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상작은 정지아님의 [풍경]이다.

그 외 추천 우수작으로 김경욱, 박민규님의 소설과

기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정이현님의 소설이 담겨 있어

그분들의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책이다.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소설 하나하나 모두 재미있었고 좋았다.

읽을때마다 항상 만족을 주기 때문에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은 눈에 띄면 읽지 않을 수가 없다.

단편소설의 쏠쏠한 재미를 맘껏 누릴 수 있는 통로다.

특정 작가의 소설집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 소개된 작품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주인공들이 조금 독특하다는 거다.

너무나 상식적인 나 같은 사람의 이성과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다.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서 그들은 상식적으로 기대되는 방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혹은 약간 어긋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인다.

그래서인지 소재가 평범하다고 해도 소설들이 모두 신선하게 느껴진다.

수상작가 정지아님의 작품은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수상작인 [풍경]은 고즈넉한 저녁풍경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정이현, 박민규 등 톡톡 튀는 현대적인 감각을 배제한,

오래도록 끓은 진국 사골국 같은 그런 소설.

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소개된 [운명]은

[풍경]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소설로,

이 두 편으로도 정지아님의 내공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다른 작품들이 기대된다.

김경욱님의 [게임의 규칙]도 너무 재미있다.

천재소년에 대한 얘기,

근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의 선택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박민규님의 [비치보이스]는 박민규님의 특색이

너무나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재기발랄 하면서도 풍자적이고 냉소적인.

 

김도연님의 [꾸꾸루꾸꾸 빨로마]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사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을 이야기로 쉽게 읽어버리는 내 독서습관에 비해

좀 수준이 있는 작품이다.

김중혁님의 [악기들의 도서관]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좀 독특하다.

아무것도 아닌채로 죽는게 억울해서,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고 우연히 악기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된 주인공.

악기점에서 소리를 수집하면서

거의 찾지 않는 조용한 악기점을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악기들의 도서관으로 변모시키면서

스스로 ’아무것’이 되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신선하다.

 

윤성희님의 [저너머]는 좀 독특한 소설이다.

자식은 내팽겨친 채 캠핑카를 빌려 전국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부모님도 그렇고

선라이즈 선셋을 자매집으로 바꿔 그곳을 운영하는 두 할머니도 그렇고.

어떤 것도 마무리를 짓지 않은 것 같은 열린 결말도 그렇고.

암튼, 손에 잡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독특하고 재미있다.

정영문의 [브라운 부인]

목적을 알 수 없는 어린 두 남녀 강도(?)가 브라운 부부의 집에 침입한 사건이다.

흉기로 위협하는 강도는 그렇지만, 무언가-금품 같은 것-를 요구하지 않는다.

원하는게 뭐냐는 브라운씨의 물음에 그저 지갑에 든 걸 달라고 하질 않나

(그 집에서 가장 값 나가는 것들이 아니라...!)

브라운 부인에게 자신이 노래 할 수 있도록 피아노 반주를 해달라고 하질 않나,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질 않나...

또한 그들의 갑작스런 침입을 당한 브라운 부인도 참 이상하다.

소리도 지르지 않고, 공포에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들을 두둔하고,

그들을 불편해 하는 자신의 남편을 못마땅해한다.

이런 생소한 상황이 너무나 낯설어 이야기의 평이함에도 불구, 굉장히 신선하다.

 

조선희님의 [김분녀의 일생],

할머니 ’김분녀’ 여사의 일생과 그의 손녀딸의 삶을 교차로 보여주는 이야기 방식이

짜임새 있으면서도 탄탄해서 읽기에 재미있었다.

 

한수영님의 [구리연]은

심사평에서 볼 수 있듯이 막판까지 정지아님의 [풍경]과 수상을 놓고 겨뤘던 작품이었나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작가의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리로 연을 만드는 남자의 모습과,

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연의 얘기와

남자와 그의 아내에 대한 얘기가 짜임새 있게 엮어져 있다.

마치 날실과 씨실을 교차하듯.

남자와 여자간의 비극은

구두가 벗겨진 맨발이나

맨홀 아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연을 만드는 남자의 모습 등

이미지로 더욱 극대화된다.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번 수상작품집은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읽을만한 책이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 존 쿳시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라는 제목만 보고 고른책.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진 않았지만,

왠지 제목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선택한 책이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란

[죄와벌]의 작가 '도스트예프스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가 후기에 쓴 걸작 [악령]을 쓰게 된 동기를

픽션을 곁들여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였는데,

그리 흔하지 않은 소재와 주제여서 그런지 몰라도

신선하고 흥미로웠지만,

근데 좀 어렵긴 했다

그저 유명한 소설의 대가 정도로만 알고 있는

도스트예프스키에 대해서

특히 그의 정신상태와 영혼을

너무나 비정하리만치 냉정하게 파헤쳐버린

작가의 용기와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자신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도스트예프스키' 같은 대가를 대상으로

어찌 보면 다소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상상을 곁들여

작품을 써 내려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작가가 아니여도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네차예프 사건,

도스트예프스키가 앓았던 간질병,

도스트예프스키의 재혼과 그의 의붓아들의 존재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런지,

실제로는 도스트예프스키는 네차예프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만난일도 없었다고 하는데도,

그리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의붓아들 파벨은

실제로 아버지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도,

이 소설의 내용이 너무나 사실처럼 느껴진다.

최근 가벼운 느낌의 소설들을 주로 읽다가

인간 영혼의 본질을 파헤친

이런 묵직한 소설을 오랜만에 접하니,

명작이라 칭송받는 작품들의 진가를

다시금 느껴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악령]도 꼭 읽어봐야겠다.

 

지구영웅전설 - 박민규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지구영웅전설].

늘 재미있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와 함께

재기발랄함의 대명사, 그래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후

팬이 되어버린 박민규님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선택해 읽어본 책이다.

 

[지구영웅전설]은 박민규님의 초기작인 듯 하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작품은

슈퍼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

온갖 만화 캐릭터들로 넘쳐나는 작품이다.

우리의 주인공 바나나맨.

바나나라니....!

겉은 노랗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속살은 하얀 생김새는

그야말로 백인우월주의와 백인동경주의(?)를

온몸으로 몸부림쳐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닌가!

이 작품은 만화적 상상력을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

판타지와 블랙코미디가 교묘하게 어우러진

스펙터클 판타지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인가 싶으면 풍자로 가고,

풍자인가 싶으면 다시 냉소로 가고,

냉소인가 하면 냉소의 건너편에 가서

블랙코미디가 된다는 도정일님의 작품평은

정말이지 절묘한 지적이 아닐런지 싶다.

판타지와 현실이 맞닿아 있는

박민규님의 작품세계가

여기서는 거의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봐도 될듯.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 재미난 이야기를 완전히 꿰뚤어 이해하진 못했다.

박민규님의 [핑퐁]을 읽으면서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경험했었는데,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경계를 오가는 스토리라인을

열심히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고 완전히 헤매버려

갈피를 못잡는 듯한 느낌...?

재미있게 읽다가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경계를 이어주는 끈을

중간에 그만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다음에 다시 읽을땐 그 끈을 놓치지 않고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을런지...!