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도 습관이라, 가까이 할 때에는 수험생처럼 손에서 책을 놓지 않다가 깜빡 책을 놓치는 순간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멀어지게 된다.

오랜만에 집어든 책. 톨스토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저서라고 하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연말연시 시끌벅적함의 한 가운데, 그들만의 축제 속에 서있는 냥 공허했던 내 안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인 톨스토이에 대해서 대략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 귀족 집안에 태어나서 부족할 것 없이 성장한 그는, 40대 중반 이후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 이 책에는 그의 삶에 바탕을 둔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들을 세속적이고 억제해야 할 것으로 보고 영의 삶의 택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지식에 대한 욕망조차 예외는 아니어서 학자와 식자들을 비판하고, ‘너무 많은 독서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적는 한편, ‘육체적 노동의 신성함’을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 작가의 이런 시대적․개인적 사상을 배제하고 본다면, 이 책은 밑바닥부터 세상에 철저하게 부딪히며 긴 세월을 살아온 한 사람이 후세에게 남기는 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하는 데에 있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 말을 꾸미고 또 꾸미면서 생각을 덧칠하고 있는데, 이 책의 문구 하나하나는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미사여구 없이 몇 단어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신념을, 사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세기의 작가다웠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1달만 일찍 이 책을 읽었다면 저지르지 않았을 실수가 떠올라서 씁쓸했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에 안도했다. 2008년의 첫 장을 진중하게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매일 걷던 이 길이 낯설 때는 떠날 날이 온 것이다.’

이 글의 저자는, 그렇게 자신의 길이 낯설어 졌을 때, 과감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떠나 꼬박 1년여를 그곳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스페인의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던 그가, 어느 순간엔가 다시 생활에 익숙해지고(언어에 능통하든 아니든, 뚜렷한 계획이 있든 없든, 사람은 순식간에 환경에 동화되어 같이 흘러가기 마련인가보다), 다시 서울에 돌아왔을 때,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방인의 마음이 된다. 30년을 살아온 서울, 단 1년을 떠나있었던 서울, 그다지 변한 것도 없는 이곳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끼는 것을 보면, 결국 이방인이란, 이질감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의 단어가 아닌가.

이 책은 참으로 솔직하다. 그렇게 멋지게 훌쩍 떠났다고 해서 마음까지 의연하게 편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과감히 버리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막연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딱 자신이 느낀 만큼 표현하고 있다. 불안에 통째로 먹힌 것도 아닌, 그렇다고 한 점의 불편함이 없는 것도 아닌 심리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현재’를 살아간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볼만한… 시리즈’는, 저자가 몇 번을 가보고 끌렸던 곳들이라 더 신뢰감이 간다. 어쩌면 우리나라로 치면 의왕역 앞 건물 1층 카페정도로, 별거 없는 작은 카페인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그 장소에 각별한 애정을 느낀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다면 저자가 추천한 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정도의 감성과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 1년을 줄기차게 다녔던 곳이라면 한번 가볼만하지 않을까.

‘떠남은 도피가 될 수 있었지만 떠나 있음은 또 다른 삶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도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자다 지쳤을 때 깰 수 있는 것도 엄연한 행복의 한 요소가 된다.’

이 책의 저자는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건축설계회사에서 근무하던 이력을 갖고 있다. 그 중간에 살며시 옆길로 새서 미술 공부도 좀 했었고, 종국에는 아예 팍 틀어서 바르셀로나로 날아와 버렸다. 저자가 무엇으로부터 떠나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이 저자처럼 단 1년만이라도 온전히 자신으로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 같다.

스페인에서 건축공부를 계속한다는 저자의 계획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오기사, 바르셀로나에서 행복을 찾다’가 이어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버릴 수 있는 용기보다, 버리고 싶어지는 그 심리가 더 부럽다.

 

어문학 전공자로서 나에게 경제학이란, 교양수업 시간에 접했던 ‘경제학원론’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난해한 학문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나로서는 하나의 도전이었고, 결과적으로 그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경제학은 난해하기만 한 ‘학문’이고 실용성이 결여되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의 근본 원리가 보였다고나 할까,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현상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고 좀 더 생각하며 행동하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것에 ‘경제학적’ 사고인가보다.

이 책은 시장경제 세계에서 태어나 그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경제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스타벅스 커피나 슈퍼마켓, 교통체증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사례를 통해 희소성, 내부정보, 효율성, 시장의 힘, 게임 이론 같은 경제학의 주요 내용을 다루면서, 이러한 법칙들이 우리의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세계화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에서는, 저자의 주관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좋은 동영상 경제학 강의를 듣고 난 느낌이다.

책의 목차와 흥미로웠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1장 스타벅스의 경영 전략―가격 결정의 진실

출근길에 들르는 목 좋은 스타벅스의 비싼 커피가격은, 그 가격을 부담하고서라도 기꺼이 스타벅스 커피를 선택하는 고객들 때문이고, 스타벅스 매장은 그런 고객들을 붙잡을 수 있는 장소를 점유하기 위해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한다. 또 큰 사이즈의 커피 가격이 비싼 것은 원가차이가 아니라, 그만큼 매장을 점령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이를 부담시키는 것이다.

2장 슈퍼마켓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모든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법

슈퍼마켓은 우리에게 고품질 저가격의 물건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아니다. 소비자 스스로의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슈퍼마켓은 고객의 지갑을 털기 위해 상품 진열이나 쇼핑객의 동선 등에 정교한 트릭을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교묘한 방법은 다름 아닌 ‘가격 혼동’이다. 저렴한 제품은 포장을 조악하게 하여 구매욕을 떨어뜨리고, 진열 맨 하단에 놓인다. 소비자는 그런 물건을 선뜻 집어 들지 않는다. 씀씀이가 큰 고객에게는 높은 가격을 청구하고, 돈을 아끼는 고객에게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슈퍼마켓은 최대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 고객 포인트 카드제는 당신의 구매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슈퍼마켓의 전략이다.

3장 경제학자가 꿈꾸는 세상, 완전시장―효율성 vs 공정성

가장 효율적인 세상, 완전시장은 실재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시장의 모델은 현실의 시장 작용을 분석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경제학자들은 이를 통해 시장 실패의 원인을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의 유토피아, 완전시장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4장 출퇴근의 경제학―혼잡세가 교통체증을 막을 수 있을까

도로마다 넘쳐나는 자동차는 심각한 대기오염을 일으키지만, 운전자들은 그에 대한 어떠한 비용도 치르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외부효과’라 부른다. 이 외부 효과비용은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손해이면서도 운전자나 석유회사에게 부과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혼잡세의 재분배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잘 설계된 혼잡세야말로 도로 사용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진단한다.

5장 좋은 중고차는 중고차 시장에서 팔지 않는다―정보 선점 싸움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서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이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컨대 보험회사는 가입자의 병력을 밝히라고 하지만 그 정보는 완전히 '비대칭'적이다. 가입자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보험회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보험회사 입장에선 '피하고 싶은 고객'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역선택'이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판매자는 좋은 차와 형편없는 차를 구분할 수 있는 정보가 있지만 구매자는 이에 대한 정보가 없어 평균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차를 사게 된다. 한편 판매자는 이윤을 높이려고 성능이 형편없는 차를 팔게 되므로 결국 구매자는 낮은 품질의 차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6장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을까?―무엇이 주가를 움직이는가

주가는 기업의 수익창출 능력을 반영하며, 기업의 수익은 희소성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희소한 토지의 소유권, 희소한 브랜드,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이다. 따라서 기존 경제에 변형을 일으키는 신기술(철도, 인터넷 등)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기업이 이를 통해 희소자원에 대한 통제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경우에만 주가는 상승한다. 어느 기업이 진입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희소성을 가질 수 있으며, 주요 진입장벽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경우 : 생산규모의 확대에 따라 원가절감이 발생하며, 제품 단위당 원가가 하락하여 소규모 자본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 법적 제한이 있는 경우 : 정부가 자격증 제도(의사, 변호사 등)을 통해 특정부문의 시장진입 자격을 제한하거나, 통신, 전기등 기간 산업부문에 공급자 자격제도를 두면 시장진입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 특허나 상표권 등으로 배타적 권리가 보호되는 경우

- 몇몇 기업이 사실상 전체 자원을 통제하는 경우 : 다이아몬드, 석유 등

7장 인생도, 세상도 게임이다―포커, 복잡한 세상의 축소판

게임을 할 때, 포커를 칠 때 우리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게임 참가자들의 행동과 반응을 예상하고 그에 대응할 전략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게임의 법칙은 전자오락에도, 경매에도, 국가 간 통상 마찰에도, 그리고 사랑에도 적용된다.

8장 정부가 도둑인 나라―정부 도적행위 이론

가난한 나라들은 왜 가난할까? 일반적으로, 가난한 나라에는 도로나 공장 등 시설이 부족하고, 인재가 없으며, 기술적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만 충족되면 가난한 나라도 부유해질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NO'이다.

여기서 ’합리적 무시‘라는 개념이 소개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개인의 합리적 경제 행위가 전체에 불이익을 주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를 말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정부 및 공무원들이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은 무관하지 않다.

9장 다함께 잘사는 방법―교환의 마법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논란이 뜨겁다. 외국의 낮은 임금을 기반으로 생산된 값싼 물건들이 밀려들어오면 자국의 산업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저자는 무역장벽은 상대국은 물론 무역장벽을 세운 나라에게도 손실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말한다. 각 국가는 세계 최고 물건이 아니더라도 자국이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물건으로 타국과 무역을 함으로써 ‘교환의 마법’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10장 중국, 무엇이든 기회가 되는 곳―중국의 경제성장

이 장에서 저자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모해가는 중국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중국의 잠재력과 그 성장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모습은 갑자기 부상한 성장국으로 보이지만, 그 이전에 엄청난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기반과 인재교육의 힘이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