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스스로를 계발해서 '일신우일신' 하자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내 실력을 공인받고자 하는 것이다. 실력이 아무리 늘어나고 구루 혹은 스승이라 불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르더라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실력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몇몇 자격증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그리 인정받지 못할 뿐더러 국제 공인자격증리가는 것도 자격증 유지를 위한 비용 등 적잖은 부가적인 비용이 든다. 내 실력을 공인받을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쯩'이라도 주는 곳으로 궁여지책으로 몰리지만 그저 자기 위안으로만 그치고 만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고민을 해소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한다.

 

- 저 사람, 실력있어.
- 정말? 에이. 그렇게 안 보이는데.
- 진짠데…

 

- 저 사람, 실력있어. 책도 한 권 내구.
- 정말? 그렇게 안 보이는데, 보기와는 다르네.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상황이다. '6개월만 미쳐보자, 인생이 바뀐다'라는 이 책의 소제목처럼 책은 어쩌면 인생을 바꿀만한 자기 계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이라는 목표를 위해 들이는 노력과 그 과정이 목표 달성을 위한 그저 소비일뿐이라면 이도 허무하다. 하지만 책쓰기는 그 과정조차도 효율적인 자기 계발 그 자체이다. 예를 들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여러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이를 통해 학습하는 효과를 얻는다는 점이다.

 

그럼 어떤 주제를 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책쓰기를 해야 할까. 주제 선정과 관련해서는 '구태여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찾는게 좋다'라는 저자의 말과 다산 정약용의 편지글만큼 좋은 예는 없는 것 같다.

 

    네가 닭을 키운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에도 품위있고 비천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가 있다. 농서를 잘 읽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아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또 때때로 닭의 모습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보아야 하느니라. (중략) 너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구나. 이미 닭을 기르고 있다니 아무쪼록 많은 책에서 닭 기르는 법에 관한 이론을 뽑아내어 <계경> 같은 책을 하나 만든다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속사에서 한 가닥 선비의 일을 찾는 일이란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이 책을 읽던 중에 '다산은 18년 유배생활 어떻게 보냈나'라는 부제를 단 오마이뉴스의 '서른 아홉에 인생 꼬인 정약용… 500권 미스테리'라는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당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명문가의 엄친아였던 정약용은 한순간에 자신과 둘째 형은 유배를 가고 셋째 형은 사형을 당하는 사실상의 멸문지화를 당한다. 그의 위대함은 그런 상황을 당하면서 대처하는 방법과 태도에서 빛난다. 누구처럼 와신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한다. 그리고 그는 500권이라는 책을 쓰고 이제 그를 망한 가문의 죄인으로 취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야말로 공부할 때가 되었다. 가문이 망했으니, 오히려 더 좋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니냐?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검찰청)의 보고서나 재판 서류를 근거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좋은 책이나 좋은 글보다 말 그대로 딱 90일만에 책 한권 쓰는 일에 집중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좋은' 이라는 말은 무엇을 하든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를 판국에 '좋은' 끝을 내도록 강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약용도 아들에게 좋은 책쓰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쨌던 한 권 쓰고 볼 일이다.

칼 마르크스, 20세기 역사에서 이처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동서독의 통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불명예를 떠 안게 된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만큼 일부 지식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에게는 그의 생애와 사상이 왜곡되게 전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소심한 탓이 크겠지만, 붉은 색 표지와 칼 마르크스라는 굵직한 글자를 가진 이 책을 공공장소에서 꺼내 읽기가 망설여지기까지 했던 것도 어찌보면 세뇌에 가깝게 반복해서 들었던 '공산당이 싫어요'와 '반공' 구호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내게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가 처한 보수와 진보를 포함한 온갖 이념적인 갈등 구도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고 하지만 현재의 우리에게 와닿는 강도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적인 간극를 뛰어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대척점에 속한 반쪽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었고 더욱이 나처럼 비판적인 시각이 부족한 사람은 이런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날 주체적인 방법이 없었다. 지금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이 케케묵어 먼지가 날리는 왜곡된 틀을 깨뜨리고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막스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으로 평전이라는 쟝르가 적합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전은 비평적 전기라는 의미이다. 개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서전, 전기, 평전을 떠올릴 수 있다. 막연히 위대한 행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이라면 자서전이나 전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위대한 행적이 한 시대의 혹은 이후 시대의 이데올로기, 사람들의 사상을 흔들어 놓은 것이라면 피상적인 삶의 옮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평전이 필요하다. 더욱이 마르크스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그가 주창한 이념의 원형은 수 많은 역사적인 사상들 그리고 그 당시의 변혁적인 시대 상황과 경험, 합리주의자들의 논의의 결과에서 기원한다.

 

마르크스는 결코 다른 사상가들에게서 영향 받은 사실을 부인한 적이 없다. (중략) 마르크스가 추구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진리였다. 다른 사람들의 저서에서 진리를 발견하면 그는 자신이 새로 종합한 이론 속에 그것을 결합하려고 애썼다. (중략) 결과에서 독창적인 것은 어느 하나의 구성요소가 아니고 중심 가설이다.

 

이런 사실을 돌아보면 그의 저작과 행적만으로는 그의 의도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한 것이 확실하다. 결국 비평적인 전기인 평전이 옳은 선택이었다. 주로 신간 위주로 책을 읽어오던 나로서는 이 책이 1939년에 처음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만약 이 책이 2차 대전이후 냉전 시대동안에 쓰여졌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리고 소련의 붕괴 이후에 쓰여졌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나의 결론은 1938년이라는 시기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시대 상황을 비추어 사실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다른 시기에는 막스의 의도에 대한 분석보다는 냉전이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붕괴라는 틀을 통해서 막스를 이해했을게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 덕택에 이사야 벌린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부수적인 소득이다. 참고로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오마이뉴스의 '보수 이데올로기 과잉 시대에 읽은 이사야 벌린'과 한겨레의 '이사야 벌린 1주기를 추모하며'가 가장 먼저 검색된다.

 

책에서 기억에 남는 몇 문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준경험적 합리주의의 주된 주장은 이성이 세계를 설명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즉 불행은 자연에 대한 무지와 사회적 행위의 법칙들에 대한 무지가 복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불행을 제거하는 데 필요충분한 조처는 단 하나 뿐이다. 즉 인간사를 처리하는 데 이성을 사용하는 것, 오로지 이성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장애물이 등장한다. 인간불행의 본질적 원인인 이성의 등한시와 지적 태만을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이 불의를 보지 못하도록 무지한 상태로 있어야 함을 깨달은 계급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온갖 허구와 수단을 이용해 불합리를 조장해 왔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해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가 서명한 성명서나 선언문, 행동강령에는 도덕적 진보, 영원한 정의, 인간의 평등, 개인이나 민족의 권리, 양심의 자유, 문명을 위한 투쟁 등의 문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한때는 민주주의 운동의 이상을 대변했지만 이제는 상투어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기반을 전복시키지 않고도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와 그 제도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지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에 반해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혼란과 궁극적 붕괴를 향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사회는 반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