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적 읽던 동양화풍의 그림에 서예 서체와는 완전히 다른 무드의 전래동화였습니다.
아이가 왜 이리 열광하는지 두번째 읽고나서야 알 것 같더군요.

표지의 저 얼굴이 바로 구렁색시지요. 이 그림만 봐도 확실히 다른 전래동화와 다르지요.
지나치게 크게 그린 얼굴과 진한 화장. 한편으로는 뭔가 꾸미고 있는 듯한 저 표정.

내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전래동화의 특징인 명확한 권선징악이 이 동화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악인가 하면 선이 되고 선인가 하면 악이고 결국 끝에는 선도 악도 다 하나라는 굉장히 오묘한 철학을 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옛날 스토리는 달랐지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물리쳐야 할 대상이 있었고, 그것이 실패했을 때는 가차없이 선한 존재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슬픈 결말을 맺게 되었쟎아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전래동화를 읽히는 이유가 권선징악을 아이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런 윤리관념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선과 악이 함께 원하는 바를 이뤄가는, 선도 악도 하나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결국.. 그 숙제는 미뤘습니다. 아직 7세에게는 무리지요. 아이가 어렴풋이 무의식적으로 이 얘기가 뭔가 다르다고 느낀다면 설명해주리라 했었는데.. "구렁색시와 선비가 잘 살게 되어서 다행이다"라는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애매한 답을 주네요. ^^;

이 책의 또 하나의 걸작은 그림입니다. 진지와 코믹을 넘나드는, 매우 잘 그린 그림이면서도 또 매우 과장되고 웃음을 주는 그림입니다. 우리 딸이 빠져든 또 하나의 요인이자 가장 큰 요인이지요.

아이들이 읽는 책은 그림책입니다. 때문에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림 역시 중요하지요. 천편일률적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 자극적인, 너무 인형같은 그림은 피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아주 개성있는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그림입니다. 

이렇게 아이의 전래동화 사랑은 계속됩니다..
 

받자마자 아이가 열광합니다.
그림이 아주 색다르고 재미있거든요. 
’무슨 내용인지 알고 그러니.’ 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제법 글밥이 많은 책이랍니다. 초등학교 1-2학년에게 적합한 책인 것 같았는데 7세인 우리 아
이는 간식 먹으라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1시간 정도를 꼼짝않고 몰두합니다. 
아이가 책을 손에서 놓았을 때 저는 하지 말라는 독서지도법을 하고야 말았답니다. ’내용확인!’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 엄마한테 말해줄래?"
’물건 주인이 물건을 소중히 하지 않고 흘리고 다니면 꿀꺽이가 와서 먹어치운다 ’는 줄거리를 
술술 말합니다. 이제 내용 파악은 되었고 실천이 중요하겠지요.
갑자기 책 뒷면을 펼치더니 물건관리 표와 스티커를 발견하고 더 분주해집니다.

이쯤에서 제가 이 책을 아이 손에 쥐어 준 이유를 풀어야 겠지요.
1년 동안 아이가 잃어버린 마스크가 4개입니다. 다른 물건도 제가 챙겨주지 않으면 남아나는
게 없지요. 더 이상한 건 잃어버려도 찾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겠
지요. 하지만 더이상 네탓 내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택한 방법이 책으로 가르치는 것이
었습니다. 일단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오빠가 꿀꺽이에게 자기 물건을 뺏기지 않
기 위해 열심히 챙기기 시작한 장면에서 본인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1년을 제가 쫓아다니며 침튀겨가며 날린 때로는 심한 야단들도 이 책 한번 읽는 것만 못했네
요. 내용이 어떻길래 저리 갑자기 달라졌나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흔히 겪을 만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무 길지 않은 챕터의 
구성은 지루하지 않게 해주구요. 너무 매끈하지 않은 그림들은 친근하고 정겹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밥이 많은 책을 처음 접하는 아이가 술술 읽어내려갔나보네요.
읽고 그냥 잊을 수 있는 내용을 책 뒤편의 날짜별 정리표와 스티커로 실천해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아이디어가 좋다고 여겨졌어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 정말 꿀꺽이가 있을까?"라는 반쯤은 의문어린 질문을 던졌을 때, 전 아직 7세인 아이에게 "그럼~ 봐. 갑자기 물건을 찾을 수 없게 될 때가 있쟎아. 분명히 쇼파 밑에 떨어뜨린 것 같은데도 찾아보면 없는 경우가 있지. 그건 꿀꺽이가 먹은 거야. "라고 말해줬습니다. 초등학교 형아들은 이 내용을 어찌 받아들일지요. 

한가지 제 경우에는 마법의 섬 홋타라케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가는 요정들이 있습니다. 주워간 물건들로 도시를 이루고 살지요. 때문에 아이는 더 꿀꺽이의 존재를 믿은 것 같아요. 여러분도 책과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여준다면 아마 효과 만점일 듯 합니다. 

이 책을 추천도서 목록에서 보았을 때 이런 내용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첫 장면부터 아주 세게 시작됩니다. '엄마는 아침부터 내게 고함을 쳤다.'
그리고 그 고함에 놀란 아이는 온 몸이 갈갈이 찢겨 우주로, 산으로, 바다로, 거리로 분해되어 
날아갑니다.
엄마가 무심코 내지른 고함에 아이는 온 몸이 찢기는 고통과 공포와 당황스러움에 몸둘바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겠지요. 정말 몰랐습니다. 그냥 육아서에서 "아이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마
음을 열고 대하며... "라는 표현과는 비교도 안되게 가슴에 꽂힙니다.

아이는 자기 몸을 찾아 나서고 싶지만 눈이 있는 머리가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버려 찾을 수 없습니다.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이 저 산 꼭대기에 걸려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다리만이 우두커니 서있는데 엄마가 다시 몸을 다 연결해서 이어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해 아이야." 아이는 다시 엄마 손을 잡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길을 떠납니다.

저도 이런 식입니다. 아이에게 엄청난 공포심과 슬픔을 안겨주고는 얼마 가지 않아 미안하다며 안아주고 쓸어주고..  이 책을 함께 읽은 후 아이에게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가 너 야단칠 때 어떤 기분이 들어?" "무서워...."

제 화를 누르지 못해 순간 내지른 고함에 아이는 우주만큼, 산만큼, 바다만큼의 공포심을 느끼고 혼자 상처받았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더이상 고함쟁이 엄마가 아닌 진정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노력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맹세하게 만든 책입니다. 고함쟁이 엄마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