기만이 아닌, 어떻게 현실을 보여주는가를 다룬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접하는 문학작품들에 비해 어린 시절 보고 듣던 옛이야기들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학창시절 문학작품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접하지 너무 궁금하고 읽고싶어서 스스로 서점에 가서 혹은 도서관에 가서 작품들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고보면 구비문학 전문가인 저자의 이번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옛이야기를 통해 문학을 느끼는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게 도와준다. 아이들에게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부제는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이다. 떠난다는 것은 단지 이동의 의미 외에도 현실에 대한 안주를 벗어남, 도전 혹은 어떤 운명 등으로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나 자신으로 살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이야기, 문학에 대한 흥미를 만들어주는 데 의미를 두었다. 타율적으로 접하는 문학이 아닌 자기 스스로, 그 차이는 클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의 생각은 문제집, 참고서와 다르다. 정해진 답을 말하는 딱딱한 것이 아닌 이야기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새로이 느낄 줄 아는 힘을 발견하게 한다. 새로이 느껴보고자 하는 호기심, 그것이 '나 자신으로 살기'의 시작으로 보였다. 그것은 정말로 다음 세대,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제 여러분 순서입니다. 여러분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시간입니다. 자, 길을 나서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