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테오. 여덟 살이다. 나는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다.
나는 꼭 이겨야 하는 아주 중요한 전투를 하고 있는데, 나폴레옹만이 나를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만나려면 나도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은 죽었으니까.
…
죽기로 마음 먹은 날까지 50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없다.
하지만 나는 무모한 아이가 아니다.
나 테오는 11일째 이 계획을 짜고 있다." (13~14쪽)
1988년생 이탈리아 작가 로렌차 젠틸레(Lorenza Gentile)의 첫 작품은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죽을 계획을 세운 테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대체 이 여덟 살 테오가 나폴레옹을 만나려고 죽을 계획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 아빠가 천장까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 그러면 나도 내 방에만 처박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아빠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치지 않아서 내 가슴도 두근거리지 않게 되는 것, 야단치는 말투에 무서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밤에 잘 자는 것.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행복한 가족 이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라는 것이다.
승리하기 어려운 전투라는 건 나도 안다.
그렇지만…… 만약에 나폴레옹한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는 나를 도와줄 거다.
나폴레옹을 꼭 만나야 한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27쪽)
사사건건 일어나는 엄마와 아빠의 다툼. 가정에서 부모님의 문제는 (어느 연령대에서나 그렇겠지만) 어린 나이의 경우 무척이나 커보이는 문제이기 쉽다.
여덟 살 테오에게 어른들의 모습은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 투성이에, 패배의 고통이 주된 전투를 치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차에 부모님이 선물해 준 『나폴레옹의 모험』이란 책을 읽다가 나폴레옹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고, 지지 않는 방법을 알기 위해 그를 만나려는 계획을 짜게 된다.
나폴레옹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소설의 중요한 소재는 '죽음'이고, 죽은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알아가는 과정과 죽기로 결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역시 부모님은 테오의 그런 질문들을 귀찮아 한다. 그렇기에 주변 친구들을 시작으로 죽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간다. 제목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원제는 'Teo')의 의미도 그 과정에서 독자가 알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내용도 있었다.
"…백설공주는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숲으로 옮겨집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거친 숲으로요. 언제 그리됐는가 하면 일곱 살 때였어요. 이제 막 세상을 알아 가기 시작할 무렵이지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보면, 그전에는 마법의 거울이 백설공주 얘기를 하지 않잖아요? … 중요한 것은 저 귀엽고 예쁘기만 했던 아이가 이제 세상을 알기 시작할 때, 세상과 대면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신동흔, 샘터, 2014), 32~33쪽)
"테오 또래인 딸과 함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번역할 수 있어 내게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 역자의 말에서도 보듯,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함께 읽을 수도 있을 텐데 학교에 들어가는 그 나이(물론 모든 연령대가 나름의 중요성이 있지만) 아이들의 인지적, 심리적, 사회적 특징등 다양한 면을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발달심리, 영유아·아동·청소년 심리학에 대해서는 꼭 전문가만이 봐야 하는 책 그리고 공부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점은 테오가 만난 주변인들이다. "자기 자식이 아닌 다른 집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부" 수지 아줌마, 입양된 중국인 친구이자 "올해 초 전학을 왔는데 지금까지 누구와도 말을 한 적이 없고,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아이들과 놀지 않았고, 생일잔치에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이상한 아이" 시엔, "아빠의 말로는 맞서 싸울 생각은 안 하고 돈을 빨아먹기만 하는" 지하철 역의 거지.
"세상 일이란게 '원래' 그런거야." 죽은 나폴레옹을 만나려는 순진무구(?)한 테오에게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아직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테오를 조금씩 성장시킨다.
(스포일러 일 수 있음)
「비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너무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것뿐이에요?」
「인생에서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항상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새로울 것 없는 그런 뻔한 말, 거지와의 대화가 차지하는 마지막 부분은 처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순간에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철없는 도로시가 뇌 없는 허수아비와 심장 없는 양철 인간과 용기 없는 사자를 만나 각자 갖지 못한 걸 얻으려 에메랄드 성으로 가는 여정을 다룬 이야기다. 결국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저마다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발견하고는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이강룡, 살림, 2014), 31~32쪽)
위의 글은 이야기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쓰인 것이지만,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발견하고는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라는 부분에서는 테오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사춘기의 테오 누나는 "두 분은 우리 말 따위는 듣지 않을 테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는 것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생각 중에 하나이다.
이리 저리 답을 찾던 그 때의, 난 아무 도움이 안된다(물론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심각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 생각하는 테오에게 "스스로를 너무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라는 말의 힘은 뻔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건 원래 그런 거야'와 거리가 먼 때묻지 않은 테오이기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순수한 행복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죽음이라는 장치가 담긴 이야기지만 무기력한 일상을 흔들기에 유쾌하고 희망적이다.
(열린책들 서평단 도서)
『EBS 다큐프라임 죽음』 (EBS 데스 제작팀, 책담, 2014)
서점에서 조금 훑어본 책인데, <EBS 다큐프라임>에서 다룬 내용을 담았다.
「11장 아이들을 위한 죽음 교육」은 '어린 아이들은 아직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교육은 부정적이다.' 라는 것에 대해『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와도 연관지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