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작고하신 김치수 문학평론가의 비평집 『상처와 치유』(문학과 지성사, 2010)에서 "문학은 새로운 인물의 창조를 통해서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우리가 아파하고 있는 고통의 정체를 밝히고 그것의 적절한 표현에 도달하고자 하는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작가들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작가들이다. (중략) 문학에서 당위론은 문학을 죽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중략) 모든 진정한 문학은 끝없는 반기를 드는 것이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을 살아 있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모든 뛰어난 작품은 전위적이라 할 수 있다. 전위적인 문학은 문학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새로운 감동을 창출하는 문학이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58~59쪽,「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글을 읽었다.
이번에 나온 신간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참고한 것은 올 초 나온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폴링 인 폴』(문학동네, 2014) 의 「유령이 출몰할 때」에 대한 서영채 문학평론가의 글이었다. "「유령이 출몰할 때」의 서사적 얼개는, 낙방을 거듭하는 한 고시생 청년이 대학 시절의 추억을 찾아 한 여자 선배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 선배가 운영하고 있는 '카르페디엠'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의 존재이다. 그런데 소설은 도입부부터 초현실적인 설정으로 시작된다. 카페가 있는 K구역은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인데, 이유인즉 유령이 출현하여 한 지역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K구역은 지하철도 무정차로 통과할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중략) 그러나 유령이라 했는가? 그것도 한 사람에게 조용히 나타난 것도 아니고 한 구역을 쑥대밭으로 만들만큼 위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유령이라고? 그러니까 이런 설정은 이 소설을 알레고리로 읽어달라는 표지이겠다. (중략)
백수린에게는 그런 풍경이야말로 소설쓰기나 문학하기 혹은 비-취업권의 마음으로 살아가기의 요체가 아니었을까. 요컨대 그 풍경의 핵심에 놓여 있는 카르페디엠이라는 카페는 인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 신인 작가가 품고있는 소설쓰기의 지향점을 매우 강하게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 신진기예 백수린의 작가적 가능성」에서)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중략)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145쪽)
지루한 하루를 보내는 심리상담가 민형기에게 어느날 스무살의 한나리가 찾아온다. 자기 남자친구가 빼빼로를 두려워하는, 빼빼로 포비아라고 하는 황당한 내용으로 시작하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이 소설은 메타소설로 주인공은 대학생인 나, 김만철이다. 문학창작수업의 과제로 단편소설을 쓰고 있으며 광화문에 있는 카페 '스윗스틱'에서 후배인 향기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 가게는 다양한 막대과자로 유명하다. 카페 '스윗스틱'에는 여러 체인점을 거느리는 성공한 CEO이지만 한편으로 여러가지 소문을 가지고 있는 이혼남인 사장, B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을 연상시키는 매니저, 매일 카페의 구석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민형기가 등장한다.
자기 주변인들을 소재로 단편소설을 쓰면서, 학교 수업, 영어 시험준비에 아르바이트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 나, 김만철이 어느날 카페 사장을 따라 사장의 집에 같이 가게 되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벌어진다. 만철은 자기 소설의 인물로서 그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성공한 막대과자 '스윗스틱'의 비법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사는 곳은 당연히 좋은 오피스텔일 것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정릉의 허름한 구식 복도식 아파트 '호송 아파트'(게다가 ㅍ자가 지워져서 소설에서는 '호송아ㅏ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장은 4층을 전부 다 쓰고 있는데 그곳에서 그는 매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기는 1951년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한여름, 실리카라는 별에서 지구 그것도 이곳 대한민국으로 온 실리칸이라는 것이다. "나는 빼빼로포비아가 등장하는 소설이 황당함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나 김민철은 소설보다 오히려 세 배 아니 서른 배는 더 말도 안 되는 존재인 실리칸을 만났다."
소설은 이어 비현실적인 설정의 "실리카인, 주술사, 인류와 다른 인류가 된 청년의 사건"을 다룬다.
먼저 실리카란 별은 크기가 대략 지구의 3분의 1정도의 크기지만 문명 수준은 30배 정도는 더 뛰어나다. 그들은 호기심과 모험심을 기르며 자라고, 사춘기를 넘기면 인생의 모험을 택하여 우주의 다른 문명으로 떠난다고 한다. 지구에 온 실리칸은 "뭐랄까, 막대 과자의 막대 자체가 인간이 의존하고픈 어떤 대상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만 실리칸은 모험심이 강한 만큼 베풀어 주는 걸 사랑하는 이들이기에, 내 스윗스틱을 통해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만을 바랐던 거지. 내 실체를 알리지 않고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방법"을 행했다.
주술사는 실리칸의 말에 따르면 "우리들은 사춘기가 올 무렵 이 주술사들을 삼키지. 그러면 그 주술사는 우리에게 지혜"(117쪽)을 주는 존재인데, 실리칸은 404호의 네 벽 가득 빽빽하게 벽걸이 텔레비전을 걸어놓고 각각 다른 방송들을 주술사들에게 틀어주고 있다. 주술사들은 스스로 협력하고 진화하는 존재로 포유류의 신체로 들어가 그 숙주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만든다. 그는 얼마전 버림 받은 검은 푸들 무무를 데려와 보살펴 주고 주술사를 먹였는데, 두 발로 걷는 매우 똑똑한 푸들이 되었다. 주술사와 숙주가 어떤 존재로 변하는지는 예상할 수 없지만 "실리칸은 자신의 베풂을 부처의 자비 혹은 예수의 사랑에 비교했다."(116쪽)
"김만철 군은 삶을 바꾸고 싶지 않은가? 자네의 인생 자체를 저 넒은 미지의 바다 위에 한 번 띄워 보고 싶지 않은가?" 만철은 자기도 잘 알지 못하지만 실리칸이 건넨 다섯 색깔의 주술사들을 삼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술사들이 지구에서 더욱 진화를 하게 되었는데, 긍정과 이타심을 알던 그들이 지구에서 선과 악을 배운 것이다. 실리칸을 따르던 푸들 무무는 무섭게 변한 주술사들의 노예가 되고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결국 주술사를 먹은 다른 지구인들과 함께 실리칸을 공격하게 된다.
"정통 소설, 흥미로운 괴담, 유쾌한 난센스, 풍자적 유희의 성격이 모두 담겼다. (중략) 끝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가벼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 이름과 정체성,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의 경계를 바라보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과 만나게 된다." 라는 작가 소개에서 보듯 이 소설은 우선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이 난리를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다.
다만 "눈물과 울림의 시약 대신 랑그와 파롤를 으깨 만든 달콤한 독을 페이지 곳곳에 묻혔다." 라는 작가의 말을 보면 실리칸과 김만철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한바탕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무엇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까. 평화롭고 나른하면서 결국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주술사들이란 존재는 어쩌면 우리 안에 알수 없는 욕망과 능력을 키워주는 갖가지 것들일 수 있겠다. 사방의 빼곡한 티비를 보며 진화한 주술사들. "지구인들 역시 디지털 기술의 편리함만 알지 그 복잡한 구조를 전부 다 꿰고 있는 사람은 소수 아닌가?", "이 컬러풀한 빛깔을 보라고. 황홀하게 아름답지만 위험한 독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나? 사실 독약이란 건 어쩌면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미약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 엄청난 능력으로 숙주와 함께 진화하지만 또한 괴물로 변할지도 모르는 예상할 수 없다.
만철이 갖게 된 하루에 30에서 48시간 정도를 사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의 광격을 목격"하는 능력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얻는 능력이기도 하다.
잘린 실리칸의 두 다리가 화한 쌍둥이들을 보며 새로운 필명으로 작품을 낸 박생강 작가가 떠올랐다.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고 또 찾아보려 애쓰겠다.", "정결함과 천박함이 마주하는 은밀하지만 시끄러운 문학의 장소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쏟아지는 세속적 물신의 기호와 전통적 문학의 기호를 믹스 앤드 매치하는 소설을 쓸 계획을 갖고 있다." 와 같은 작가의 말과 작가소개를 통해서 보듯 새로운 필명으로 이번 소설을 낸 작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아 낸 듯 하다.
상투적인 일상속에서 작가는 빼빼로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비닐 봉지 안에 가지런하게 있는 똑같은 모양의, 현대인들의 모습 같은. 빼빼로는 사실 평범한 막대과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11월 11일을 즈음해서 이 막대과자에 무수한 욕망이 투영된다. 여기서 어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두려움을 견디려면 이야기를 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중략) 삶이 불안하기에, 불안하니까, 인간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라는 만철의 말처럼 다양한 주술사들을 삼키거나 주술사들인 우리들이 이 세속적 물신의 시대에 서로 불신하고 불안해하는 시대에 다른 삶을 접하는 문학은 두려움을 보게 하고 다른 삶을 접하게 하고 다른 인물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렇게 독자들마다 다양하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 문학 읽기에 적응을 못해 비문학 책을 위주로 독서를 하다 보니 최근들어 접한 문학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문자매체의 위기, 종이책의 위기, 문학의 위기에 각종 영상매체와 디지털매체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생각하게 하는 더불어 매우 읽기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픽션은 우리에게 미로의 존재를 알려 주지만, 출구를 알려 주는 것은 논픽션입니다."
"정신 차려, 이 사람아."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열린책들 서평단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