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여행을 떠날때면 캐논 50D와 렌즈 3개를 베낭에 바리바리 싸며 부푼 꿈을 꾼다. 여행길의 추억과 여행지의 풍광 그리고 아이들의 설레어하는 모습을 고스라니 담아오겠다는 꿈이다. 하지만 매번 그 꿈은 한낱 꿈으로만 그치고 만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수 GB에 달하는 메모리카드를 뽑아들고 맥에 꽂아서 사진을 옮기고 사진을 풀어보는 순간은 기대반 설레임반이 실망반 짜증반이 되는 순간이다. 원하는 노출을 벗어나기도 하고, 조금 더 오른쪽 혹은 왼쪽 아니 위쪽 혹은 아래쪽으로 프레임을 옮겼었으면 하기도 하고 연사를 눌러대는데도 가장 환희에 찬 애들의 표정을 0.1초 벗어나 버리기도 하여 결국엔 못난 목수가 연장탓을 하듯 괜한 카메라와 렌즈만 탓하고는 여행의 마지막 정리를 마무리 한다.

 

어떤 위치에서도 최고의 사진을 찍는다!
ONE SHOT, ONE KILL!
똑같은 조건에서도 빛나는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들의 촬영법

 

이라는 문구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저자는 이 책에 촌철살인과도 같은 그 무엇을 담으려고 했다고 한다. 기술위의 기술, 테크닉 위의 테크닉과 같은 한 수준 높은 이야기, 바로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한 애티튜드 attitude 에 대한 이야기다.

 

작년에 지인을 통해서 대전지역의 유명한 분으로부터 사진에 대한 강습을 들었었다. 그 당시 가장 와 닿았던 것이 모델이 되었던 사물이 되었던 피사체와의 교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귀담아들으려 애쓰는 모습 그런 사진사의 태도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게 된다. 나는 어땠나?

 

'여기 좋네! 얘들아 이리와봐. 그래 거기 서서, 야 제발 똑바로 좀. 표정! 그렇지' 애걸복걸로 시작해서 결국엔 명령투로 끝나는 한 바탕 소동을 한 두번 거치고 나면 애들의 짜증이 심해지기만 한다. 뙤약빛아래 서 너번이면 이런 상황을 거치고 나면 사진에 남는 것은 애들의 짜증과 투정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진기를 다루고 빛을 이해하는 수준 이상의 것이다. 바로 대상과 소통하려는 자세, 사진사의 태도이다.

고만한 수준의 서평만 끄적거리고 그 수준으로 책을 봐왔던 나로서는 이 책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의 버지니아 울프를 통해 책을 바라보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를 느낀다. "그들은 그들 시대의 각자의 성찰과 맹목적인 태도로 서로 다르게 그것을 읽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부분적으로 읽을 수 밖에 없다. 1930년의 우리는 1655년에 명백했던 많은 부분을 놓칠 것이며, 18세기에 무시되었던 몇 가지를 알아내기도 할 것이다." 역사책을 뒤지거나 전기를 파헤치지 않는 이상, 저자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름의 해석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내가 작품중의 인물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그녀의 글 전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고 독자의 이해를 애걸하지 않는다.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멈칫거리고 뒷걸음치는 나 자신이 되려 초라해 보인다.

버 지니아 울프의 소설과 "의식의 흐름"이라는 장르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냥 그 흐름에 나를 맡기고, 내가 속한 시대와 사회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다른 사회에서 낯설은 시각을 가지고 있던 저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순이다.

그렇지만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에 대해서 귀가 닳도록 들어왔고 그래서 더욱 늦은 감이 있는 버지니아 울프와의 첫 대면은 자연스레 저자에게로 관심이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그녀가 책을 통해서 얼마나 큰 위안과 평화를 얻었는지를 알 수 있다 - 물론 그녀의 자살을 막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 강가에서 주머니에 돌을 채워넣으면서 그녀는 "보라, 이 여자에게는 아무 대가도 필요 없도다. 이 여자에게는 줄 것이 없어. 독서를 좋아했구나"라는 말씀을 하시는 부드러운 표정의 하느님을 상상했으리라.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그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물, 소위 종결자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독서라는 분야의 종결자에는 이덕무가 있다. 그는 역사책에서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을지 몰라도 독서와 관련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모양이다. 이덕무에 대한 얘기를 여러 권의 책을 통해서 듣고도 정작 그에 대한 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몇 권되지 않는 책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다. 후대에 남을 빼어난 작품을 남긴 것도 아니고 그의 책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회자되었기 때문이었던지 그에 대한 책 자체도 그리 인기를 끌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새로 출간된 이 책을 구하게 되었다.

누 군가를 제대로 알려면 술을 같이 먹어본다거나 요즘 SNS에 남긴 글을 본다거나 단순히 막연하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경우 등 그 접근방법은 천차만별이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남긴 글을 통하면 그의 실체, 본성, 숨겨진 내면을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중에서도 일기나 사사로운 편지글을 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다행히도 이 책에는 이덕무의 그런 글들이 많이 담겨 있다. 혹자는 이런 부류의 글을 요즘의 실용주의적 시류에 빗대어 관념적이고 무가치한 글로 폄훼하기도 한다 - 물론 어느 인문서적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에서 자유롭겠는가. 실용을 논하고 효용을 따지는 지금의 평가기준으로 글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금을 길이로 평가하는 것과 같다. 길이는 건물의 폭이라던지 다리의 길이와 같이 길이를 재어야 되는 상황이나 대상에만 의미가 있다. 금은 금의 가치를 평가하는 다른 잣대가 있다.

이 덕무는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소통의 도구들이 제한적이고 새로운 지식이나 뉴스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시기에 식견을 뒤로 미루어둔 것이 재미있다. 요즘과 같이 온갖 정보들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에리직톤의 허기처럼 끊임없이 식견, 통찰을 탐하고 최우선시하는 현실을 비웃듯이 말이다. 런 헛된 기대를 저버리고 읽는다면 이덕무가 책을 읽을때 으뜸으로 치는 정신은 기쁘게 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